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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76년 된 한옥, 순창 금산여관 게스트하우스

by 눌산 201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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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된 낡은 한옥에 생명을 불어 넣은, 전라북도 순창 홍성순 씨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습니까?“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집도 나에게 맞는 옷처럼 각자의 취향과 현실의 상황에 맞는 그런 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군가는 요즘 유행하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선호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도시 근교의 전원주택을, 또 다른 누구는 옛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한옥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 그 중에서 한옥은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불편함이 먼저 떠오르는, 즉 거주공간이기 이전에 한번쯤 스쳐지나가는 풍경과도 같은 아련함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좋아 76년 된 낡은 한옥을 손수 고쳐 사는 한 여자가 있다. 그 주인공을 만나러 전라북도 순창으로 떠난다.




 

쓰레기 더미 가득했던 낡은 한옥을 찜하다.

 

인구 3만의 소읍(小邑)인 순창에서 홍성순(48) 씨의 한옥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나 다름 없었던 집을 근사한 한옥으로 재탄생시킨 일은 읍내에서 이미 뉴스거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순창도서관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좁은 골목길 끝에 있는 그녀의 한옥은 새로 수리를 했다기보다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대로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옛스러움이 가득했다. 낡고 녹슨 대문과 울타리의 담쟁이 넝쿨도 그 옛날의 모습 그대로다.

홍성순(48) 씨는 다짜고짜 필자에게 1년 전의 한옥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의 모습은 쓰레기가 가득 쌓인, 한마디로 폐가나 다름없어 보인다.

 

처음 이 집에는 지체 높으신 분이 살았대요. 그 후 40년 동안 여관으로 쓰였다고 하더라구요. 그 점이 맘에 들었어요.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꾸미면 딱이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세월의 때가 묻은 여관 간판도 떼지 않고 그대로 뒀어요.”

 

홍성순 씨는 처음부터 한옥을 염두해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도시를 떠나 한적한 산골 어디쯤인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렇게 7, 8년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지금의 집을 발견하고 5개월 동안 손수 집수리를 했다.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신축에 준하는 비용이 들었다.

 

처음 이 집을 알게 된 것이 지난 1월인데, 마당 한가운데 때아닌 자목련이 피어 있더라고요. 어릴 적 고향집 마당에도 자목련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가게를 했던 어머니가 물건 살 돈이 없어 그 나무를 팔아버렸대요. 사실 어머니는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집을 지으면 꼭 마당에 자목련을 심어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자목련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전재산을 다 투자한 셈이네요.. (웃음)”

 

그녀는 20여 년 동안 백화점에서 아동복과 아웃도어 의류 매장을 운영했다. 연봉으로 치자면 1억 이상 버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최우수서비스상을 비롯해서 백화점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다 받아봤다. 덕분에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사내 강사로도 활동했다.

 

그거 알아요?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어요.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꽃이 피는지도 알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이 딱 백화점이죠. 그래서 여행을 했어요,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려, 주로 야간버스를 탔는데, 목적지는 그때그때 달라요. 왜냐면 터미널에 가서 그 시간에 떠나는 버스를 탔으니까요. 여행은 저에게 일종의 해방구였죠. 한옥에 살고부터는 일주일을 집 밖으로 안 나가도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더라고요. 여기서도 이렇게 하늘이 보이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하늘이 보이는 사람 냄새 나는 집

 

인터뷰 내내 그녀는 좋다, 좋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늘이 보이는 사람냄새 나는 집, 그녀에게 있어 이 한옥은 1970년대 유행가 님과 함께에 등장하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아닐까.

 

낡은 집의 매력이 뭔지 아세요? 사람냄새가 나요. 닳고 닳은 마루에서 그동안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냄새 말이죠. 지금이야 한옥 예찬론자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솔직히 후회도 많이 했어요. 이 일을 내가 왜 시작했나 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고 살아요. 얼마 전에는 이 집에서 40년 동안 여관을 했던 할머니가 다녀가셨는데, 너무너무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쓰레기장이 돼버린 빈집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죽은 집 다시 살려줬다고요. 내가 저 방에서 첫날밤을 보냈는데 하면서 추억에 젖는 분들도 계셨어요. 처음에 이 집 수리할 때 미쳤다고 했던 사람들도 지금은 찾아와 응원해 주기도 해요. 어찌 보면 그런 분들이 가장 큰 힘이 되죠.”

