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18 / 전남 창평, 경북 함창

눌산 2018. 2. 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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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 했다.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한 위안의 말일 수 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겨울이 따뜻하면 보리가 웃자랄 뿐만 아니라 병해충이 월동하여 그해의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얘기. 어느 계절이든 그 계절다울 때 가장 가치 있다. 추울 때는 추워야 하고 더울 때는 더워야 제맛인 법. 추운 겨울을 보내야 더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연 사흘 쉴 새 없이 내린 폭설, 그리고 보름 이상 지속된 한파. 연일 한파경보를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울리고, 뉴스에서는 체감온도 영하 25도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며 무시무시한 추위를 알리고 있었다. 종일 걷게 될 것이라 조금 긴장은 했지만, 낯선 땅을 밟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느림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창평과 함창을 다녀왔다.

 

‘슬로시티 창평’을 만든 삼지내마을.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이 마을 아래에서 모인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3.6㎞에 이르는 마을 안 옛 담장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전통에서 느림의 여유를 맛보다, 슬로시티 창평
   
   창평에 가면 으레 시장부터 찾게 된다. 일단 국밥부터 한 그릇 말아줘야 한다. 이곳은 창평보다 ‘창평국밥’으로 통하는 소읍(小邑)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이다. 날이 추울수록 뜨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한 법. 창평시장에는 필자의 20년 단골집이 있다. 국밥거리가 따로 있을 만큼 창평은 국밥으로 유명하다. 국밥은 서민들의 대표음식. 특히 시장에서 만나는 국밥 한 그릇은 서민들에게는 끼니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난장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장꾼들에게는 주린 배를 채워주는 음식이다. 알고 보니 30년, 40년 된 단골도 수두룩했다. 광주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온다는 옆자리에 앉은 김성식(58)씨는 “고등학교 졸업식날 자장면 대신 먹은 게 바로 이 창평국밥입니다. 친구들하고, 아내하고 자주 옵니다. 쌀쌀한 날이면 더 생각나는 이 집 국물 맛이 끝내주거든요”라고 했다. 전국에 소문난 장터국밥이 지역마다 하나씩은 다 있지만, 창평국밥만의 특징이 있다. 맑은 국물에 부드러운 내장이 밥보다 많다. 내장과 국물이 하나가 돼 깔끔하고 구수하다. 무엇보다 국물맛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돼지 누린내가 없어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긴다.
   
   창평에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슬로시티 창평’을 만든 삼지내마을이 그곳. 면소재지가 있는 삼천리(三川里) 삼지내는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이 마을 아래에서 모인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3.6㎞에 이르는 마을 안 옛 담장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고, 지난 2007년 완도 청산도, 신안 증도, 장흥 유치와 함께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흙과 돌, 기왓장이 얹혀진 담장 아래로는 청명한 하늘빛만큼이나 맑은 도랑이 흐른다.

 

 

슬로시티 안내센터인 달팽이가게.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마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역 특산품 판매점인 달팽이가게에서 만난 송명숙 담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슬로시티를 즐기기에는 이런 날이 제격입니다. 폭설이 내린 후라 한옥에 눈 쌓인 모습도 아름답거든요”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를 추천했다. 주차공간이 있는 달팽이 가게에서 시작한다. 한옥 건물인 창평면사무소 앞이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현대화된 창평 면소재지고, 우회전하면 돌담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천천히 걸으며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집집마다 내걸린 문패가 그것. ‘아궁이가 이쁜 엿집’ ‘겁나 많은 석류나무집’ ‘36가지 약초밥상’ ‘정원이 이쁜집’ ‘매화나무집’ 등 전시를 위한 집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다 보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어 집집마다 이런 특색 있는 문패를 걸었다. 눈이 내린 뒤라 그런지 돌담 아래 흙길은 촉촉하다. 오래 걸어도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100년 이상 된 고택이 즐비한 삼지내마을은 500년 역사의 창평 고씨 집성촌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냈던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고정주 고택을 비롯해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등 1900년대 초 건축된 한옥 20여채가 모여 있다.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돌담골목 하나가 슬로시티 지정의 시발점이 되었고, 또한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삼지내마을 돌담골목 산책에서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부드러운 곡선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심지어 곡선이었던 강(江)도 직선으로 변했다. 직선이 빠른 속도로 인해 조급증을 유발한다면 곡선은 우선 시각적으로 유연하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골목이 그렇다. 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여기 창평 삼지내마을 돌담골목은 여느 휴양지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준다. 곡선은 마을 전체를 아우른다. 흙과 돌, 기왓장이 얹혀진 담장 아래로는 도랑이 흐른다. 청명한 하늘빛만큼이나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이 역시 곡선이다. 고즈넉한 한옥 골목을 걷다 보면 한두 굽이만 돌아도 이내 여유를 부릴 줄 아는 느린 여행자가 된다.
   
