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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환자에서 덕유산 산꾼이 된 임용재 씨

봄의 속도는 시속 900m라고 한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 걸음이다. 느리게 다가온 봄은 순식간에 초록물을 들인다. 하지만 산 깊은 골짜기가 많은 전라북도 무주의 봄은 느리다. 연분홍 복사꽃이 이제야 한창이다. 예로부터 오지의 대명사로 알려진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의 중심 무주에서도 산골로 소문난 덕유산 자락 상조마을에도 봄빛이 무르익었다. 상조마을은 산너머 요란한 분위기의 리조트 단지와는 다른, 여전히 고요한 산골마을이다.
 


산은 두 번째 생을 선물한 생명의 은인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상조마을 장자골 끝집에 사는 임용재(62) 씨는 산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8년 전 폐색전증이라는 흔치 않은 진단을 받았다.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 사지의 문턱까지 다녀 온 난치병 환자다. 2006년에는 가족이 동의한 헌체기증도 했다. 그때 미리 유서도 썼다. 그의 병은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오로지 약물치료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 병이다. 상처가 나도 피가 멈추지 않고,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하며 지냈다. 그러던 그가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산골마을에 정착한 산꾼이 되었다.

백발에 머리를 묶은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배낭을 둘러 매고 약초 곡괭이 하나만 들면 영락없는 산꾼으로 변신한다. 임용재 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산을 다닌지 5년 째다. 한겨울만 빼고는 거의 산에서 살다시피 한다. 약초를 캐고 버섯이나 산나물 채취가 목적이지만, 도시락 하나 들고 아무 목적없이 산을 오르기도 한다. 남들처럼 등산로를 찾는게 아니고 길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인지경 골짜기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볕좋은 능선에 앉아 도시락만 비우고 그냥 산을 내려오기도 한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거요. 하지만 좋은 걸 어쩌겠어요. 산에가면 그냥 좋아. 좋기만 하나, 산이 내 생명을 살렸으니 고마운 존재지. 허허”


어떤 날은 이대로 죽는다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임용재 씨에게 산은 생명의 은인나 다름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폐색전증은 오직 약물요법 밖에 달리 치료 방법이 없는 난치병이다. 약에 의존하다보니 음식이나 생활환경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도시에서는 숨쉬기조차도 힘들었다. 본가가 있는 대전에 가끔 나가면 하룻밤을 견디기 힘들 정도다. 장자골이 그리워 곧바로 내려온다. 간간히 운동삼아 찾았던 산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남들은 몸에 좋다는 음식이지만 나는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가 없어요. 청국장이나 해초류도 먹으면 안되죠. 그래서 산나물이나 버섯을 채취해 먹기 시작하다보니 몸도 좋아지고 병도 치료되더군요. 그래서 산에 미치게 된거에요.”

그는 또 걷기 매니아다. 진주 천리길, 대구 팔공산 달빛걷기, 새만금 66km 걷기대회 등 전국에서 열리는 걷기대회는 대부분 참가했다. 하룻밤에 100km 걷기도 했다. 걷기는 그가 처음 산을 찾게 된 계기나 다름없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남은 생을 산에서 마감 할 생각으로 찾은 강원도 원주 백운산 임도를 하루 3~4km 씩 걷기 시작했다. 그 길에서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일 걷다보니 걷는 거리는 조금씩 늘어났다. 하루에 10km, 20km, 30km, 40km, 그리고 걷기 시작한지 1년 여만에 100km 걷기도 완주했다. 그날 아내는 한없이 울었다. 그때 1년 간 걸은 거리가 무려 2,500km였다. 

 

산에서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마침 어린 상황버섯을 봐둔게 있어 보여준다기에 따라 나섰다. 아직 어려 따지 않고 그냥 놔뒀다고 한다.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앞선 그의 발걸음이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가볍다. 숨을 쉬기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산을 내집 앞마당처럼 헤집고 다닌다. 얼마나 걸음이 빠른지 필자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그냥 걷는게 아니다. 나무 새순이나 산나물, 야생화까지 새로운 것이 보이면 유심히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는 매일 블러그에 일기를 쓰고 있다. 그날 산에서 만난 나무와 풀, 약초 등을 다시 보면서 반복학습을 한다. 주변에서는 박사 소리를 듣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란다.

“아마 평생 살아도 다 모를걸요. 새로운 것을 만나는 재미까지 있으니 산은 내 놀이터에요. 마음이 즐겁고 몸에 좋은 음식의 재료가 되는 산나물과 버섯이 널렸으니 얼마나 좋소.”

이제는 심마니 생활 10년을 해도 구경하기 힘들다는 상황버섯이나 산삼도 보인다. 순환기 질환에 좋은 약초를 술로 담궈 반주로 한잔씩 하면 좋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자신도 먹고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마음을 비우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했다. 대신 어린 것은 채취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이고, 다음 세대를 위한 저축이라고 했다. 틈틈이 산에서 만난 지인들과 산에 씨 뿌리는 작업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더덕이나 산삼, 도라지, 하수오 씨를 산에 뿌린다. 그동안 산에서 얻은 혜택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산에 좀 다니면 다 산꾼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함부로 쓰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산을 망치는 사람은 바로 등산객이거든요. 산이 좋아 찾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려서 되겠어요?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배워야 해요.”


임용재 씨는 산에서 남다른 자연관도 배웠다. 자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분별한 채취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다음세대에게 물려 줄 유산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본격적인 나물철인 5월은 그에게 가장 바쁜 계절이다. 고사리, 취나물, 다래순 등을 채취해 삶아 말린 후 저장한다. 1년 내 먹을 양식이 된다. 나물을 채취 할 때도 그는 원칙이 있다. 가까운 곳과 낮은 산에서는 절대 채취하지 않는다. 이유는 마을 노인들을 위한 배려라고 했다. 자신은 좀 더 멀리 있는 높은 산으로 간다.

임용재 씨의 좌우명은 수처작주(隨處作主)이다. 내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의미로, 모든 일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건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욕심과 화, 평정심 중에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선이고, 무엇보다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들의 반응이 어떨까. 5년 째 홀로 산에서 살고 있는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아내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살아 있어 고맙다.’고. 아들 내외도 좋아해요. 건강을 되찾았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죠.” 

그의 휴대폰 컬러링 또한 ‘살아 있어 행복해~’이다. 지인들은 그를 ‘행운‘이라 부른다. 자신이 지은 별명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더니, 살아 있으니 행운아니냐고 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한 피부와 맑은 눈을 가진 이유를 알 것 같다. 늘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 기고 자료입니다. 

행운님 블러그 http://blog.naver.com/alla12

Posted by 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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