 

하지만 죽은 집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은 일은 처음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일단 썪은 기둥부터 다시 세우고, 비가 새는 지붕을 고치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다. 가족과 지인들도 다들 미쳤다고 했다. 잘 나가는 직장 버리고 뭐하는 짓이냐고 말이다. 심지어 집수리하러 온 일꾼들까지도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5개월을 매달렸다. 전국의 리모델링 전문가를 찾아다니고, 잘 꾸며진 한옥을 보러 다녔다. 기본적인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집수리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챙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살아 난 한옥은 누가 보아도 탐나는 집이 되었다. 그것은 가급적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편리한 집이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편하지만, 덕분에 76년 전 그대로의 전통한옥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오히려 불편함 때문에 이 집에 매력을 느낀 이들이 찾아온다. 따지고 보면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 전통 한옥의 매력 아니겠는가.







 

사실 한옥은 우리나라의 지형과 기후에 사람들이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맞춤형 주거형태이면서도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인 건축물이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한옥은 늘 춥고 불편한 집이기에 살고 싶은 집이라기보다는 그저 보기 좋은 집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과연 한옥에서 살아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전주의 한옥마을이나 사극 드라마를 통해 보고 느낀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1970~80년대 도시화의 열풍 속에 아파트로 향했던 사람들이 한옥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에서는 한옥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비용 일부를 지원해 주기도 할 뿐만 아니라 한옥이 살고 싶고 갖고 싶은 집으로 부상하면서 전국적으로 한옥마을 개발 붐도 일고 있다. 늦었지만, 삭막한 콘크리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한줌 햇살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홍성순 씨의 한옥은 여행자의 집이 되었다. 손수 수를 놓아 이불과 커튼을 만들고, 낡은 의자는 고쳐 마당 한 켠에 놓았다. 낡은 여관 간판이 그대로 걸린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된 것이다. 처음부터 게스트하우스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현재의 한옥 여관이 탄생한 것이다. 이미 입소문을 타고 여행자들 사이에 이곳이 알려지면서 지난 순창 고추장축제 기간 중에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다녀갔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툇마루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별구경을 했단다.

 

백화점에 근무하면서도 틈만 나면 여행을 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많은 요즘에 여행이 뜸해졌어요. 대신 찾아오는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또 다른 방식의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죠. 그동안 15개국 정도를 여행했는데, 그때 만난 사람과 다양한 경험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데 참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여행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게스트들과 순창과 담양 등 가까운 지역으로 함께 여행을 한다. 안내자의 역할이 아닌 같은 여행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곳을 주로 찾아가는데,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이 그 대상이다.

 

3일 째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다는 대전에서 온 이주희 씨는 이미 이 집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이 이 집에는 있다는 것이다.

 

볕 좋은 툇마루에 앉아 노닥거리다 졸리면 자도 누구하나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주인장은 이런 나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봐주고, 그래서 좋아요. 마치 어릴 적 먹고 놀기만 했던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랄까요. 이 집 주인장은 때론 언니, 친구가 되기도 해요. 또 커피 생각이 나면 다방 마담도 되어 주고, 밥 때가 되면 막내이모가 되기도 하니까 그저 좋은거죠.”

 

끝으로 홍성순 씨는 그동안 자신의 여행에서 얻은 교훈이라 할 수 있는 말을 용기가 없어 떠나지 못하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다.

 

어디든 그럴 것이다는 선입견은 버리고, 계획 없이 떠나라. 때론 예방주사와 같은 고통도 따르지만, 그 여운이 오래 가더라

 

 

홍성순 씨의 금산여관 게스트하우스 블러그 http://blog.naver.com/tinyss99

 

<, 사진> 최상석 (여행작가 눌산 http://www.nulsan.net)





- 산사랑(한국산지보전협회) 겨울호 http://www.kfca.re.kr/sanFile/san_53/autorun.html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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