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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오지

비슷한 사연을 간직한 '쉰패랭이골' 이야기

by 눌산 2008.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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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두고 들어간 패랭이의 숫자로 몇사람이 죽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겨진 패랭이의 숫자는 그 골짜기의 이름으로 남겨져 전해온다. 비슷한 사연을 간직한 강원도 영월의 '쉰패랭이골'과 경상북도 봉화의 '쉰패랭이골', 강원도 양양의 '아흔아홉구댕이' 이야기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조전리(助田里) 쉰패랭이골]

강원도 영월군 남면 조전리의 쉰패랭이골. 어렵고 힘든 시절 恨이 서린 골짜기다. 패랭이는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만든 신분이 낮은 민초들이 썼던 갓의 일종으로 남겨진 패랭이의 숫자가 그 골의 지명이 된 경우.

충청북도와 강원도 경계지점에 위치한 조전리(助田里)는 이레동안 소를 갈아야 할 정도로 긴 밭이 있었다하여 진밭(긴밭)으로 불리다 언제인가부터 조전(助田)으로 바뀐 지명으로 상촌(上村)과 하촌(下村)으로 나뉘는데, 하촌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골짜기가 쉰패랭이골이다.1965년경 이 쉰패랭이골에는 철을 캐던 광산이 있었다. 나무로 버팀목을 쓰고 기술도 그리 발달되지 못한 터라 사람들의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절이야기다. 갑자기 무너진 굴에서 단 한사람도 살아 나오지 못했고, 그 후 몇 사람이 죽은 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광부들이 썼던 이 패랭이의 숫자로 숨진 사람들을 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牛口峙里) 쉰패랭이골]

영월의 쉰패랭이하고 똑 같은 지명이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일제시대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금광이 있었다는 우구치리(牛口峙里)의 우구치계곡으로 합류하는 골짜기로 역시 작은 금광이 있던 곳.

춘양에서 사과재배지로 유명한 서벽을 지나 영월로 나가는 길목에 백두대간 도래기재를 넘게 된다. 고개를 내려서면 우측으로는 우구치리 금정(金井)마을로 가는 길이고, 계속가면 영월 땅으로 이어지는데, 이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수백년된 노송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골이 쉰패랭이골이다.

영월 조전리의 경우와 거의 비슷한 유래를 갖고 있는 봉화의 쉰패랭이골은 현재 사람이 살지 않은 잊혀진 골짜기지만 금광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비교적 많은 사람이 살던 큰 마을이었다고.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 아흔아홉구댕이]

지명은 다르지만 위 두마을과 비슷한 사연을 간직한 마을이 강원도 양양에도 있다. 마을의 지명은 아흔아홉구댕이, 말 그대로 아흔아홉명의 목숨을 앗아간 은광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경우는 처음 이야기를 접하고 양양군청과 문화원 등 여러 곳에 수소문하여 알아보았지만 그 기록이 전혀 없었다. 단지 지금으로부터 약 1백년 전에 큰 규모의 은광이 있었다는 것만을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아흔아홉구댕이가 있는 곳은 연화동이란 곳으로 인근에 사는 아흔 살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모든게 열악한 상황이라 이 은광에서는 매일같이 사고가 났었는데, 아흔아홉구댕이란 지명을 남기고 끝을 맺을 정도의 큰 사고가 난 후 광산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밖에 걸어두고 들어간 패랭이의 숫자로 숨진 사람이 모두 아흔아홉명으로 추정할 뿐, 단지 그 숫자는 상징적인 수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그만큼 많은 광부들이 목숨을 잃었을 거란 얘기다. 아흔 살이 넘으신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아흔아홉구댕이의 기억은 사고 이후 공포의 골짜기로 어느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무인지경(無人之境)이 되었다고. 4년전 아흔아홉구댕이의 은광터를 찾았을때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뿐, 무너진 동굴은 그대로였다.


우리 나라 지명의 형성과정을 보면 그 지역의 지형이나 자연환경(산천, 바위, 고개 등), 또는 생활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샘이나 다리, 향교, 정자, 탑 등에서 유래한 것을 볼 수 있지만 이렇게 그 시절 상황이나 입으로 전해오는 과정에서 변형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말 지명이나 옛 지명들은 그 지역의 지형지세와 우리 조상들의 삶 등을 한눈에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옛 지명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뜻도 없는 전혀 다른 지명으로 뒤바뀐 경우도 많아 잘못 알려진 그 지명들을 어떻게 올바르게 알릴 수 없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것을 기억하는 1세대 원주민들이 떠날 경우 그 좋은 지명들이 모두 잊혀지지 않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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