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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폐광촌 모운동을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양태수·전옥경 부부

 

비바람이 훑고 지나간 뒤의 하늘빛은 유독 파랗다. 회색빛 기암절벽 사이로는 산안개가 나풀거리고, 그 산안개 사이로 골골마다 둥지를 튼 사람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석회암 지대인 강원도 영월의 아침은 이렇듯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이런 멋진 풍경을 만나려면 산꼭대기나 다름없는 산꼬라데이 길을 찾아가면 된다. 이 길은 산골짜기이라는 뜻의 영월지방 사투리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동화마을로 소문난 모운동으로 이어진다. 모운동에는 십수 년 전 폐광의 흔적들로 가득했던 마을 풍경에 반해 드나들다 아예 터를 잡고 들어앉은 양태수(67)·전옥경(67) 부부의 산다.


 

폐광촌의 판잣집과의 첫 만남

 

모운동은 폐광촌이다. 돈을 캐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해발 1000m가 넘는 망경대산 7부 능선 싸리재를 넘어왔다. 광산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광부들만 2천여 명에 달했던, 한 때였지만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현재의 모운동을 보면 감히 상상이 안 되지만, 마을에는 영화관, 당구장, 사진관, 미장원, 양복점, 병원 등 서울 부럽지 않은 상권을 형성했다. 영화관에서는 서울 명동에서 개봉한 영화(映畵) 필름이 두 번째로 도착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고, 마을 공터에서는 영월읍보다 더 큰 장이 열렸다. 지금은 폐교 된 초등학교에는 아이들이 많아 3부제 수업을 할 정도였다. 이러한 모운동의 영화(榮華)1989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한순간에 무너진다. 사람들은 떠나고 과거의 영화만을 남긴 채 잊혀진 마을로 남아 있던 모운동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 계기가 찾아온다. 바로 정부의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사업 공모전에 당선된 것이다. 공모전 상금으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고민하다 텅 빈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탄 더미가 쌓여 있던 빈터에는 꽃을 심어 폐광의 흔적들을 하나둘 지워 나갔다.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은 다시 모운동을 찾기 시작했고, 폐광촌 모운동은 동화마을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 모든 중심에 양씨 판화미술관 양태수 관장과 냅킨 아티스트 전옥경 부부가 있다.

 

‘1999514, 얼마나 올라왔는지도 모를 높은 산속 꼬부랑 고갯길을 돌고 돌아 올라 왔었다. 그 길 끝에는 산새 둥지 같이 움푹하게 고여 있는 허전한 빈터 마을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낡고 버려진 판잣집들만이 드문드문 있었고,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산꼭대기 폐광촌과의 첫 만남을 기록한 양태수 관장의 일기 내용이다.


 

양태수·전옥경 부부가 결혼기념일을 기념해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들른 곳이 모운동이다. ‘첫 느낌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을 보면서 아직도 이런 집이 남아 있었구나…….했었다. 그 때 그 집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모두가 떠나간 텅 빈 마을에 홀로 사는 분으로 지금은 구세군교회에서 집수리를 해주었다’. 모운동을 처음 만난 양태수 씨의 회고(回顧). 당시 양태수·전옥경 부부는 전라북도 정읍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부부는 모운동과의 첫 만남 이후 매 주말마다 먼 길을 달려 모운동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광부들이 쓰던 빈집을 얻어 작업실로 사용했다. 지붕이 무너져 내린 판잣집은 비오는 날이면 비가 새서 그냥 잘 수 없는 상태였기에 집 안에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 전옥경 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5시간 씩 달려 모운동을 찾았어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도 여기에 올라오면 마음이 편했죠. 처음에는 잘 데가 없어 학교 운동장 한편에 텐트를 치고 생활했었는데,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남편이 텐트 밖에서 지키고 있어도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이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다녀가면 힘이 나고, 또 다시 찾게 되고 그랬어요.”

