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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돌배나무 꽃향기 따라 봄햇살 밟아볼까.<평창 봉산리 자개골>

by 눌산 2008.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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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천이 합류하는 오대천의 봄


4월이면 저 아래 남도에서는 두어 번의 꽃잔치가 끝나고 봄농사가 한창이다. 허나 심산 골짜기로 대변되는 강원도 땅은 이제 막 피어오르는 싱그러운 이파리에 현기증이 날 정도. 긴 겨울의 기지개를 막 펴고 문밖을 나선 촌부들의 움직임이 바쁘기만 해 보인다. 오대천을 떠나 보내고 신기리로 접어들었다. 흐드러지게 핀 돌배나무 꽃향기에 어지러워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아, 눈이 부실만큼 싱그러운 연둣빛 세상, 내게 있어 그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여행병을 도지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돌배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신기리 민가


무인지경 60리길, 가다 쉬다 느리게 걷기에 딱 좋다.

봉산천과 자개골 만큼 길고 깊은 협곡이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 평창군 진부면 신기리에서 봉산리를 지나 정선군 북면 구절리 자개골까지 약 60리에 달하는 이 긴 협곡의 좌우로는 박지산(1,391), 두루봉(1,225.6), 상원산(1,421.4), 발왕산(1,458.1) 등 1천m가 넘는 산에, 또 산이 두르고 있어 한낮에도 어둠이 내린 듯 어스름한 협곡을 지나자면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는다. 봉산천으로 흘러드는 골 물의 냉기 때문인데, 급경사길이 거의 없는 적당한 오르내림이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두 다리가 노곤하도록 실컷 걷기에 좋은 곳이 바로 봉산리-자개골 코스가 아닌가한다.

황토빛은 언제 봐도 좋다. 그래서 사람들은 뽀얀 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좋아하는지도 모를 일. 적당히 모래흙이 섞인 비포장 길을 30분쯤 걸으면 신기리 새터산장, 우측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아 보이는 박지산 등산로 입구다. 산장을 벗어나면 이제는 무인지경의 원시림으로 들어가게 된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연상케 하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곧게 뻗은 숲이 든든해 보인다. 신기천을 끼고 오르는 길은 온통 다래와 머루 넝쿨이고, 숲이 주는 으슥함과 포근한 느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산비탈 낙엽송 숲은 아마도 화전 밭이었을 듯 싶고, 그래도 경사도가 낮은 비탈 밭은 고랭지 채소 재배를 하는 모양인지 지난해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보인다.

임도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봉산재까지는 그런 대로 길의 폭이 넓다. 새터산장에서 약 3km를 오르면 임도와 옛길의 갈림길, 옛길 4km, 임도 6km라 쓰인 돌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당연히 임도를 타면 안되고 좌측 길을 택해야 한다. 오래된 옛길과 황량한 모래바람이 그리 반갑지 않은 임도는 분명 다르기에.... 갈림길에서 봉산재 고갯마루는 1km,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이다. 구절양장 띠를 두른 듯 올라 왔던 길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오대산의 넓은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이 머리부스럼 처럼 허연 비탈밭,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돌밭을 개간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화전을 해서 삶을 꾸려왔을 것이다. 대부분 떠난 자리만 있을 뿐, 그래서 또 하나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봉산재에서 바라 본 봉산리, 구절양장 산길이 어어진다.


재너머 오지마을 봉산리의 봄
 
봉산재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첫 번째 민가가 있는 마을이 평창군 진부면 봉산리 봉두곤이, 폐교된 봉산분교가 있고, 서너 가구가 산다. 봉산재에서 내려오면 최OO 할아버지 집 앞마당으로 길이 나있다. 집 뒤 우람한 바위가 봉바위, 토종벌을 치는 최OO 할아버지의 벌통이 놓여있다. 마당이 길이고, 계곡의 물을 그대로 식수로 쓴다.

잠시 목을 축이고 폐교 된지 오래인 봉산분교를 들러보자.'1963년 10월 설립돼 1998년 3월 폐교됐고 4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라고 쓰인 표지판만이 지난날의 흔적을 말해줄 뿐... 개인이 임대해 살고 있는데, 오지마을이 다 그렇듯, 이 곳 봉산리도 하나둘 떠나 아이들이 없는 학교가 폐교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봉산리에서 자개골까지는 평지나 다름없는 약간의 내리막길이 10km 이상 이어진다. 신기천에 비해 계곡의 폭이 넓은 봉산천 줄기를 따라 긴 협곡이 시작되는 것이다. 봉산리의 민가는 10여가구, 옆집이 따로 없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다. 발왕골로 나뉘는 서낭당, 서낭당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람한 전나무는 양팔을 벌려 안아보지만 채 반도 못 감는다. 수백년 세월 봉산리를 지킨 듬직함이 보인다. 검푸른 이끼를 가득 머금은 계곡은 일반적인 계곡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의 손때가 얼마나 자연에게는 해가 되는가를 보여주는데, 물빛이 맑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빛이 난다. 자개골에서 봉산리를 가려면 너무 멀어 지친다하여 '지칠지'란 지명의 마을도 지나고, 정선과 평창의 경계인 '산지골',
애련이라는 기생과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애련골', 자개골의 처음 만나는 민가가 있는 '표골'을 지나면 정선 땅 구절리 자개골이다. 자개골을 빠져나와 유천1교를 건너고,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구절리 기차역.
산골오지, 꼬마열차 종착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구절리는 꼬마열차도 없고, 광산개발이 한창일 때 잘(?) 나가던 방석집도 없다. 정선선이 아우라지역까지만 다니면서 폐선 되는 바람에 지금의 구절리는 70년대 풍경을 연상케하는 허름한 구멍가게와 여인숙, 폐광의 흔적들뿐이다. 60리 긴 협곡여행은 한때 뗏목의 출발지이기도 했던 송천(松川)에서 마무리짓는다. 폐광의 잔재들 속에서도 화사하게 피어나는 송천의 수달래는 봉산리 여행길에 덤으로 만날 수 있는 보너스다.


오지마을 트레킹 2004-04-25



[여행정보]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을 빠져나와 정선가는 33번 지방도로를 탄다. 신기리까지는 10분 거리. 봉산재를 넘는 들목으로 정선 땅 구절리까지는 60리 길이다. 구절리의 '알프스 산장(033-562-9885)'에서 묶을 수 있고,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옛 여량역)역까지 레일바이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눌산

사단법인 한국외국기업협회 FORCA 기고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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