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아름다운 청년’ 산골로 가다
‘아름다운 청년’ 산골로 가다
충북 옥천 이종효
청년실업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3월 기준 청년실업율은 전체 실업률의 2.5배가 넘는 11.6%로 집계됐다. 15~29세 청년 인구 중 50만7000명이 실업자이고, 이는 1년 전보다 1만8000명 늘어난 수치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다양한 청년실업 대책을 쏟아낸다. 최근 정부는 서울 마포에 20층 규모의 청년 창업타운을 만들어 내년까지 청년기업 300여개를 입주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도 청년실업 타계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여기 홀연히 가방 하나 들고 고향으로 내려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청년이 있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에서 핸드드립 커피집을 운영하는 이종효(31)씨다.
산골에 웬 커피집?
옥천읍에서 보은 방향으로 20여분 가면 안내면 소재지인 현리가 나온다. 뒤로 산 하나만 넘으면 보은 땅으로 옥천의 최북단에 위치한 벽촌(僻村)이다. 최근 대청호를 따라가는 37번 국도가 확장공사를 하고 있어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부챗살처럼 펼쳐진 산자락에 둘러싸인 마을 풍경은 전형적인 산촌의 모습이다. 현리라는 지명만 들어도 과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먼 옛날 얘기지만 면소재지인 현리는 신라 때부터 고려 때까지 현(縣)의 관아(官衙)가 있었다. 언제까지인지는 모르나 한 때 번화했던 시절도 있었다는 얘기다. 인근 대청댐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렸다던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중심도로 삼거리,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양조장도 보인다. “말해 뭐해요. 옛날에는 막걸리 배달하는 자전거가 술도가 앞에 즐비했다니까.” 술도가의 단골손님이었다는, 길에서 만난 촌로 얘기다.
이 씨가 운영하는 카페 ‘토닥’으로 들어섰다. ‘뜬금없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에 자리 잡았다. 직접 내려준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두어 시간 머무는 동안 몇몇 상인들을 빼고 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적막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어느 숲에 들어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곳에 어느 날 갑자기 핸드드림 커피집이 떡 하나 자리 잡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골동네에 커피집을 열 생각을 했을까.
“처음에는 다방인줄 알고 오시는 동네 어르신도 더러 계셨어요. 가만 앉아서 주문 받기를 기다리다 여기는 왜 주문도 안 받냐면서 타박을 주셨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익숙해 하세요. 단골로 드나드는 어르신도 계시니까요.(웃음)”
이 씨 자신도 고향에 내려와 커피집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미술을 전공한 청년은 졸업 후 대전에서 벽화사업을 했다.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줄곧 꿈으로 키워 온 무대미술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다. 공연 시간을 맞춰야 하는 무대미술의 특성상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코를 풀면 페인트가 묻어나올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다른 직업에 비해 돈도 많이 벌었고,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몇 년 지나가자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흙냄새가 그리웠다고 했다.
“뮤지컬 무대미술을 했어요. 밤샘 작업을 하고 나면 다음날 내가 설치한 무대에서 배우들이 공연하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죠. 근데 전 도시 체질은 아니었나 봐요. 육체적인 고통은 얼마든지 견디겠는데 서울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대한 답답함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방 싸서 고향으로 내려 왔죠.”
고향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부모님 일을 잠시나마 도와드리며 마음을 추스르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열악한 농촌의 현실 앞에 그는 고향에 주저앉았다. 힘들게 농사지은 딸기를 헐값에 팔려나가는 것을 보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적업을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대학까지 나온 멀쩡한 녀석이 농사짓는다고 하니 부모님 걱정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좋아하세요. 나름대로 직업도 가졌고, 마을 초등학교 벽화작업도 하고, 어르신들 치매예방을 위한 미술교육과 어린이 그림교사로도 활동하고 있거든요. 의뢰는 많은데 오히려 제가 바빠 더 많은 활동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 없이 여유로운 산골생활
이 씨는 도시 생활할 때 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더 없을 만큼 바쁘게 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표정에서부터 “나 행복해요”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 4년 후배였더군요. 손님으로 가끔 오던 친구인데, 맘에 들어서 여자 친구로 만들어 버렸죠. 조만간 결혼도 할 생각입니다.”
이 씨는 틈나는 대로 부모님의 딸기밭으로 향한다. 일손을 도와드리고 딸기를 활용한 음료를 개발한다. 카페에서 내는 메뉴 중에 생딸기주스나 허니딸기라떼, 스무디 등은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딸기를 재료로 한 것들이다. 제 철에는 생딸기도 판매한다. 이미 소문이 난 덕에 대전이나 옥천 등지에서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한다. 본인도 직접 딸기농사를 지어본 터라 생산만으로는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서 2차 가공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계속 높여나갈 계획이다.
카페는 본래 이발소 자리였다. 5~6년 비어 있던 가게를 1년 동안 혼자서 작업해 외관과 내부를 꾸몄다. 아이들 손님을 위해서 자신이 좋아했다는 오락기도 갖다 놓고, 한편에는 외숙모가 만든 퀼트공예 가방과 사촌동생이 만들었다는 액세서리 판매장도 만들었다.
얼마 전부터는 웹툰 작가와 함께 ‘토닥’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의 이야기와 마을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스토리텔링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4평 작은 공간에 드나드는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이 씨 혼자만이 간직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어느 순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지도 모를 마을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도 출판할 계획이다.
“커피 한잔 내리는데 3분 걸려요. 짧은 시간이지만 커피를 기다리며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마음을 여유롭게 하더라고요. 손님들을 통해 제가 느끼는 게 더 많다보니 지역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자꾸 늘어나는 거죠.”
청년실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는 이씨. 그 역시 도시가 답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도시로 갔었고 자신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2% 부족한 그 무엇인가가 자신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무작정이었지만 아무 대책 없는 고향행이 그에게는 또 다른 인생을 선사했던 것이다.
“도시보다 시골이 더 희망적이라 봅니다. 청년들이 할 일이 무궁무진하거든요. 농사는 기본이고 자신이 가진 전공을 살려 뭐든 할 수 있거든요. 시골살이는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입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등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겁니다. 월수입이 얼마냐고 묻는 사람이 제일 짜증나요. 도시와 달리 시골은 내 수입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이 씨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잠시 마을 골목을 걸었다. 필자도 기억하고 있는 옛 안내 공용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적은 버스정류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문을 닫았다. 이렇게 하나둘 사라진다. 이 소중한 것들이 기억 속에서까지 잊힐까 두려울 뿐이다. 이발소 건물에 카페가 들어서듯 이 씨 같은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문 닫은 버스터미널을 활용해 문화공간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글·사진 눌산
한국산지보전협회 산사랑 웹진 제20호 2018. 5+6 http://kfca.re.kr/sanFile/web20/02_01.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