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신문] 터널 안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 삼도봉터널
명소탐방 1 – 삼도봉터널
터널 안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 “천국이 따로 없어요!”
진정한 영호남 만남의 공간,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삼도봉터널
‘백제와 신라를 잇는 문’ 나제통문(羅濟通門)을 지났다. 무주읍을 출발하면서부터 내내 자동차에 부착된 온도계를 유심히 보았다. 35도에서 시작된 기온은 무풍면소재지에 이르러 32도까지 떨어진다. 고도는 해발 400m를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올라온 셈이다. 무풍은 무주군 6개 읍·면 중에서 가장 외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천연 요새와도 같은 지형 덕분에 과거 전란과 재난을 피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십승지’의 하나로 손꼽혔다.
점심식사를 막 마치고 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느티나무 아래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어디 시원한 피서지 하나 추천해 달라‘는 말에 지역 주민은 “하이고 말도 마소. 읍내 잠시 나갔다 왔는데 거기는 사람 살 데가 못 됩디다. 여기도 더운 건 매한가지이나 거기처럼 푹푹 찌는 더위는 없어요.”라며 무풍 사람들의 최고의 피서지라는 삼도봉터널을 가보라고 권한다. 강이나 계곡, 숲이면 몰라도 터널이라니? 과거 피난지가 최고의 피서지가 된 사연을 쫒아가 본다.
무풍면사무소에서 약 7km, 10분 거리에 있는 삼도봉터널을 찾아간다. 면소재지를 벗어나 현내삼거리에서 김천시 대덕면과 부항면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1089번 지방도로를 따라 좌회전했다. 기온은 느리게 떨어지지만 고도는 눈에 띄게 상승한다. 백두대간체험센터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착시현상 때문에 생긴, ‘도깨비도로‘ 구간으로 내리막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오르막길이다. 자동차 기어를 중립에 두고 경험해보시길!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는 반대로 차가 굴러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도봉(1177m)은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 충북 영동군에 접해 있어 붙여진 산이름이며, 과거 영호남의 관문인 부항령 아래에 뚫린 터널이 삼도봉터널이다.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서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를 잇는 삼도봉 터널은 폭 11m, 길이 391m로 1999년 개통됐다. 그 전까지는 가목재라 불리던 고개를 넘어 다녔다. 사실 소통의 제한이 많았던 고개에 터널이 뚫리면서 교류가 빈번해졌다. 행정상의 경계는 무너지고 사람들의 길이 열린 것이다.
“터널 중간쯤이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일 거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경계가 의미가 없어요. 전라도, 경상도 사람 할 것 없이 한 동네 사람들처럼 어울리니까요.”
부항면에서 잡초제거작업을 위해 올라왔다는 김영호씨 얘기다. 함께 있던 동료가 한 마디 거든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데, 두세 시 정도 되면 양쪽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꽉 찹니다. 특히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때도 있어요.”라며 커피 한 잔을 권한다.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 온도계는 순식간에 30도 아래로 떨어졌다. 차를 터널 중간에 세워둘 수 없어 더 이상 기온 측정이 어려웠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온도는 에어컨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시원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이 피서지가 됐을까. 터널이 개통되긴 했지만 사실 차량 통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연히 누군가 더위를 피해 터널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해발 630m, 산꼭대기나 다름 없는 터널 안을 관통하는 바람이 무척이나 시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입소문이 나면서 모이기 시작했다. 터널 안 풍경은 여느 피서지나 다름 없다. 돗자리를 펴고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장기와 바둑으로 여름의 긴 낮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 먹을 거리가 빠지면 서운한 법.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잔뜩 가져와 서로 나눠 먹는다. 아랫동네 주민의 말처럼 천국이 따로 없다.
충북 영동군 용화면에서 택시를 대절해 왔다는 노부부를 만났다. 88세와 86세라는 노부부는 왕복 택시비 5만원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하루 종일 선풍기 앞에 있으면 더운 바람이 나와. 차라리 5만원 쓰고 여기 와서 하루 종일 앉았다 가면 시원하거든.” 이들은 12시쯤 올라와 오후 7시면 내려가신단다.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인도와 차도와의 턱이 높아 비교적 안전해 보인다. 더구나 차량 통행 자체가 거의 없다, 1시간 정도 머무르는 사이 지나가는 차는 고작 두 대뿐. 노인 회관에서 트럭과 경운기를 타고 올라왔다는 어르신들 웃음소리가 왁자지껄 하다. 특이한 점은 전라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사투리가 비슷하다는 것. 전라도지만 경상도의 억양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 또한 과거 두 지역의 빈번한 교류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 그리고 충북 영동 사람까지 진정한 삼도 만남의 공간, 삼도봉 터널에서는 숨이 턱턱 막히는 산 아래와는 정반대 풍경이 펼쳐진다. 터널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외친다.
“폭염이 뭐에요?”
글·사진 눌산 객원기자
무주신문 제7호 2018-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