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신문] 결혼 42년 만에 턱시도 입고 면사포 쓰고 스몰 웨딩
적상면 서창마을 김선배·조순이 부부
결혼 42년 만에 턱시도 입고 면사포 쓰고 스몰 웨딩
어린이날(5월 5일), 어버이날(5월 8일), 부부의날(5월 21일)이 있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올 5월은 2주 간격으로 3~4일 연휴가 두 번이나 이어진다. 지난 어린이날 연휴 기간 동안 전국의 도로는 마비가 될 정도였다 한다.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가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등 때아닌 대이동이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소홀했다면, 곧이어 다가올 연휴는 점수를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겠다.
‘서창으로 봄소풍’ 마을 축제장이 결혼식장이 된 사연
지난 주말, 무주읍 등나무운동장과 반디랜드 등에서는 어린이날 기념식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특히 적상면 서창마을에서 열린 ‘서창으로 봄소풍’이란 이름의 마을 축제에는 200여 명의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모여 한바탕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2018 무주군 마을로 가는 축제의 ‘찾아가는 마을 봄축제’ 일환으로 마을 어르신 스몰웨딩을 비롯하여 프리마켓, 벼룩시장, 먹거리 장터, 웨딩 소품 사진 찍기, 도예·서각 전시회, 스트링 아트·캘리 액자·야생꽃차 체험 등 보고 먹고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결혼 42년 만에 턱시도를 입고 면사포 쓰고 스몰웨딩을 올린 서창마을 주민 김선배(70)·조순이(64) 부부였다. 마을에서 23년째 순두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 부부는 42년 전 전통 혼례를 올리고도 결혼사진이 없었다. 이 얘기를 들은 마을 주민들이 축제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던 스몰웨딩의 주인공으로 이 부부를 모신 것이다. 비록 약식이긴 했으나, 여느 결혼식 못지않은 메이크업과 웨딩드레스를 갖춘 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축제장을 찾은 마을 주민과 방문객이 모두 이 부부의 하객이 되어 결혼식을 축하했다.
마을 축제를 준비하고 진행한 서창마을 주민 이정숙 씨는 “처음에는 스몰웨딩을 마을 체험상품으로 구상했어요. 그러다 결혼사진이 없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작은 결혼식을 올려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오늘 마을 축제를 겸해 스몰웨딩을 하게 된 겁니다.”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 준 관광객과 마을 주민들에게 고마운 마을을 전했다.
적상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마을의 서창(西倉)이란 지명은 적상산의 서쪽에 있는 창고를 의미한다. 행사가 열린 장소는 아름드리 노거수가 빼곡히 들어찬 마을 숲이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의 상징처럼 버티고 서 있다. 봄이면 연둣빛 신록이 우거져 꽃보다 더 아름답다. 마을 숲은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 민간 신앙 유적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도 하고 있다. 수구막이란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또는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을 말하는데 주로 건물이나 나무, 탑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산촌의 특징을 살린 23년 전통 순두부 식당
김선배·조순이 부부가 운영하는 선배식당은 순두부로 소문난 집이다. 서창마을은 이미 순두부마을로 불린다. 선배식당을 비롯하여 3개의 식당이 더 있기 때문. 이 중 부부의 식당이 가장 오래됐다.
“여긴 산골이라 보다시피 변변한 농토도 없어요. 주로 밭작물을 많이 했는데, 다 돌밭이라 고추나 콩농사 밖에 할 게 없었답니다. 서창은 옛날부터 콩농사가 잘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던 터라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더니 맛이 좋아 그런지 금방 소문이 나더군요.”
지금은 무주 지역민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까지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맛이 좋다고 소문난 지 오래다. 서창마을 순두부는 열악한 환경이 만든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얼큰하고 부드러운 순두부찌개에 반찬은 김 씨가 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과 버섯 등 대부분 이 지역에서 나는 것들 위주로 상에 올린다. 김 씨는 “그래서 우리 집은 계절마다 상차림이 달라요. 봄여름에는 생채나물 위주로, 가을과 겨울은 묵나물이 많이 나가요.”라고 했다.
부부는 부지런하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운할 정도다. 오랜 산촌 생활이 몸에 배서 그런지 김 씨는 이른 아침부터 산과 들을 내 집처럼 드나든다. “산에 가면 먹을 게 많아요. 요즘 고사리 철이라 아침저녁으로 다니지 않으면 1년 먹을거리를 못 구하거든요.” 그의 부인 조 씨 역시 변변한 농토 하나 없는 벽촌이지만 송곳 하나 꽂을 빈틈만 보여도 땅을 파고 농작물을 심는다. 그의 텃밭인 식당 맞은편 숲에는 고추, 가지, 토마토 모종 등이 빼곡이 심어져 있다. 산인지 밭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공간이지만 그녀에게는 보물 창고나 다름없다.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두릅과 가죽나물은 데쳐서 묵나물로 보관도 하지만 “사람은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서 이웃과 나눠 먹는다.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지니 단골손님이 많은 모양이다.
부부는 지난 행사 때 찍은 웨딩 사진을 받아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떠 있다. “결혼식 보다 더 떨려”라며 “다 늙어서 뭐하는 짓인지 몰라. 그래도 면사포는 기념으로 꼭 한번만이라도 써보고 싶었어.”하면서 웃는 모습이 마치 소녀의 미소를 닮았다.
글·사진 눌산 객원기자
무주신문 창간준비4호 2018-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