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칼럼

[산이 좋아 산에 사네] 거창 개금마을 김병주 김연호 부부

by 눌산 2011. 10. 4.
728x90
반응형








거창 오지마을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김병주 김연호 부부

산골에는 이미 가을빛이 완연하다. 산자락에는 발갛게 익은 사과밭이 만산홍엽을 이루고 있다. 노랗게 익은 수수밭에는 산비둘기들이 모여들고, 출하를 기다리는 사과박스가 도로변에 가득 쌓여 있다. 풍요와 여유로움의 계절이다. 9월의 남녘은 단풍이 들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가는 바람에 일렁이는 은빛 억새가 가을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맘때만 되면 필자는 길 위에서 세월을 보낸다. 산과 들에서 만나는 눈부신 가을빛 때문이다. 아마도 누구나 같은 마음 아닐까.



거창의 사람과 자연에 반했다

경상남도 거창 최고의 오지마을로 소문난 개금마을을 찾아가는 길이다. 해발 7~800미터를 오르내리는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곳이다. 워낙 골이 깊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골짜기가 이어진다. 지리적으로는 가야산 해인사 바로 뒤편으로 행정상으로도 합천군 가야면과 성주군 가천면, 김천시 증산면이 연접한 거창군에서도 최북단 마을이다. 단지봉과 깃대봉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아늑한 분지를 이룬 마을은 고랭지 사과와 약초가 주요 특산품이다. 마을 이름 또한 개금 약초마을로 불린다.

김병주(68) 김연호(59) 부부는 10년 전 개금마을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거창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 퇴직한 김병주 씨 부부의 집은 이 마을에서도 2km 가량 떨어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850미터를 오르내린다. 울창한 소나무에 둘러싸인 부부의 집 마당에 서면 아랫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길게 뻗은 골짜기가 실타래처럼 펼쳐진다. 개금마을이 있는 거창군 가북면은 유독 이런 오지마을이 많아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도 있고,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가야 만나는 마을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안한 노후를 위해 도시를 선택한다지만 굳이 이런 산골마을을 택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물었다.



“거창에서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죠. 눈여겨 봐둔 땅이 바로 이 집터인데, 보시다시피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풍경에 반했죠. 그래서 소박하게 땅 일구며 살자고 들어왔는데, 벌써 10년이나 됐네요.”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김병주 씨의 부인 김연호 씨가 손사래를 치며 처음 정착 당시 고생담을 털어 놓는다.

“남편은 시골출신이라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에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진 곳이라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낮에 자고 그랬어요. 그러다 한 3년 쯤 지나니까 좀 나아지더라고요. 지금은 혼자서 나흘 밤을 지낸 적도 있으니까요.”

아파트 생활만 하던 김연호 씨는 처음에 맘고생이 심했다. 말상대가 없어 혼자 전화기에다 하고 싶을 말을 쏟아 붙기도 했다. 자장면이 먹고 싶어 주문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외롭고 척박한 오지마을에서의 새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부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 밭에 풀을 뽑고, 수확기에 접어든 오미자나무를 돌본다. 5천여 평에 심어진 농작물만 해도 스무 가지가 넘는다. 오미자, 포도, 배추, 부추, 당귀, 곰취, 옥수수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집 뒤 숲에는 장뇌삼도 심었다. 소나무 사이사이에는 표고 목을 세워 먹을 만큼만 한다. 그리고 철저히 유기농을 한다.

“우리가 먹을 것은 쌀만 빼고 다해요. 처음부터 농약을 전혀 하지 않는 무농약 농사를 짓고는 있지만 수확량이 적어 쉽지가 않아요. 대신 몸이 고달프죠. 여름 내내 풀 뽑는 게 일이에요. 하지만 즐겁게 일합니다. 내가 직접 기른 채소며 과일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허허”

그렇다. 처음 부부를 만났을 때 느낌은 연세에 비해 고운 피부와 맑은 눈이었다. 김병주 씨의 말처럼 일도 즐겁게 해서가 아닐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낭만과 여유로움이 가득한 전원생활을 꿈꿉니다. 저도 물론 그랬고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주민과의 동화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낯선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즐겁게 일하는 겁니다. 일을 즐기지 않으면 아마 1년을 못 갈걸요.”



일을 즐기고 주민과의 동화가 최우선

일을 즐기고 원주민에게 마음을 열어라! 귀촌 10년 차 김병주 씨가 말하는 시골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충고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공적인 정착은 아니었다. 직장생활 중에 방송통신대학에서 농업을 공부하면서 미리 준비를 했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책을 보고 밭을 일구고, 책에 적힌 데로 콩을 심었지만, 비둘기가 죄다 먹어버려 몇 년 동안은 대부분 실패를 했다. 기후와 토질에 맞는 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이론만 믿고 덤볐던 결과였다. 지금은 거름도 직접 만들고 비둘기에게 줄 씨앗까지 덤으로 심는 여유가 생겼다.

김병주 씨는 마을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개금마을이 농촌체험마을로 거듭나면서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모두가 하나되 일궈낸 결과였다. 물론 처음부터 주민과 동화되기는 쉽지가 않았다. 낯선 외지인에 대한 경계도 있었지만 내 일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마을 일에 참여했다. 시골출신이지만 농사 경험이 없었기에 하나하나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 나갔다.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쉽게 정착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거창은 귀농이나 귀촌지로 인기가 많다. 아직 때묻지지 않은 자연과 넉넉한 인심, 그리고 거창 귀촌 1세대인 김병주 씨처럼 훌륭한 조언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병주 씨는 한 달에 한번 지역 귀촌 자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이웃으로 살고 있다.



김병주 씨의 집 마당은 야생화 천지다. 그 귀하다는 물매화가 지천으로 널렸다. 본래 논이었던 것을 밭으로 일군 것인데, 농약을 전혀 치지 않고 늘 촉촉한 습지라 야생화 번식이 빠른 것이다. 손자들이 오면 자연 그대로가 학습장이 된다. 특별히 가꾼 느낌은 들지 않지만 손이 많이 갔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제자리에 두면서 밭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그것은 아마도 자연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판매 목적의 농사가 아니라 자급자족이 목표였기에, 욕심 없는 자연농법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귀촌 선배인 김병주 씨 댁에는 뒤늦게 정착한 이웃들이 자주 방문한다. 그럴 때면 부인 김연호 씨는 손수 담근 효소를 내놓는다. 5개월 전 개금약초마을 사무장으로 부임하면서 아랫마을인 용암리에 정착한 김미정 씨도 그 중 한명. 요즘 그의 관심은 각종 산야초를 이용한 효소인데 초보인 그에게 김연화 씨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친절하게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쳐 준다.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일게다.

김미정 씨와 함께 녹색농촌체험마을인 개금약초마을을 둘러봤다. 폐교를 이용해 숙박시설을 만들고 방문자들이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옛 개금분교는 오지마을답게 전체 졸업생 수가 60여 명에 지나지 않는 아주 작은 학교다. 운동장 한가운데 고목이 된 벚나무가 건재하고, 뒤로는 아름드리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름 없는 오지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개금마을에도 이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농촌의 미래도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nulsan.net/

월간 산사랑 9, 10월 호  http://sansarang.kfcm.or.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