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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오지

아랫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동강의 오지. 고마루마을

by 눌산 2008.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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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꼭꼭 숨어있는 이색 지대


예로부터 산다삼읍(山多三邑)이라 하여 강원도의 영평정(영월 평창 정선), 전라도의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경상북도의 BYC(봉화 영양 청송)를 최고의 오지로 손꼽았다. 모두가 산세가 험하고 척박한 농토 덕분에 산비탈을 개간한 화전민들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곳들이다. 열악한 환경 덕분에 이들 고장은 근래에 들어 청정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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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루마을의 들목인 기화리의 석문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귀틀집이나 너와집 같은 화전이 남긴 흔적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문화란 이름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영평정’에는 유독 우리의 옛 전통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오지마을이 많다. 그 중에서도 평창군 미탄면 한탄리 고마루마을은 지리적 문화적 환경적으로 오지의 삼박자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곳으로 석회암 지대인 동강 변에 위치해 있다. 아랫마을 기화리나 한탄리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고마루는 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재치산(751m) 아래 움푹 페인 분지를 이룬 독특한 지형으로 토양층 아래 석회암 지층이 내려앉는 돌리네(Doline)현상에 의해 형성된 분지마을이다. 고마루마을 사람들은 바깥나들이를 할때 반드시 아랫마을을 거쳐야 하지만 기화리나 한탄리 사람들은 산꼭대기 마을에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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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인 한탄리에 붙은 고마루마을 주민들의 우체통

들목은 미탄면 소재지로 동강을 눈앞에 두고 산으로 올라야 한다. 이 지역에는 나룻배를 건너다니는 강마을이 대부분이지만 특이하게도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이색 지대를 만날 수 있다. 동강으로 흘러드는 한탄리의 기화천 주변에서는 땅속으로 물이 흐르다 지상으로 솟아 흐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석회암 지대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한탄리의 4km에 이르는 계곡도 모두 지하로 물이 흘러 여름철 우기가 아니면 계곡에서 물을 볼 수가 없다. 오지마을을 찾아가는 길이 더없이 삭막하게만 느껴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움푹 들어간 분화구 모양의 크고 작은 분지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잡초만 무성해 상상이 안 되지만 한때는 40여 가구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었던 소중한 농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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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루마을 가는 길.


자동차도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고갯길을 20여분 오르면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끄트머리에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오신 이OO 할아버지 댁이 있다. 할아버지는 7년 동안의 군 생활 외에 단, 한 번도 고마루를 떠나본적이 없다고 한다. 고랭지 채소가 주업으로 자식들은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 만이 살고 있는데, 이제는 편히 지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돌밭을 개간해 농사짓고 자식 공부시키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옥시기(옥수수), 감자밥만 묵고 살았어도 그때가 좋았댔어. 못살았어도 작은 것 하나도 나눠 먹던 인심이 있었으니까”

지금도 나무로 군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 하나같이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공해와 물질만능 풍조에 찌든 도시보다 예나 지금이나 생활은 달라진 것 없어도 인심 좋고 공기 맑은 고마루가 훨씬 좋으시단다. 척박한 땅을 개간해 옥수수, 감자 농사로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지금은 서울의 큰 회사에 다닌다고 묻지는 않는 아들 자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이 안타까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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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루를 찾아가는 길은 산을 오르는 수고가 따른다.


10여 년 전 만해도 영월이나 평창 장을 보려면 산 넘어 50리길을 걸어 다녔는데, 고랭지 채소 재배를 하면서 도로가 생겼다. 하지만 고마루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지금도 읍내에 나가려면 산 아랫마을인 기화리까지 1시간 이상을 걸어 나가 버스를 타야한다. 내려갈 때는 1시간이지만 올라갈 때는 족히 두 시간은 걸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할머니는 5일마다 서는 평창 장날이면 어김없이 채비를 한다. 특별히 살 것은 없어도 장에 나가면 친구도 만나고 이런저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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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리네 현상에 의해 움푹 페인 분지를 이룬 고마루마을


마을에서 영월 문산 나루로 이어지는 옛길이 희미하나마 남아있다. 주민들의 영월 나들이 길이다. 옛길을 따라 동강 변으로 내려서는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강변의 한가로운 풍경과 나룻배로 강을 오가는 주변 정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고마루에는 여행자를 위한 편의 시설은 전혀 없다. 하지만 야영을 할 수 있는 푸른 초원은 얼마든지 있다. 야영은 주민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면 가능하다. 유독 하늘이 가까워보이는 고마루의 밤하늘을 벼게삼아 할아버지의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하룻밤 지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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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루에는 빈집이 더 많다.



[트레킹 Tip] 승용차로 고마루 고갯마루까지는 갈 수 있지만 고마루를 거쳐 동강 변으로 내려오는 트레킹을 하려면 한탄리에 주차한 후 걸어가야 한다. 기화천이 흐르는 한탄리 초입에서 고마루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 거리, 1시간가량의 비교적 경사가 심한 고갯길이 있지만 소나무 숲이 우거져 삼림욕장이 따로 없다. 멀리 동강이 시야에 들어오는 마을 끄트머리에서 200년 되었다는 동굴 속의 암자 금수암을 지나 문산 마을까지 이어지는 희미한 옛길이 남아있다. 문산 마을에서는 동강을 거슬러 올라 기화천이 동강과 합류하는 마하리를 지나 출발지점인 한탄리로 되돌아가면 된다. 12km 쯤 되는 거리로 5시간가량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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