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무주신문] 무주 오두재(오도재) 옛길

눌산 2018. 8. 14. 20:25
728x90

 

 

명소탐방 2 – 무주 오두재(오도재) 옛길

 

안성 사전마을에서 적상 상가마을을 넘는 오두재 옛길을 걷다!

장에 가고, 학교 가던 길, 산적의 전설이 깃든 옛 19번 국도

 

사전적 의미의 길이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였으며 그 어원은 무엇일까본디 길은 인류의 생존사와 함께 생성, 발전한 것이므로 이라는 말도 우리 민족사와 함께 발생한 원초적 어휘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란 인간의 의식(衣食)과 주거(住居)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적 선형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잊힌 옛길이 있다. 한때는 사람과 물자가 분주히 오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한낮 숲길이 되어 라이딩을 즐기는 소수 자전거 동호인들 정도만 지나다니는 한가로운 길이 된 곳, 안성면 사전마을에서 적상면 상가마을을 넘는 옛 19번 국도 오두재다.

유난히 햇살이 뜨거웠던 날 오두재를 넘었다. 들목은 사전리 행운가든 앞이다

거길 뭐하러 갑니까? 요새는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다니는 길을...”

행운가든 앞에서 만난 주민 최용운·박영애 부부는 오두재를 걸어서 넘을 거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말린다. 말린다는 것은 길에 대해 아는 게 많다는 얘기렷다. 잠시 주저앉아 수십 년 전 오두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박영애 씨는 41년 전 춘천에서 무주로 시집왔다. 그녀가 기억하는 오두재는 무시무시했다. 하루 두 번 왕복하는 버스가 다녔다. 천 길 낭떠러지를 지나는 길로 구비가 심해 멀리를 안 하는 사람이 없었단다. 당시 오두재는 지금의 안성재가 뚫리기 전까지 버스가 넘어 다녔던 국도였다.

적상 상조마을 장자발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곳에서 잠시 살다가 원사전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때만 해도 오두재는 차도, 사람도 많이 넘어 다녔죠. 적상 상가마을 아이들이 안성 중고를 다녔고, 어른들은 안성장을 보러다니던 시절이니까요. 그때는 안성장이 컸어요. 괴목리나 마산리 사람들도 다 안성장을 보러 다닐 정도였죠.”

최용운 씨 얘기를 듣다보니 상상만 해도 장날 풍경이 그려진다. 이고지고 고개를 넘었을 사람들의 행렬이 즐비했을 것이다. 최 씨는 이어서 재밌는 얘기라면서 오두재 산적 얘기도 들려 줬다.

원래 안성장터가 여기 효자촌 앞에 있었거든. 그때는 우시장도 크게 서서 소장수들이 많이 넘어 다녔어요. 당연히 현찰이 두둑했겠지. 그래서 오두재에 산적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답니다. 실제 산적을 만나 혼비백산해서 도망 오는 사람도 봤으니까.(웃음)”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참 힘들었던 시절 얘기다. 얘기를 듣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전교에서 오두재 정상까지는 2.2km로 대부분 오르막 구간이지만 숲그늘이 많고 덕유산 능선이 눈앞에 펼쳐진 전망 좋은 목이 많다. 안성과 적상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길이다. 천천히 걸었다. 계절마다 피고지는 꽃과 나무와 온갖 풀꽃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을 즐겨야 제 맛이다.

 

고개를 넘었다. 3.3km 지점에 이르면 멀리 고속도로와 상가 마을이 보인다. 내리막 구간으로 참나무, 소나무, 앙증맞은 오리나무 군락을 지난다. 현재는 비포장도로로 차량 교행이 어려울 만큼 좁은 길이지만 이 길이 과거 국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도로경계석과 제설용 모래를 쌓아두던 콘크리트 박스가 그것이다. 세월이 흘러 검푸른 이끼로 뒤덮여 있지만 국도의 유일한 흔적들이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위를 지난다. 빠르게 지나가는 고속도로의 자동차 행렬이 옛길을 걷는 나그네의 눈에는 낯설다. 옛길의 묘미는 느리게 걷는 것일 터.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예향천리 백두대간마실길 표지판을 따라 상가 마을로 들어섰다. 27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오두재 옛길은 여기까지다. 7km 거리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짧게 느껴진다. 출발지점인 행운가든으로 되돌아가는 원점회귀보다는 삼가저수지 뒤로 난 임도를 따라 효자촌으로 넘어갔다. 18km 거리를 다섯 시간 가량 걸었다. 하루 일정의 트레킹 코스로는 딱 좋은 거리다. 천천히 걸으며 과거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길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도 좋고, 양쪽 마을 사람들을 만나 산적 얘기도 듣고, 걸어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을 가진 이라도 만나면 그 시절 얘기를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시대의 옛길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의 여행문화로 자리잡았다. 제주 올래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조성을 시작으로 전국의 지자체는 앞다투어 걷기길을 조성했다. 여전히 도보여행은 인기다. 기회가 된다면 옛 19번 국도 오두재 옛길을 주제로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숲길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트레킹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눌산 객원기자

무주신문 제9호 2018-8-13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