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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깊은 골짜기 끄트머리 외딴 집.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탁 트인 전망은 사치라 생각 했으니 굳이 전망 좋은 터는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명당의 가장 기본 조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 아니어도 되었다. 단지, 집 한 채 오롯이 서 있을 정도의 공간이면 족했고, 골짜기로 통하는 오가는 길 하나와 사철 마르지 않는 작은 실개천 정도만 흘러도 된다고 생각 했다.

나이 탓인가, 지금 생각은 다르다. 변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람 사는 곳, 사람이 살았던 곳, 옹기종기 모여 있어도 상관없으니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더 좋더라는 얘기다. 길도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산다. 산과 들, 계곡에도 오랜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던 옛 사람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땅, 사람의 땅이다. 그런 땅을 밟으면 느낌이 다르다. 걷고 싶고, 앉고 싶고, 눕고 싶어진다.

서두가 길었다. 몇 번 갔던 마을인데, 볼수록 참 마을답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가끔 오가는 길목이라 특별한 목적 없이 가끔 들러 이 골목 저 골목 걷다 오곤 한다.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문난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냥, 참 편안한 곳이다, 쯤으로 설명하면 되겠다.


근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꽤 높은 지역이다. 해발 5~600미터쯤 된다고 하는데 확인은 못했다. 입구는 좁고, 길목은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산 중턱에 위치에 있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편안해 보이는 지형이다.


거기마을이다. 마을 지명이 거기처음, 독특한 마을 지명 때문에 찾게 되었다. 지역 관청 홈페이지에 보니 마을 지명유래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었다.

계곡의 맑은 생수가 흐르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화계촌(花溪村)이라고 불러왔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지금의 거기(居起)로 불리게 되었다.

거기마을은 조선 숙종때 함양박씨가 처음 들어와서 정착하였고 연이어 신창맹씨가 들어왔다. 농사를 주업으로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개척하면서 같이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마을 뒷편 높은 산인 주화산 골짜기의 아름다운 꽃이 무수히 피어나서 조용한 계곡이 별유천지로 여겨지는 고을이었다.

거기마을은 음지마을과 양지마을로 구분되어 있다.


거기마을 보다는 화계촌(花溪村)이라는 지명에 더 마음이 간다. 말 그대로 꽃 피는 골짜기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늘 이즈음에만 찾았던 것 같다. 화계촌하면 봄이 떠오르는데... 봄 풍경을 상상해 본다. 정돈 되지 않은 머리칼처럼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 꽃과 야산 여기저기에서 피어나는 복사꽃, 진달래가 만개하면, ‘꽃 피는 골짜기가 될 테니까.


딱 먹기 좋게 익은 홍시가 길바닥에 나뒹군다. 




언제나 그렇듯 마을은 고요하다. 고샅 걷기에 나선다. 주인 없는 빈집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인연이 닿는다면 이곳에 터 잡고 살지도 모를 일이다.




남동댁, 오르막댁, 지난번에는 없었던 문패가 달렸다그리고 이름도 새겨 넣었다. 평생 무슨무슨 댁, 누구 엄마, 누구 할머니로만 살았던 어머니들의 이름을 찾아 준 이의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아까 고추밭에서 만난 어르신 댁인 모양이다. 고추 하나에도 정성이 담겨 있다. 건조기에 들어 가는 고추보다 이 가을볕에 누워 있는 고추는 복이 많다.


오후 4시 25분, 가을볕이 눈부시다. 따가운 햇살에, 색바랜 코스모스가 오래된 마을을 닮았다. 골짜기를 빠져 나왔다. 산아래는 깊은 협곡이다. 덕분에 해는 이미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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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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