   수백 년 전해져 내려오는 슬로푸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옥 민박뿐만 아니라 죽순, 매실장아찌를 비롯한 약초밥상, 천연염색, 야생화 효소 등 각자의 재능을 활용한 공방과 체험장이 마을 골목골목에 들어앉아 있다. 또한 조선시대 이곳으로 낙향한 궁녀들이 처음 만들었다는 창평 한과와 쌀엿은 창평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설 명절을 앞두고 주문이 밀려 밤샘 작업까지 할 정도라고.

 

‘모녀 3대 창평 쌀엿 공방’의 윤영자씨. 좋은 엿기름을 만들기 위해 8시간째 아궁이 앞을 지키고 있다.


   
   창평에는 현재 대규모 공장 말고도 가내수공업으로 엿을 만들고 있는 집이 40여가구나 된다. 그중 삼지내마을 건너편 유천리에서 모녀 3대가 엿을 만들고 있는 윤영자(79)씨 공방을 찾았다. 윤씨는 작고한 친정어머니에게서 배웠고, 지금은 그의 딸 최영례(47)씨에게 이어지고 있다. 엿 맛이 다 그렇지 뭐 했다. 그런데 한 번 손이 가니 한 봉지를 다 비울 때까지 멈추기가 어렵다. 최씨는 그 비결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재료와 정성이 맛을 좌우합니다. 대량 생산이 아닌 가마솥과 장작불 등 옛날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기 때문이죠. 쌀을 불리고, 고두밥을 짓고, 밤새 식혜를 만들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줄곧 저어줘야 하는 고된 작업입니다. 엿이 고아지면 어머니는 땀(엿의 농도)을 보고 불을 뺄 때를 가늠하는데 18년째인 저도 따라잡을 수 없는, 비법이라면 비법이겠죠. 어릴 적부터 집에서 엿을 만들다 보니 식혜밥만 먹고 자라 이제는 보기도 싫답니다.(웃음)”
   
   갱엿을 당겨 늘리고 자르고 포장까지 꼬박 하루가 걸린다. 모든 게 사람의 손을 거치는 수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엿을 늘리는 작업은 두 사람 간의 힘 조절과 호흡은 물론 온도차와 습도가 잘 맞아야 한다. 두 사람이 보통 80~90번을 잡았다 당기기를 반복해야만 까만 갱엿이 하얀색 엿으로 변한다. 끝으로 맛과 식감을 좌우하는 바람을 불어넣는 작업을 거쳐 창평 쌀엿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입에 달라붙지 않고 바삭바삭한 쌀엿이 탄생한다. 최씨는 “매콤한 생강향과 단맛이 어우러져야 하고, 바삭바삭하게 잘 부서지면서 입안에 달라붙지 않는 식감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창평 쌀엿의 자랑입니다. 모든 게 수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대량 생산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맛이죠”라고 했다.
   
   “좋은 엿기름을 써야 하고, 엿물을 달일 때 장작불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는 윤영자씨는 8시간째 아궁이 앞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잠시도 앉아 있기 힘든 매케한 연기 속에 쪼그려 앉아 주걱을 휘휘 젓는 모습은 명인의 칭호를 붙여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유천리에도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이 살아 있는 돌담골목이 있다. 삼지내마을에 비해 비교적 호젓하게 둘러볼 수 있다.

 

여행 Tip
   
   창평 면소재지 전통시장에는 국밥거리가 있다. 원조 시장국밥을 비롯 창평국밥, 창평장터국밥 등이 문을 열고 있다.
   
   삼지내마을 한옥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 담양창평슬로시티 위원회(061-383-3807 http://slowcp.com)를 통해서 한옥민박과 마을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고, 담양군청 문화관광과(063-380-3154)를 통해 사전에 예약하면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모녀 삼대 창평 쌀엿 공방’(010-4067-8017)은 유천리에 있다. 작은 간판이라 눈에 띄지 않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미리 전화를 하고 찾아가거나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 간이역 함창역 대합실 천장에는 명주 물레가 빼곡히 매달려 있다.

 

 

예술로 승화시킨 ‘함창명주’의 고장, 함창 아트로드
   
   함창 하면 대부분의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지명이다. 행정상의 소속은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이다. 상주와 문경 중간 어디쯤 된다고 하면, 대충 감은 잡힐 것이다.
   
