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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꽃

호랭이 장가 가는 날 '얼레지'와 놀다.

by 눌산 2008.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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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빗줄기가 오락가락 한다. 순간. 한줌 햇살이 내리고 꼭 다문 입술이 열린다. 얼레지는 하루에도 몇번씩 꽃잎을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한다.


비오는 날 얼레지를 만나러 간다. 활짝 웃으며 반겨주리란 기대를 갖고.





 


봄비에 촉촉히 젖은 얼레지에 생기가 돈다. 가는 대궁이지만 강하게 느껴지는 건. 바위를 흔들며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건. 봄의 생명력이 아닐까.







오전 11시를 넘긴 시간이지만 꼭 다문 입술은 열릴 줄을 모른다. 한줌 햇살을 기다리겠지.







오후가 되면 얼레지는 입를 꼭 다문다. 한낮의 얼레지는 저 녀석 처럼 활짝 웃는 표정이다.







따가운 햇살이 비추면 멕시코 모자 처럼 꽃잎은 점점 더 뒤로 '발라당' 재쳐진다. 이럴때 얼레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얼레지는 군락을 이루며 피어 난다. 주로 계곡 주변 경사진 산사면에 '나란히' 줄을 선다. 볕 좋은 곳의 녀석은 조금 먼저 피어나고 그렇지 않은 곳이라면 느긋하게 꽃을 피운다. '사회성'이 좀 부족한 녀석들은. 저 녀석 처럼 '나홀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얼레지의 다양한 표정은 햇볕에 따라 달라지지만 여섯 날개를 적당히 펼친 모습이 가장 멋지다. 꼿꼿한 자태가 수많은 남자들의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단 한사람만의 여인 처럼.







'나홀로' 보다는 무리 속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얼레지도 예외는 아니다.







얼레지의 색감은 빛에 민감하다. 오전과 한낮, 늦은 오후 빛에 얼레지는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다. 연분홍에서 연보라, 진한 보라색까지.....







가는 바람에도 툭 떨어질 것만 같은 가녀린 모습이지만 때론. 여인의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꽃잎에 매달린 빗방울이 무겁게 느껴진다.







꽃을 재배하는 하우스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것을 방송으로 본 적이 있다. 태아에게 주기적으로 음악을 들려 주는 것은 태교의 기본이다. 과연 그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들을 수 있다.'이다.  얼레지와 속삭여 보라. 꽃잎은 춤을 춘다. 특히 꽃잎이 열리기 직전이라면 사랑스런 속삭임에 활짝 꽃을 피울 것이다.







꽃잎이 오무라들고 있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속삭이면 꽃잎은 다시 열린다. 얼레지와도 통할 수 있다.







얼레지는 바람에도 민감하다. 여섯 꽃잎은 바람에 흔들리며 표정이 변한다. 가는 대궁은 함께 춤을 춘다.







저 녀석들은 형제가 아닐까. 똑 같은 표정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종일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 얼레지도 힘이 들겠다. 호랭이 장가 가는 날 축하라도 하듯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다.







얼레지는 허리를 낮추고 올려다 봐야 제 맛이다. 여인의 치맛 속을 들추 듯 조심스럽게 말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여인의 표정은 달라진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주줍은 미소를 만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얼레지의 표정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여인의 미소가 느껴진다.







바위 틈에 비집고 올라 온 얼레지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른 봄 피어나는 꽃은 뿌리가 강하다.







멀리서 훔쳐보는 기분이 드는 건. 뽀얀 얼레지의 속살에서 느끼는 황홀함 때문이 아닐까.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조화로운 삶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보기 드물게 하얀 얼레지도 만날 수 있다. 순백의 고귀한 자태가 느껴진다.


- 전라남도 보성 대원사 주변 200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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