 

99514일 처음 모운동을 찾은 이후, 부부는 2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했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을 처음 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죠. 평생을 외국과 도시에서 보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삶의 애환이 깃든 이 마을과 낡은 판잣집이 저희 부부를 이 자리에 있게 했어요.”

 

미술과 음악을 전공한 부부는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 구세군교회 목회자로 평생을 보냈다. 대부분을 외국과 대도시에서 보내다 보니 이런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막연한 동경을 현실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부부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지금의 모운동을 있게 만들었다.


 

모운동의 명소가 된 양씨 판화 미술관과 냅킨아트 갤러리

2년 동안의 모운동 드나들기는 부부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양태수 관장의 판화작품에는 어김없이 판잣집이 등장한다. 그는 여전히 강렬했던 모운동의 첫 느낌을 그대로 작품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 활동 이외에 마을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먼저 고령인 마을 주민들의 일손을 도와드리고, 당시 전교생이 일곱 명이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또 당시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인 이장과 마을의 미래를 위한 고민을 하던 중 정부의 마을가꾸기 공모전에 모운동 가꾸기 사업이 선정되면서, 부부와 마을 주민들이 꿈꾸던 사람 냄새나는 마을만들기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더 이상 떠나는 사람이 없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마을의 자원이라 할 수 있는 폐광의 흔적들을 숨 쉬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죠. 그래야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벽화에요.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이 먼저 시작했죠. 그러다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로 마을의 빈 공간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니까 방송과 신문사에서 찾아왔어요.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죠.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동화마을로 불리게 된 계기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을 넘어 예밀리까지의 옛 탄광길에 영월지방 사투리인 산꼬라데이 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안내판을 달았다. 산골짜기란 뜻의 산꼬라데이 길은 모운동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옛 탄광으로 연결되는 광부의 길과 함께 걷기 코스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우연히 작품 활동을 위해 시작된 부부의 모운동 생활은 영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모운동에서 멀지 않은 녹전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미술교육을 했다. 물론 자원봉사였지만, 아이들이 만든 작품으로 미술전을 열고 팜플렛도 만들었다. 산골 아이들이 즐거워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 전옥경 씨는 영월군청 여직원들에게 냅킨 아트를 가르쳤다. 부부의 집 한 켠에는 냅킨아트를 위한 전옥경 씨만의 작은 갤러리가 꾸며져 있다.

 

저는 판화가 싫었어요. 먼지도 나고, 복잡한 과정을 보면서 남편이 작업하는 모습을 가까이 보지도 않았죠. 하지만 모운동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만의 일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접시그림이었고, 지금은 이를 응용한 냅킨 아트를 하게 되었지요. 뒤늦게 시작했지만 잘 했다고 생각해요.”

 

부부의 집 현관에는 메이하우스란 현판이 걸려 있다. 작은 정원에는 온갖 나무와 들꽃들이 심어져 있다. 나무에는 서울과 미국에 사는 손주들 이름을 붙였다. 나무를 가꾸고 보면서, 손주들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손수 가꾼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나는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집안 구석구석에는 전옥경 씨의 접시그림과 냅킨 아트 작품이 걸려 있어, 흡사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저희 부부는 5월하고 인연이 깊어요. 5월에 결혼을 했고, 5월에 모운동을 처음 만났죠. 5월에 두 아이들이 태어났고, 새집을 지어 입주한 것도 모두 5월이에요.”

 

양태수·전옥경 부부의 메이하우스 입구에는 지난해 문을 연 양씨 판화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양태수 관장이 평생 작업한 판화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모운동 얘기를 나눈다. 전옥경 씨의 냅킨아트 갤러리와 함께 모운동의 명소가 된 것이다. 하지만 부부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다. 모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단순히 동화마을로만 불리는 것이 아닌 모운동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마을로 만들고 싶은 꿈이다.

 

<,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www.nulsan.net



- 월간 산사랑(한국산지보전협회) 11, 12월 호 기고 자료입니다.

 

Posted by 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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