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경남 산청 정원주·윤미영 가족
계절은 어느새 여름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자꾸 숲이 그리워진다. 숲그늘 아래 앉아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한번 담그면 원이 없겠다 싶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지리산이다.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 아래 장당천과 대원사 계곡이 만나는 곳에 근사한 숲이 있다. 이름하여 대포숲.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大浦里)에 자리한 마을숲이다. 두 물길이 만나는 자리에 넓은 들이 있는 지형으로 큰 마을이란 뜻인 한벌이라고도 부른다. 지명부터 범상치 않은 대포마을에서 양봉과 곶감 농사를 짓고 있는 정원주·윤미영 부부를 만나고 왔다.
18년 전 귀향해서 양봉과 곶감농사 짓는 부부
정원주(47)·윤미영(43) 부부의 집은 마을숲에서 멀지 않은 언덕배기에 있다. 막 모내기를 끝낸 논이 집 앞에 펼쳐있다. 그 너머로는 지리산 능선이 겹겹이 둘러쳐 있고, 나지막한 언덕 위로 마을이 들어서 있다. 적당히 농토가 있는 평야 지형이면서 골짜기가 깊은 산촌이다.
“지리산이니까 가능한 지형입니다. 동산으로 보여도 보통 700~800m는 되니까요. 덕분에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큽니다. 우리 마을 자랑인 지리산대포곶감이 맛있는 이유죠. 또한 물이 풍성해 일년 내내 가뭄과는 거리가 멀어 예로부터 인근 덕산과 함께 사람이 가장 살 만한 곳으로 여겨 왔답니다.”
정원주 씨가 자랑한 ‘지리산대포곶감’은 미국으로 수출될 만큼 유명하다. 인근 시천면과 함께 삼장면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곶감 산지로 대부분 농가의 주작물이기도 하다. 정원주·윤미영 부부에게도 곶감은 주요 소득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양봉을 한다.
“양봉이 주작물입니다. 현재 100군(통) 정도의 벌통을 하동 근처의 봉장(벌통을 놓아두는 곳)에서 관리합니다. 5월부터 6월까지가 가장 바쁘지만, 꿀을 채취하지 않는 겨울에도 항상 벌을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밀원은 5월 아카시아꽃, 6월 밤꽃과 야생화로 꽃이 피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봉장을 이동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아카시아꿀과 밤꿀, 여러 야생꽃이 뒤섞인 잡꿀을 생산한다.
정원주 씨가 양봉을 하게 된 것은 자연의 순리 같은 것이었다. 워낙 산과 들을 좋아하다보니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보다 자연과 좀더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양봉이 그에게 더 적합한 일이었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그의 아내 윤미영 씨도 이제는 늘 남편과 함께 꿀을 따러 다닌다.
“초·중·고를 이곳에서 나오고 진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경남 양산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퇴직을 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결혼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었죠.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고 두 번째는 시골에 사는 것, 세 번째는 종교를 가진 것입니다. 모두 고향에 돌아와 이루어진 일이라 이곳에 있는 자체가 제 인생의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부부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두 사람 모두 결혼하면 당연히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부는 운명처럼 지리산에서 다시 만났다. 평소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윤미영 씨는 지리산에 살면서 건강해졌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기침을 달고 살았답니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진주만 나가도 공기가 탁해 기침을 달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곳에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었답니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에 살아 행복하다.
부부의 일과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하동 봉장에 가서 벌꿀 채취를 하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고단할 것도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른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도 다 복이라고 했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끝을 스치는 밤꽃 향을 느끼며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요즘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지루하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죠.”
정원주 씨의 취미이자 특기는 시 암송이다. 어느 날 문득, 인생을 살면서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 100편을 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까지 80편을 외웠고, 나머지 20편은 남겨 두었다.
“우리 집에서는 고1, 중3, 초6 삼남매를 깨는 소리도 아빠의 시 낭송이고, 잠자리에 들기 전의 자장가도 시 낭송을 듣는 것이랍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시 외우는 소리를 듣고 살아 그런지 우리집 막내는 일기가 쓰기 싫으면 시를 쓰겠다고 할 정도로 우리집에서는 시가 친숙합니다. 백일장에서 가끔 상을 받아 오기도 하고요. 시와 항상 함께 하다보니 아이들도 어느새 시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부부는 여느 부모와는 달리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한 발 떨어져 아이들을 믿어줄 뿐이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 집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이 먼저 학원에 보내달라고 할 정도. 그 요청에 윤미영 씨는 “친구 따라 학원 갈라 그러나? 그 돈 모아 차라리 여행가는 게 안 낫나?”라고 답했단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 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저희들이 만약 도시에 살았다면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겠지만, 이곳에서는 굳이 남들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니까요.”
외진 산촌이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자주 모인다. 특히 ‘목화장터’란 이름의 지역 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두 가족과 마음이 잘 맞아 산청군 와인동호회 활동과 제주도 여행 등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정원주 씨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시를 낭송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더글러스 던의 ‘살아 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이다. 짧고 강렬한 이 시에 정원주 씨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부부의 삶은 소박하다. 단촐하고 담백하다. 이 모든 것을 자연에서 배웠다고 했다. 농사도 크게 욕심내지 않는다. 부부 둘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주 소득원인 양봉은 처음부터 자연벌꿀만 했다. 소량이지만 양보다 질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덕분에 전량 직거래로 팔려 나간다. 한 번 맛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는 것. 이들이 판매하는 벌꿀에는 모두 ‘지리산아름다운농부 정원주·윤미영’이란 상표가 붙는다.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꿀맛을 볼 수 있었다. 토마토에 꿀과 벌꿀 화분을 뿌려 먹고, 마당 끝에 발갛게 익은 보리수 열매를 따다 꿀에 찍어 먹었다. 물론 달달한 꿀차는 기본이다. 숲이 그리워 찾아간 지리산에서 이 무슨 호사란 말인가!
글·사진 눌산 http://www.nulsan.net
한국산지보전협회 산사랑 웹진 21호(7+8월호) -->> http://kfca.re.kr/sanFile/web21/02_0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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