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신문] 추억의 맛을 팝니다.
‘추억의 맛을 팝니다.‘
30년째 문을 열고 있는 적상면소재지 찐빵 가게
과연 개발 = 발전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편도 1차선 도로가 2차선으로 확장되면 당연히이동 시간이 단축된다. 시간의 단축은 사람의 이동 뿐만이 아니라 물자의 이동에도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좀 단축된다고 삶의 질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도로의 확장에 따른 우회도로의 건설은 전국 대부분의 소읍(小邑) 몰락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인구의 감소, 일자리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앞서 얘기한 도로의 발달 역시 한 몫을 차지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덕유산국립공원이나 전주, 장수를 가려면 대부분의 차들은 적상면 소재지를 지나갔다. 그런데 10여 년 전 우회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는 이면도로가 되어 차량 통행이 많이 줄었다. 우회도로 개통 전 여름휴가철이면 옥수수를 파는 노점이 너댓 군데나 있었다. 한나절 길거리에서 파는 양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한 철에 500만 원 정도는 거뜬히 벌었다는 얘기가 있었으니, 이 때만 해도 지역주민들에게는 소위 살 맛 나는 때였다. 하지만 우회도로가 개통된 후, 면소재지 상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과거, 찐빵을 사기 위해서는 줄을 서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같이 수십 박스의 택배가 나갔으며, 오전 내내 찐빵을 쪄야 할 만큼 잘 팔리던 가게가 있었다. 가게는 작았지만 알짜배기 맛집이다. 하지만 현재는 하루 평균 한 박스(20개) 팔기도 힘들다. 장사 논리만 따진다면 진작 문을 닫았어야 할 집이다.
“하루 만 원어치도 팔고 운 좋으면 이만 원어치도 팔아. 이제는 그만 문 닫으라고들하는데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들 생각해서 난 그렇게 못해.“
적상면 소재지에서 찐빵집을 한 지 30년도 넘었다는 신정이(79) 어르신의 말씀이다. 잘 나가던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어르신의 표정에서 섭섭함이 묻어난다. 많이 못 팔아서라기보다는 찐빵의 인기가 시들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신정이 어르신 고향은 적상면 하가리다. 새내마을로 시집을 가 그곳에서 살다 지금의 적상면소재지로 이사를 나왔다.
“이사만 일곱 번 다녔어. 처음에는 식품점만 하다 찐빵하고 만두집을 겸했고. 19년 전 부터는 찐빵만 팔고 있어.”
적상면소재지가 있는 사천리 일대는 지금이야 대부분이 문을 닫았지만, 당시에는 병원과 약방, 수선집, 철물점, 전파사, 미장원, 중국음식점까지 있었던, 탄탄한 상권을 가진 동네였다. 19번 국도를 오가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이 집의 주요 손님이었다.
“적상은 땅이 별로 없지만, 안성은 땅이 넓어 농사를 많이 짓지. 농사철이면 우리집 찐빵을 새참으로 시켜 먹고 그랬어. 그때는 안성까지 버스 타고 찐빵 배달을 다녔지. 그게 꽤 많은 도움이 됐어.”
찐빵 배달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아마 가격이 싸고 두어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니 새참거리로는 요긴했을 터이다. 농사철이면 여기저기 배달을 다니느라 바빴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택배 서비스도 많았다. 어르신의 찐빵을 한번 맛 본 사람은 택배를 통해서라도 시켜 먹었다.
신정이 어르신이 만드는 찐빵 맛의 비결은 뭘까. “좋은 팥을 쓰고 화학 첨가물을 적게 넣기 때문”이라고 했다. 팥소가 많이 들어가 있고 다른 찐빵과는 달리 식은 후에 먹어도 맛이 있다. 쫄깃쫄깃한 맛이 살아 있기 때문. 가격도 저렴하다. 열 개가 5천원.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난 적상면소재지 도로는 휑했다. 과거의 영화로웠던 시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오가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고민이 필요할 때다. 얼마 전 뉴스에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이란 이름으로 적상면에 5년 동안 수십억이 투자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지역처럼 큰 건물 하나 짓고 벽화 몇 군데 그리고 마는 그런 사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쇄락한 상권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낡고 오래된 흔적 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정이 어르신의 찐빵 가게처럼 말이다.
글·사진 눌산 객원기자
무주신문 제2호 2018-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