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신문] 자연이 준 선물, 매일 ‘해독 밥상’ 차리는 부녀회장님
자연이 준 선물, 매일 ‘해독 밥상’ 차리는 여자
전북 무주 설천면 벌한마을 원종례 부녀회장
한동안 전국의 산촌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무주는 당시 호남의 대표적인 오지(奧地)로 소문난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의 중심으로, 라제통문을 가운데 두고 설천면과 무풍면 일대에 오지마을이 모여 있었다. 20여 년 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 바로 설천면 두길리 벌한마을이다. 그 시절과 비교해 보면, 단지 도로가 좀 더 넓어지고 현대식 주택이 들어섰을 뿐,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다. 벌한마을에서 마을 부녀회장을 하면서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 원종례 씨를 만나고 왔다. 라제통문에서 구천동 방향으로 정확히 2.5km 지점에 있는 벌한·방재·구산마을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나이 60이 되면 산골에 사는 게 꿈이었어요
“요새 도로 공사로 어수선하니까 천천히 조심해서 올라와요.”
벌한마을 원종례(65) 부녀회장과 몇 번의 통화 끝에 약속을 잡았다. 요즘 한창 산나물철이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단다. 딱 1시간만 시간을 내기로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북쪽을 향해 열린 꼴짜기에는 나란히 세 마을이 들어서 있다. 첫 마을인 구산마을 앞에서 계곡을 건넌다. 두 번째는 방재, 몇 가구 살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다. 도로 확·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벌한마을이 왜 오지 마을로 소문났는지는 가 본 사람은 안다. 37번 국도에서 마을까지는 4km, 십리길이다. 차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여전리 걸어서 외부 나들이를 할 수밖에 없다. 그 흔한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이다.
“제가 차가 있어서 장날이면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꼼짝없이 걸어야 하니까요.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넉넉한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고 살지만, 딱 하나 대중교통이 없다는 게 늘 아쉽죠.”
원 씨는 6년 전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벌한마을에 터를 잡았다. 등산을 좋아해서 남편과 함께 전국 명산을 두루 다니다 덕유산에 푹 빠졌다. 1년에도 몇 번씩 덕유산을 오르며 “나이 60이 되면 꼭 산에 가 살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삭막한 도시의 삶을 버텨냈다. 얼마나 자주 무주를 드나들었던지 구천동에 사는 친구도 사귀었다. 덕분에 지금의 집터와 농토를 사게 되었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집을 지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잖아요. 늘 꿈꾸던 산골생활이다보니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듯 해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산빛만 봐도 좋고, 문만 열고 나가면 자연이 주는 귀한 선물이 널려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건강한 먹거리를 통해 얻은 건강한 삶
원 씨는 무주로 내려오기 전, 서울 서강대학교 근처에서 30여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다. 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좋은 재료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다. 그래서 지금은 벌한마을 주변에 산재한 산나물과 야생초, 버섯 등을 활용해 음식을 만든다. 마을 체험을 위해 방문했던 체험객이 원 씨가 내는 밥상을 먹어보고는 ‘해독 밥상’이라 이름 붙였단다.
“도시인들이 가끔 찾아옵니다. 마을 체험도 하고 음식 만들기 체험도 하죠. 고사리, 취나물, 다래순, 질경이, 키다리나물, 젓가락나물, 원추리 등의 나물과 메밀전병, 도토리부침개 등으로 상을 차리는데 다들 좋아하세요. 건강한 음식이니까요. 어떤 분은 도시의 찌든 때가 깨끗이 씻겨나가는 느낌이라더군요.”
말 그대로 자연 밥상이고 해독 밥상이다. 이렇듯 자연에서 나는 것을 위주로 식단을 짜는 것은 올해 93세인 친정어머니 때문이기도 하다. 그 곳, 그 땅에서 나는 건강한 먹거리로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덕분에 친정어머니는 요즘도 산나물을 뜯고 집안 일손을 거들 정도로 건강해지셨다고 한다.
원 씨 모녀는 농사도 남들만큼은 짓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수수와 옥수수를 많이 심었는데 산과 접해 있다보니 멧돼지와 새들이 다 먹고 남는 게 별로 없더란다. 그래서 올해는 종목을 바꿨다. 6년 전에 심어 놓은 오미자밭이 있고 더덕도 400평 정도 심었다. 그리고 음식에 필수로 들어가는 고추와 참깨, 들깨도 심을 예정이다.
잠시 집구경을 했다. 넓은 마당은 잔디가 깔려 있을 법도 한데 상추 같은 푸성귀 텃밭이다. 뒤란으로 돌아가니 커다란 두부만들기 체험을 위한 가마솥이 걸려 있고 볕좋은 남쪽 귀퉁이에는 수십 개의 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가 있다. 직접 담근 간장, 된장, 쌈장 판매도 한다. 금방 뜯어 왔다는 취나물과 쑥, 민들레잎, 부추를 다듬는 모녀의 모습이 참 평화로워보인다.
글·사진 눌산 객원기자
무주신문 창간준비3호 2018-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