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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는 <삼둔 사가리>라 하여 일곱 군데의 피난지소를 기록하고 있다. 난을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는 곳이란 뜻으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피난굴이 있어 잠시 난을 피했다 정착했다는데서 유래된 곳들이다. 이제 그러한 피난 굴은 찾을 수 없고 세 곳의 ‘삼(三)둔’과 네 곳의 ‘사(四)가리’만이 남아 있다.


삼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이고,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적가리로 예로부터 인정하는 오지 속의 오지들이다. 이러한 피난지소들이 홍천군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에 집중된 이유는 다름 아닌 지형지세에서 찾을 수가 있다.

방태산(1,435.6m) 구룡덕봉(1,388.4m) 응복산(1,155.6m) 가칠봉(1,240.4m) 등 대부분 1천m가 넘는 고봉들에 둘러싸여 있어 과연 이런데서 사람이 살았을까 할 정도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험준한 곳들인 것이다. 하지만 산봉우리 사이사이 골짜기에는 사람의 마을이 있었다. 화전을 하고, 산나물을 채취해 연명하던, 아주 오래전 얘기다.

사람이 모두 떠난 은둔의 땅, 달둔마을을 찾았다.


달둔마을을 사라졌다.
마을 입구에 마지막 달둔지기인 어르신이 산다.
어르신의 안내로 그 흔적을 더듬어 보았다.





입구에서 마을까지는 약 2.5km, 자동차가 다닐 만큼 너른 길이지만, 수풀이 우거진 여름에는 걷기도 힘든 길이다.
모두 일곱 번의 개울을 건너야 한다.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저온형상이 이어진 지난 7월 중순이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골짜기는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나고 자란 집터가 있어~"
어르신은 신이 난 아이처럼 일행을 안내했다.
일부러라도 찾고 싶은 고향집이기에.





"저기야~ 큰 배나무가 있는 자리가 바로 내가 나고 자란 집터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집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돌담이 보이고, 깨진 그릇조각이 나뒹군다.




어르신은 감회에 젖은 듯 한참을 둘러 보셨다.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인데....




마지막으로 마을 당집 앞에서 어르신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한뼘 하늘 아래 작은 골짜기에서 살다 떠난 이들의 이야기다.

사람이 떠나고, 그 흔적도 사라져버렸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남는다.
영원히~


Posted by 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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