   상주시를 지나 문경시 점촌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를 탔다. 이내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함창평야다. 뒤로는 문경의 산악지역과 접해 있지만 앞으로는 멀리 낙동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평야지대다. 예로부터 상주를 삼백(三白, 쌀·누에고치·곶감)의 고장이라 했던 것도 다 함창의 넓은 뜰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함창 하면 삼백 중 하나인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만드는 명주가 가장 유명하다. 이 명주를 예술로 승화시킨 ‘함창 예고을-금·상·첨·화’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인해 조용하던 동네가 한동안 들썩거렸지만, 현재는 그 흔적들만이 곳곳에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람은 떠나도 예술은 남는 법. 천천히 걷기 좋은 아트로드란 이름의 길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먼저 함창 오일장이 열리고 있는 장터로 간다. 인구 7000의 소읍(小邑)이라 장날 치고는 고요하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장터에는 손님은 없고 상인들만이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와중에 단연 눈에 띄는 포장마차가 있다. 호떡집이다.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딱 이 집을 두고 하는 말 같다.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딱 이 집을 두고 하는 말 같다. 함창장의 명물 호떡으로 겉은 바삭하고, 땅콩가루와 설탕이 적절히 어우러진 소는 달고 촉촉하다. 눅눅하지 않으면서 겉과 속이 조화를 이루는 맛이다.


   
   “함창 호떡을 모르면 간첩이라여. 일단 맛보고 말해여.”
   
   언뜻 퉁명스럽게 들리는 듯하지만 정감이 가는 억양의 사투리가 낯설면서도 친근하다. 상주, 김천, 예천 일대에서 주로 쓰는 사투리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경상도 사투리로 들리겠지만, 끝에다 여~를 붙이는 독특한 어법이 특징이다. 함창읍 교촌리에 산다는 어르신은 호떡 두 개에 어묵 한 사발을 게 눈 감추듯 먹고는 온다간다는 말 없이 총총히 사라진다. 알고 보니 근동에서는 이미 소문난 호떡집이란다.
   
   “35년 됐어요. 어머니 혼자 하시던 것을 4년 전부터 저와 함께 꾸려가고 있답니다. 상주, 점촌, 가은장까지 나가다 보니 요즘은 남동생까지 나와서 도와주고 있지요.”
   
   김은희(51)씨 얘기다. 함창장터에서 처음으로 호떡 장사를 시작한 김은희씨의 어머니 김희자(75)씨는 함창 장날만 나온다. “김천장까지 나갈 때는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홀로 그렇게 30년을 호떡 장사로 보내셨지요. 이제 그만 나오시라고 해도 장날만 되면 어머니가 먼저 짐을 꾸리신답니다.” 예상했던 대로 손님 대부분은 단골이다. 겉은 바삭하고, 땅콩가루와 설탕이 적절히 어우러진 소는 달고 촉촉하다. 눅눅하지 않으면서 겉과 속이 조화를 이루는 맛이다.
   
   자, 이제 속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읍내 골목을 둘러볼 차례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함창 오일장이 열리고 있는 장터 풍경.

 

▲ 느지막이 파장에 맞춰 장을 보러 나오는 어르신들.


   
   함창 하면 명주다. ‘함창명주’는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이고, 예로부터 함창장은 명주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명주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를 치는 잠상(蠶桑)에서부터 시작된다. 명주실은 누에고치를 끓는 물에 넣어 실 끝을 풀어서 실켜기를 한 것이다. 조상들은 재래식 베틀로 명주를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대량 제직 기술과 화려한 견직물 산업의 발달은 함창명주의 쇠퇴를 불러왔다. 하여, 장터 한편에는 함창 명주를 소개하는 ‘협동예술조합’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누구든 쉬어가라는 의미로 누에고치를 형상화한 평상과 함창명주로 만든 배냇저고리가 걸려 있다.
   
   한때는 골목 통째로 명주시장이 펼쳐질 만큼 대단했다지만 지금은 명주를 파는 상점이 딱 한 군데 남아 있다. 30년 된 함창명주도매시장이 그곳. 여전히 명주로 한복과 전통수의를 만들고 있다. “옛날에는 바느질하는 사람만도 네댓 명씩 두고 있었어요. 도소매를 다 하다 보니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지요. 옛날에는 내 집에 오는 손님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 밥을 나 혼자 다 해줬지요. 지금은 도매 위주지만, 함창명주의 가치를 아는 단골들이 아직도 가끔씩 찾아오곤 하지요.” 상점을 지키던 박소열(70)씨 얘기다. 명주 골목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임진덕(56)씨도 한마디 건넨다. “어릴 때 장날이면 덩달아 신이 났어요. 사람구경, 돈구경을 원 없이 했죠. 장이 열린 다음날 아침이면 땅만 보고 다녔다니까요. 장꾼들이 흘린 동전 줍는 재미가 쏠쏠했거든요.(웃음)” 하,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해수욕장 근처에 사는 아이들의 주머니에 동전 떨어질 날 없다던 얘기가 생각이 나서다. 근처에 우시장까지 있어 장날은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참 오래전 얘기네요. 지금은 인구도 3분의 1로 줄고,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10분의 1도 안 돼요. 고등학교 동창이 한 350명 되는데, 함창에 사는 친구는 33명뿐이에요. 서울, 부산, 대구로 나간 친구들이 안 오면 동창회도 못 해요. 잠시 옛날 생각만 해도 좋네요.” 임진덕씨는 덧붙여 사람들은 쇠락이란 표현들을 쓰지만, 사람도 늙는데 동네도 함께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장터를 빠져나오니 함창읍에서 가장 넓은 도로인 편도 2차선 가야로다. 쭉 뻗은 직선도로 끝에 자리한 아트로드의 시점인 함창역으로 간다.
   
