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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귀신도 모르는 전라북도 김제 귀신사(歸信寺)

by 눌산 2008.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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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사. 묘한 절 이름일세.


한자표기가 되어 있다면 이해가 쉬울 법도 한데 도로변 표지판에는 한글표기만 되어있다. 김제하면 금산사, 금산사하면 김제를 먼저 떠올릴 정도니 금산사와 이웃하고 있는 귀신사는 귀신도 모를 정도로 꼭꼭 숨겨진 절이다.

봄가을이면 금산사 주차장은 관광버스로 꽉들어찬다. ‘쿵~짝 쿵~짝‘ 뽕짝 가락 울려 퍼지면 부처님도 어깨춤을 추지 않고는 못배길것이다. 그런 대(?)찰 옆구리에 낀 귀신사니, 이름 또한 고즈넉한 산사의 느낌하곤 거리가 먼 귀신사니, 누군들 곁눈질이라도 하겠는가.



귀신사 대적광전

그래도 귀신사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주변에는 6-7개의 암자가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에서 승병을 양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이렇게 폭삭 쪼그라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금산사 뽕짝 가락에 짖눌린게 아닌가 싶다. 다행이다. 그나마 절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으니 다행 아닌가. 귀신사는 마을 한가운데 들어 앉아 있다. 대부분의 절이 그렇듯, 먼 산 끄트머리 사하촌을 거나하게 거느리고 들어 앉아 있는 여느 절과는 다른 모습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고서야 절이구나를 느낄 만큼, 마을길을 구비 돌아 들어갈때까지만해도 어디가 절이고, 어디가 민가인지 구분이 안 간다. 마을과 절이 하나가 되어 있다.






귀신사는 일주문이 없다. 절 마당 한켠에 놓인 평상이 전부다.


지나는 길에 '멍하니' 앉아 쉬어 가기 좋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면 상당히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절이 귀신사였다. 드러나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낡고 허름한 귀신사의 풍경은 여행 중의 온갖 화사한 기억을 다 물리치고 가장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이곳 귀신사를 배경으로 한 양귀자의 ‘숨은 꽃’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가는 귀신사를 보고 “오랜 시간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채워가라는 속뜻을 담고 있는 절”이라고도 했다.

귀신사를 찾은 느낌은 양귀자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도,  어느 여염집 마당에 들어선 느낌이 포근한 그런 절이다.






장독대가 여느 여염집 마당같다.장독대 옆으로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 있다.


풀꽃을 좋아하는 스님이 계신가보다.


[찾아 가는 길] 호남고속도 금산사 나들목을 나와 금산사 방향으로 가다가 금산사 입구 조금 못 미쳐 왼쪽 712번 지방도를 탄다. 금산사 가까이 와서야 귀신사 표지판이 있다. 마을 논 한가운데 귀신사 부도가 하나 있는데,
오래전에는 이 일대가 다 귀신사 영역이었음을 말해준다.


 






하룻밤 자는데 만원하는 금산여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귀신사를 가다 반가운 간판하나를 만났다. 양철 판에 페인트로 글씨가 새겨진 금산여관. 족히 60년은 넘었을 거라는 주인의 말처럼, 낡고 허름하다. 낡고 허름해서 반가울 수밖에. 사랑하는 여인과 '러브'를 목적으로 찾는다면. 아마 그날로 그 여인과는 '땡'치고 말 것이다. 아무튼 '러브'는 국도변의 '러브호텔'을 이용하시길.^^

언젠가 봉화 춘양역 앞 여인숙에서 하룻밤 묶은 적이 있다. 만 오천원인가 했던 기억이 난다. 까실까실한 느낌의 솜이불이 좀 무겁긴 했지만 그런데로 옛 추억을 더듬기에는 좋았다. 마당 한켠에 있는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물론 화장실은 공동이다. 문을 열면 맞은편 손님방이 훤히 바라 보이는 그런 방이었다.


편리함에 익숙한 세상이다 보니 뭐 하나 불편함을 만나면 견디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때론 그 불편함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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