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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오지114

느티나무 큰 어른 마을 입구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씩 있다. 요즘이야 최첨단 시청각 시설까지 다 갖춘 시설들이 마을마다 있지만 옛날에는 이 나뭇그늘 아래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했다. 수령이 보통 150~500년 정도 되니 마을에서는 제일 큰 어른이다. 부지깽이도 한몫한다는 추수철이라 그런지 마을에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늙은 나무는 올가을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꽃을 피웠다. 낙엽비가 내린다. "나 아직 짱짱해"라고 소리치는 듯 나뭇가지를 힘차게 흔든다. 2020. 10. 28.
곡성 서봉마을 <길 작은 도서관> 곡성 서봉마을 김선자 관장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렸다. 어르신들은 동시를 읽으며 한글을 공부했고, 당신들의 인생을 글로 풀어냈다. 글은 시가 되었고, 김 관장은 ‘시집살이 詩집살이’ ‘눈이 사뿐사뿐 오네’ 등의 시집으로 보답했다. 이어서 마을 아이들의 시와 그림을 엮어 ‘혼자 먹는 메론빵’도 펴냈다. 아이들의 글과 그림, 어르신들의 시는 마을 담장에 옮겨 놓았다. 골목을 걷다 보면 마을 아이들의 동심과 어르신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동생들 키우느라 학교를 못 갔다/ 친구들이 글자도 모르는 것이 까분다고/ 기가 팍 죽었다/ 양양금 할머니 2020. 5. 14.
마을 논산에서 좀 별다른 마을을 만났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택지 분양을 했다. 계단식 논이라 개발비가 들지 않는 마을 앞 땅을 이주를 원하는 도시인에게 분양했다. 총 20가구 분량이 순식간에 동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발비를 아껴 개인업자들이 분양하는 택지에 비해 훨씬 싼 가격으로, 이익금을 남기지 않고 시세대로 분양가를 책정한 것. 개인 땅을 내 놓아야하는 마을 주민들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건은 딱 하나였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에게 우선 분양했다. 덕분에 100여 명 마을 주민 중 60세 미만이 70% 가까이 된다. 마을에는 즉시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이 없어 농사를 짓지 않고 놀리던 땅이 사라지고, 유명무실했던 청년회가 부활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침체된 농촌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2020. 2. 2.
모내기 체험 온 어린이들의 머드놀이 모내기 체험 온 어린이집 아이들. 결과는 놀자! 신나는 머드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도 신났다. 아이들의 머드 놀이를 예상한 마을 주민들은 안전을 위해 논 주변을 말끔 히 청소해놨다고. 아이들은 역시 흙을 만지고 놀아야 한다. 2019. 6. 24.
골목 한낮 더위 때문일까. 골목 안은 고요했다. 적막강산이다. 누군가 한 사람 마주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개 한 마리 짖지 않는다. 골목을 다 빠져나올 즈음 어르신 두 분을 만났다. “여기 뭐 찍을게 있다고....” 카메라를 들고 텅 빈 골목을 서성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강변에 금계국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골목의 주인은 다 어디로 떠났을까. 2018. 5. 31.
거창 황산마을 이틀째 거창의 골목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본 토석담 중에 본래 모습대로 가장 잘 쌓았다. 콘크리트에 황토색을 입힌 무늬만 전통마을이라는 곳들이 많은데 이곳은 제대로다. / lg v10 2018. 2. 23.
해발 800미터 운이덕 마을 시골장터에서 어르신들 대화를 엿들었다. “아직도 우리떡에 사시는가?” “나고 자란 고향이니 땅에 묻힐 때까지 살아야지” “그러고 보니 우리떡 가 본 지가 오래됐네. 많이 변했겠지?” “다들 늙어 허리가 꼬부라진 것 빼고는 그대로지. 허허” 우리떡이라. 분명 마을을 얘기하고 있는 듯한데. 궁금했다. “어르신! 마을 지명이 우리떡 인가요?” “본래는 운이덕이지. 운이산 꼭대기에 있거든. 운이덕을 자꾸 부르다 보니 우리떡이 됐어.” 하신다. 아하! 운이덕 -> 우리덕 -> 우리떡. 그거였구나...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은 평생 몸을 고달프게 했다. 그렇게 찾아 간 운이덕 마을. 20여년 전 얘기다. 그때 그 어르신은 그대로 계실까. 어르신 댁 마당에 있던 커다란 돌배나무,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불을 밝혔던.. 2017. 8. 24.
[경남 함양] 꽃 피는 골짜기, 거기마을 산 깊은 골짜기 끄트머리 외딴 집.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탁 트인 전망은 사치라 생각 했으니 굳이 전망 좋은 터는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명당의 가장 기본 조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 아니어도 되었다. 단지, 집 한 채 오롯이 서 있을 정도의 공간이면 족했고, 골짜기로 통하는 오가는 길 하나와 사철 마르지 않는 작은 실개천 정도만 흘러도 된다고 생각 했다. 나이 탓인가, 지금 생각은 다르다. 변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람 사는 곳, 사람이 살았던 곳, 옹기종기 모여 있어도 상관없으니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더 좋더라는 얘기다. 길도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산다. 산과 들, 계곡에도 오랜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던 옛 사람들의.. 2016. 9. 22.
산꼭대기 '사람의 마을' 있었지 저 산꼭대기에도 사람의 마을이 있다. 운곡천과 낙동강, 두 강을 건너고 산을 올라야 한다. 마을 지명도 절벽 위의 마을이란 뜻이다. 십 수 년 전, 한창 오지 여행하던 시절 수십 번은 더 올라 다녔던 곳이다. 그때는 전기도 전화도 없었고, 코뿔소 달린 코란도도 올라 다니기 힘들었던 곳이다. 오랜만에 지나는 길에 차를 세우고 멀리서 바라본다. 때 되면 밥차려주시던 어르신은 이미 돌아가셨고,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만나면 술상부터 내오시던 어르신도 돌아가셨다. 아! 그 어르신, 나 때문에 부부 싸움한 적이 있었다. 안주가 떨어졌다며 토종꿀 한통 다 비워버렸거든. 그 후 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더라는 얘기를 바람결에 들었다. 그리고 가보지 못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던 여행이 사람을 만나는 여행으로 바뀌면.. 2016.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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