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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금강 도보여행-3 장수읍에서 천천면 월곡리까지

by 눌산 2010.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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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 노하리 마을숲에서 출발합니다. 주말을 민박집 주인으로 보내고 오랜만에 걷기에 나섰습니다. 걷기에도 탄력이 붙어야 할 만 합니다. 며칠 쉬고 나면 게을러지기 마련이니까요.


노하리 마을숲입니다. 근사하지요? 아침시간이라 숲을 찾아 든 빛이 포근해 보입니다. 자주괴불주머니로 가득찼던 숲에는 애기똥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밋밋한 하루하루지만 자연은 잠시도 쉬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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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마을 건너 제방길로 들어섭니다. 멀리 보이는 도로는 13번 국도입니다. 다행이도 국도와 떨어져 걷는 길이 있습니다. 경운기 로타리 친다고 하지요. 모내기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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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물빛이 탁해보입니다. 상류 공사때문입니다. 그래도 먹잇감을 찾는 새들의 움직임은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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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을 많이 했지만 습관같은게 하나 있습니다. 자주 뒤를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해집니다. 아마도 아쉬움 같은 것입니다. 또 빛에 민감한 사진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좋은 사진을 담고 싶은 욕심같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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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사과의 고장입니다. 장수 땅에 들어서면 사과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곳곳에서 만납니다. 또 한우가 유명합니다. 'Red'란 주제로 가을엔 축제도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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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를 위한 인공습지입니다. 공원처럼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인공으로 습지를 조성해 하수처리를 한후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지요. 이해를 돕기위해 안내판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자연통풍형 호기조/ 습지조를 이용한 인공습지정화기술
 
자연통풍 방식으로 공기가 공급되어 호기성 분위기가 유지되는 호기조(갈대조)와 공기가 공급되지 않는 혐기/ 무산소조(습지조)를 유입수가 차례로 통과하면서, 각조의 여재(모래, 자갈, 갈대, 뿌리)에 서식하는 미생물에 의해 유기물 및 질소, 인을 동시에 제거하는 자연친화형 하수고도처리기술

참 어려운 말입니다. 또 모든게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자연적인 방식에 의해 정화가 되던 하천이 이젠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 세상이니까요. 자연정화에 가장 중요한 미생물이 서식하는 모래나 자갈, 수초 등을 죄다 긁어 내버리고는, 이제는 이런 인공습지까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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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자에게 정자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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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 꼭 산책로 같지요? 13번 국도입니다. 명색이 국도지만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걷기에 큰 불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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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과 국도를 번갈아 가며 걷습니다. 때론 논두렁 밭두렁을 걷기도 합니다. 도로와 멀어질수록 풍경은 더 아름답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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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루비(墮淚碑)'란 푯말을 보고 찾아간 곳입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83호로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에 있습니다.

장척 마을의 산 기슭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감을 따라 순절한 통인(通引:관아에 딸려 잔심부름을 하던 벼슬아치)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시대 숙종 4년(1678) 당시 장수현감을 지내던 조종면은 민정시찰을 나섰다가 이곳 산비탈길을 지나게 되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놀라 숲 속에 있던 꿩이 소리치며 날아오르고, 이로인해 현감의 말이 덩달아 놀라 한쪽 발을 잘못 디디게 되어 결국 벼랑 밑으로 떨어져 말과 함께 현감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현감을 뒤따르던 통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자신의 잘못으로 현감이 죽게 되었다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에 꿩과 말의 그림을 그리고 ‘타루(墮淚:눈물을 흘리다)’라는 두 글자를 쓴 후 스스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장수현감으로 부임해온 최수형이 이 사연을 전해듣고, 주인을 따라 죽은 그 충성스런 의리를 널리 알리고자 비를 세워 ‘타루비’라 이름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비각 안에 모셔둔 이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구조이며, 비몸의 윗변 양 모서리를 비스듬히 잘라 다듬었다. 순조 2년(1802)에 세운 비로, 받침부분이 부러져 다시 보수하였으나 역시 볼품이 없어 1881년에 지방민들의 뜻을 모아 ‘장수 순의리비’를 다시 세워 옆에 함께 모셔두었다.

성이 백씨라고만 전하는 이 통인은 논개, 정경손과 함께 장수지역의 3절(三節:절개를 지킨 3인)로 추대되고 있다. 비각 옆 바위 윗면에는 같은 날 생을 마친 조종면 현감을 기리는 ‘불망비(不忘碑)’라는 글귀가 남아 있어 더욱 깊은 감회를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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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봐도 한눈에 참 정갈한 마을이다 했는데, 마을 주민 한분이 모정 청소를 하고 계십니다. 묵은때를 씻어 내기 위해 물청소까지. 가만 봐라보고 있었더니 반색을 하십니다. 이유인즉슨, 수도꼭지를 틀러 물조절을 해야 하는데 오르내리기 힘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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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마을입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돌담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마을들은 무너진 돌담을 그대로 놔두는데 이 마을은 다시 쌓았습니다. 빈집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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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갈하게 보였나 봅니다. 혹시 이 마을 이장님이 각이 생명인 군인출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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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을 흐르는 금강에는 유독 모래톱이 많습니다. 적당한 숲그늘과 함께. 예전처럼 아이들이 많다면 깨벗고 미역감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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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리 박곡마을입니다. 마을 규모가 꽤나 크다했더니 방앗간도 있습니다. 강에 바짝 붙은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물래방아가 돌아갔겠지요.

참 재밋습니다. 마을 하나 지나면 또 다른 마을이 기다립니다. 거의 1km 정도마다. 대부분의 마을은 강 오른편 산자락에 붙어 있습니다. 방향으로 치자면 남서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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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빈집 한채가 발길을 붙잡습니다. 눌산은 왜 이런집이 탐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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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중에 상농사로 친다는 담배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만큼 힘들다는 얘깁니다. 가장 더울때 담뱃잎을 따고 건조시키는 일을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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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골학교는 폐교되었습니다. 면소재지에 하나 정도 남아 있을 정도로. 월곡초등학교도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은 공사현장사무실로 쓰는 모양입니다. 세종대왕, 유관순 누나, 이승복 형님 그대로 모셔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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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장수하면 유명한게 사과와 한우 말고도 말이 있습니다. 월곡리에 있는 장수승마장입니다. 장계면에는 마사회 경마목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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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더위에 자꾸 나뭇그늘을 찾게 됩니다. 쉬어가자... 와룡자연휴양림 입구 남양마을에서 잠시 멈춥니다.


금강도보여행 -1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 -> http://www.nulsan.net/929
금강도보여행 -2 수분리에서 장수읍내까지 -> http://www.nulsan.net/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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