   1924년 개통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선 함창역은 현재 무배치 간이역이다. 대구·부산 방면 3회, 영주 방면 3회, 하루 총 6회의 여객열차가 들고 나지만 역무원이 없다는 얘기다. 역사에 들어서면 매표 창구가 있고, 열차 시간표와 운임표가 걸려 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대신 천장을 가득 채운 명주 물레가 빼곡히 매달려 있다. 그에 관한 내용은 벽면을 둘러보면 된다. 2014~2015년에 걸쳐 시행된 ‘함창 예고을-금·상·첨·화’란 이름의 마을미술프로젝트로 탄생한 예술작품들이다. 1차 사업으로 시행되었던 ‘함창 예고을-금·상·첨·화(錦·上·添·畵)’는 함창역~증촌리(가야마을)~함창전통시장~함창바탕골 일원에 아트로드를 조성하여 총 4구역의 예술권역을 개발하였다. 2차 사업인 ‘2015 협동예술 금·相·첨·화’는 ‘비단이 협동하여 예술이 되다’의 의미로 협동예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여 1차 사업에서 개발된 각각의 권역에 예술작품을 추가하여 아트로드를 완성시켰다.
   
   아트로드는 명주실을 길에다 풀어놓았다. 차도와 인도에 명주실처럼 하얀 실선을 새겨넣어 금상첨화 4개 권역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를 안내해놓은 것이다. 명주실을 따라 걷다 보면 함창의 주요 명소와 마을, 골목, 오래된 상점, 장터 등 소읍의 구석구석을 만날 수 있다.
   
   1권역 ‘금’은 함창역에서 함창버스정류장을 지나 함창목공소까지다. 2권역 ‘상’은 증촌리 가야마을 골목을 지난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전 고령 가야왕릉과 6가야를 상징하는 예술작품 ‘숨’을 만날 수 있다. 3권역 ‘첨’은 함창 장터와 명주를 이용한 아케이드, 협동예술조합을 만날 수 있으며, 마지막 4권역 ‘화’에서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에 문을 연 세창양조장의 옛 모습과 폐허로 변한 양조장을 술·시간갤러리, 라울섬유갤러리, 김석환·있다갤러리, 요아킴·추이아갤러리, 금상첨화, 그리고 예술카페 ‘술도가’까지 무려 6개의 갤러리로 변신한 현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명주실을 따라 느리게 걷고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깨닫게 된다. 함창이 명주이고, 명주가 함창이었다는 것을.

 

함창버스정류장 맞은편에 있는또 하나의 버스정류장, ‘카페 버스정류장주인 박계해씨. 지나는 길에 본 낡은 건물에 반해 터를 잡고 카페 주인이 되었다. 함창의 먹을거리, , 잠자리에 대해 물으면 취향따라 알아서 척척 대답해 준다.

 

여행 Tip
   
   함창버스정류장 맞은편에 또 하나의 버스정류장이 있다. 하나는 서울·대구·구미·김천·대전으로 들고 나는 진짜 버스정류장이고, 또 하나는 ‘카페 버스정류장’(010-6576-2398)이다. 출판도 하는 카페 주인은 박계해씨. 대구행 버스에 앉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에 꽂혀 지금의 자리에 주저앉았다. 커피향보다 구수한 사람의 향기가 더 짙은 집이다. 함창의 먹을거리, 길, 잠자리에 대해 물으면 취향 따라 알아서 척척 대답해준다.
   
   함창의 먹을거리는 딱 한 가지 메뉴로 대답하기 어렵다. 지역 주민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할매손두부집(054-541-0437)은 비지장정식과 산초두부구이가 별미다. 메밀묵밥과 막국수를 내는 메밀묵촌(054-541-1154), 장터의 새알미역떡국을 내는 청사초롱(054-541-5065)이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3번국도, 경북선 철도가 지나는 함창은 교통이 편리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창까지 하루 9회 운행, 소요시간은 2시간15분이다. 열차는 경부선 김천역을 경유해 함창역까지는 경북선을 갈아타면 된다.

 

[·]  눌산 여행작가

 

주간조선 [2494] 2018. 02. 05 발행

 --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4941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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