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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봉화 동막골, 흙부대집에 사는 오영미 씨 가족

by 눌산 201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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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에 사네] 봉화 동막골에 손수 흙부대집 지은 오영미 씨 가족

요즘 서점에 가면 흙집 짓는 법이나 손수 흙집 짓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만큼 흙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 졌다는 얘기다. 흙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더니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로 아주 단순한 이 흙이 우리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어릴적 향수와 건강한 삶,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섭리는 손수 흙집을 짓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흙집은 내 손으로 직접 지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가족과 함께 평생 살아 갈 집을 내 손으로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더구나 책 한 권으로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다양한 건축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봉화 산골에 흙부대집이라는 특이한 공법의 흙집을 짓고 사는 오영미(47) 씨 가족을 만나고 왔다.



내 손으로 집 짓는 사람들

달랑 주소 하나만 가지고 봉화의 산골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갔더니 막다른 골짜기 끝에서 차가 멈춰 버린다. 산불감시원에게 흙부대로 지은 집을 물어봤더니 산너머 동네란다. 워낙 특이한 집이라 인근 동네까지도 소문이 난 모양이다.

 

오영미 씨의 흙부대집은 동막골에 있다. 막다른 골목이란 뜻의 동막골 맨 끄크머리 집이다. 멀리에서도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집 전체가 황톳빛이라 산 밑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더구나 기계보다는 손으로 흙을 바르고 손수 지었기에 여느 건축물과는 다른 편안한 느낌의 집이다.

 

오영미 씨가 봉화 동막골에 집을 짓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인천에 살면서 봉화의 유기농 사과를 주문해 먹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청정지역인 봉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처음으로 찾은 봉화에 매료되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지금의 흙부대집까지 짓게 되었다.

 

“본래 나무와 숲에 관심이 많았어요. 도시생활하면서 숲해설사 교육을 받고 자원봉사 활동도 했지요.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자연친화적인 집을 구상하게 된 것 같아요.”

 

시행착오도 많았다. 수많은 흙집을 찾아다녔고, 흙집 전문가들을 만났다. 품앗이를 하면서 흙을 만져보고 내 손으로 지을 수 있겠구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땅을 구입하고 평생 도시생활만 했던 여자의 몸으로 집을 짓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고. 낚시광인 부친이 팔을 걷어 부친 것이다. 일흔의 노구에 시골 일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부친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아버지가 안계셨으면 감히 생각도 못 했을 거에요. 아버지 역시 시골 생활이 처음이라 이 집을 다 짓고 난 후 병까지 나셨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오영미 씨의 부친 오철환(74) 씨가 집 지을 당시 찍은 사진을 들고 나온다. 흙을 자루에 담아 벽채를 쌓고 손수 흙을 바르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된다지만 어디 집 짓는 일이 쉬운 일인가. 오철환 씨는 힘은 들었지만 자신이 지은 집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딸이 산골로 내려간다기에 나는 바다로 가자고 했지. 산골에 가면 낚시를 할 수 없잖아. 딸이 간절히 원하는데 가만 있을 수 있어? 그래서 내가 따라 나섰지. 그래도 집을 짓는 9개월 동안 낚시 다닐때 처럼 텐트를 치고 생활했는데, 바다라 생각하고 지냈지. 허허”

 

2008년 3월에 시작한 집짓기는 11월이 되서야 끝이 났다. 유독 추운 봉화 산골에서의 첫겨울을 별 어려움 없이 쉽게 날 수 있었던 것은 흙부대집 덕분이었다. 벽 두께가 두꺼워 단열이 잘되고, 다른 흙집에 비해 균열이나 특별한 보수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그때마다 오영미 씨와 부친은 그들이 겪었던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가족의 힘으로 완성 된 산골생활

그렇다면 도데체 흙부대집이란 어떤 집일까? 손수 집을 짓는 꿈을 꾸고 사는 필자도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부대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루, 포대라 부르는 말과 같은 의미다. 쌀자루, 쌀포대처럼 흙을 담은 자루를 의미한다. 이 흙부대집의 시작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달에 건물을 지어야하는데, 우주선에 건축자재를 싣고 갈 수 없어 그 방법을 논의하던 중, 세계적인 건축가 네이더 카흐릴리(Nader Khalili)가 달에 있는 흙을 부대에 담아 쌓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흙부대 건축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흙부대집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 흙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또한 재료가 흙이기 때문에 새집증후군도 없고, 벽체의 두께가 45cm 이상 되기 때문에 단열과 축열 효과가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지을 수 있는 단순한 건축공법이라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만 있으면 말이다.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손쉽게 지을 수 있는 집이라고 하지만 만만치 않은 노동이 필요하다. 본채 20평과 별채 10평을 짓는데 7천 여개의 자루가 들어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9개월 동안 텐트 생활을 하면서 몸은 지치고 병까지 났다. 그때마다 하루하루 공정이 진행되면서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이 집이 완성 된 모습을 상상했다. 오영미 씨의 친구, 동생, 어린 조카들까지 흙부대를 날랐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완성할 수 있었다는 오영미 씨의 말처럼 손수 지을 수 있는 집이지만, 혼자 지을 수 있는 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영미 씨는 여전히 동막골 정착의 계기가 된 숲해설사 일을 하고 있다. 흙집도 지었고, 좋아하는 숲에서 일도 할 수 있으니 막연히 동경하던 꿈을 이룬 것이다. 취재를 간 날도 오영미 씨는 봉화 목재문화체험장에 있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체험장은 6월부터 관람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오영미 씨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배운 야생화와 나무, 숲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농사 일은 가족 모두의 일이지만 그의 어머니 안경숙(69) 씨의 담당이다. 처음에는 산골이 싫었지만 지금은 손수 심고 가꾼 채소로 풍성한 식탁을 차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큰 농사는 경험이 없어 할 수 없고, 자급자족을 목표로 감자, 고구마, 들께, 땅콩, 쑥갓, 부추 등 10여 가지 작물을 집 앞에 심었다. 발효식품에 관심이 많았던 오영미 씨는 효소를 담당한다. 개복숭아와 매실, 진달래, 솔잎 등 아직은 초보 수준이지만 실험정신으로 시작했다. 흙으로 만든 효소창고는 아직 미완성이라 결과물에 대한 기대보다는 배우는 자세로 하고 한다고 했다.

 

민박용으로 지었다는 별채에서 하룻밤 못자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봄비에 축촉히 젖은 흙냄새와 솔잎 차 향은 여전히 입 안을 맴돌고 있다.

 

동막골 민박 http://cafe.daum.net/gogohome

 

<글, 사진> 눌산 여행작가 http://www.nul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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