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합강마을의 유일한 주민, 김수동 유매화 부부
이번 새해에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해가 바뀔 때 마다 거창한 계획을 세웠지만,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거창한 계획들이란 건강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담배를 끊고, 적당한 운동과 건강식을 챙겨 먹자 등등. 건강한 삶이란 굳이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봉화 오지마을에서 만난 노부부를 통해 깨달았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느린 삶’이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봉화 합강마을의 김수동(70) 유매화(62) 부부에게 이 시대의 화두인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 들어보자.
산 너머 산, 그 안에 사람이 산다.
전라도에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이 있다면 강원도에 ‘영평정(영월 평창 정선)’이 있고, 경상도에는 ‘BYC(봉화 영양 청송)’가 있다. 모두 오지(奧地)로 소문난 곳들이다. 산세가 깊고 험한 도로사정 때문에 얻은 이름값이라 할 수 있다. 사통팔달 고속도로가 뚫리고, 웬만한 국도는 4차선으로 확장되어 오지의 면모를 벗어던진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봉화는 여전히 먼 곳이다. 최소한 1박 이상의 일정은 잡아야 다녀 올 수 있다. 그만큼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전기가 없는 마을도 있고, 나룻배를 타거나 산을 넘어 걸어가야 하는 마을들도 있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봉화 땅 구석구석을 헤집고 흐른다. ‘S’자로 흐르는 이런 강을 ‘사행천(蛇行川)’이라 부른다. 영락없는 뱀이 기어가는 모습이다. 삼동치 범바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절경들이다, 한반도 지형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산과 산, 강과 강 사이에는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그 안에 사람이 산다. 골골마다 사람이 살지 않은 땅이 없다. 합강마을도 마찬가지다. 낙동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지만, 산마을에 가깝다.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길을 걸어서 산 하나를 넘어 들어가야 한다.
삼동치 잿마루를 내려서면 삼동2리에 이른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여기서부터 걸어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중간에 아래황새마을이 있다. 수백 년 된 고목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네댓 가구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근동에서 큰 마을이다. 다시 30여 분을 걸어 산을 하나 넘어서자 멀리 외딴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합강마을의 유일한 주민인 김수동 유매화 부부의 집이다.
“설탕 하나도 안 친 토종꿀인데, 먼 길 오셨으니 맛이나 보세요.”하면서 벌통 손질을 하고 있던 김수동 씨가 토종꿀 한 덩이를 내민다. 달다. 아니 꿀맛이다. 아린 맛이 없고, 단 맛의 여운이 오래간다. 양봉과의 차이라면 진하면서도 깊은 맛이 다르다.
“술 한 잔하고 아침에 이 꿀차 한잔하면 속이 편해요. 이런데 살아도 겨울에 감기 한번 안 걸려 봤어요.”
이런 오지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피부가 좋다는 것이다. 올해 일흔의 김수동 씨 역시 40대인 필자보다 더 피부가 곱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것만 먹으니 최고의 건강식이 아니겠는가.
낙동강과 재산천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위치해 ‘합강’이란 지명을 얻었다. 예전에는 이곳에 큰 나루가 있었다. 김수동 씨는 마지막 뱃사공이었다. 강을 건너다니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배를 부리며 산다. 봄이면 산나물을 뜯고, 가을이면 이산 저산 송이를 찾아다닌다. 텅 빈 나루지만 부부에게는 자가용인 셈이다. 지금은 김수동 유매화 부부만이 사는 외딴집이지만, 한때는 강 건너 마을까지 30여 가구가 살던 어엿한 마을이었다. 합강마을 사람들은 강을 건너 재산 장을 보러 다녔고, 재산 사람들은 이 나루를 통해 봉화로 나갔다. 다 옛날 얘기지만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던 시절이 있었다.
자연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
김수동 씨는 6.25 전쟁 당시 외갓집이 있던 이 마을로 피난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모두가 도회지로 떠났지만, 단 한 번도 합강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앞에는 강이 막고 있지, 뒤로는 산이 가로막아 도망 갈 데도 없었어요. ‘나 죽었소. 하고 살았지요.”
한 동네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 유매화 씨의 얘기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 할 수 있지만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식구가 많아 보리밥은커녕 나물죽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바로 코앞에 흐르는 강에서 잡은 물고기는 요긴한 먹을거리였다.
몇 해 전 서울 딸네 집에서 잠시 살다 왔다는 유매화 씨는 다신 서울생활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서울 사람들이 볼 때는 합강마을이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서울의 아파트는 동물원의 우리나 다름없다고 했다. 마음대로 나다니기도 힘들고, 특히 야박한 인심은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고.
“밥 세 끼만 먹으면 행복했지요. 배부른 게 최고였으니까. 하루 두 끼만 먹어도 남부러울 게 없던 시절이었어요. 요즘 세상에는 필요한 것들이 많지만 옛날에는 뭐 있었나요.”
힘겨웠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유매화 씨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끼니를 모두 산에서 때웠다. 산나물과 옥수수로 연명하며 살았다. 지금이야 봉화 송이가 금값이라지만 예전에는 그저 흔한 버섯 중에 하나였다. 송이로 배를 채우기도 했단다. 가슴 아픈 기억들이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6남매를 키워 냈다. 감히 상상 할 수 없지만, 담담히 풀어내는 부부의 지난 삶이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농작물 값이 들쑥날쑥 하잖아요. 많이 짓는다고 남는 것도 없어요.”
빈 땅이 많다고 하자 김수동 씨는 손사래를 친다. 도시에 나가 사는 6남매와 부부가 먹을 만큼만 한다고 했다. 욕심이 없다기 보다는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자연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머리가 나쁜지 뭘 몰라요. 욕심이 많은 거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더 달라고 하니…….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세 개가 되는 걸 모른단 말이요. 그게 바로 땅의 진리거든. 땅은 거짓말을 안 하잖아요.”
평생 합강마을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합강마을의 겨울은 길다. 특별히 일감이 없는 겨울은 휴식의 시간이다. 강마저 꽁꽁 얼어붙어 부부의 자가용인 나룻배도 긴 겨울잠을 잔다. 손수 농사지은 메밀로 묵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두부를 만들어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들과 나누어 먹는다. 이 산골에 무슨 손님이 찾아올까 하지만 낙동강 도보여행 하는 이들이 간간히 들린다. 그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여 보낸다. 첩첩산중에 들어 앉아있는 오지이지만 그들을 통해 세상소식을 접한다.
부부의 오두막은 지금도 군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 흔한 땔감 덕분이기도 하지만 도시처럼 기름보일러는 엄두도 못 낸다. 우선 길이 험해 기름 배달이 안 된다. 일 년의 절반 이상이 겨울날씨다 보니 난방비를 감당 할 수도 없다. 먼데서 온 손님이라고 아랫목을 내 준 덕분에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매운 연기 마시며 서너 시간을 공들여 만든 메밀묵까지 대접받고 나니 일어나고 싶지 않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지지는 맛을 아는 사람을 안다. 온 몸이 녹아 흐르며 잠이 스르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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