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회룡포라 불리는 예천 의성포 강변에서.
제 차 조수석 의자 밑에는 흰 고무신 한 켤레가 실려 있습니다. 장거리 운전할 때나 이렇게 물가를 찾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이거든요. 바지를 살짝 걷어올리고 고무신을 신고 나서면 '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는 어느 자동차 광고 카피처럼 전천후 신발이 됩니다. 더운 날 땀이 차 미끄덩 거리는 느낌도 싫진 않고, 어릴 적 물고기를 잡아 고무신에 담아 놀던 추억도 그립습니다.
중학교때 흰고무신을 즐겨신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모시 한복에 흰고무신을 신고 다니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때론 넥타이를 거꾸로 매기도 하셨습니다. 넓은 부분이 뒤로 들어가고 가는 부분이 앞으로 나오게요. 괴짜 선생님이셨죠.
20대가 된 후 줄기차게 설악산을 올랐습니다. 산에 반은 미쳐 살았지요. 산행 후 고무신은 아주 요긴합니다. 땀에 찌들고 퉁퉁 부은 발의 피로를 덜기에는 고무신이 그만이거든요. 늘 배낭에 고무신을 넣고 다녔는데 그 선생님의 영향이었는지 흰고무신에 나이키 상표를 그려 넣고는 당당하게 서울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따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고무신을 신고 내리면 일제히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집니다. "앗, 빽구두닷! "ㅎㅎ 아마 옛날 생각이 나서들 그러겠죠.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섬진강 구담마을 징검다리
몇해 전 여름날 산 친구들하고 섬진강 도보여행을 했습니다. 마침 순창 장날이라 구경도 하고, 일행은 한켤레에 3천원짜리 고무신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고무신을 신고 진안에서 광양 망덕포구까지 걸어갔지요. 덕분에 발바닥은 온통 물집이 생겨 매일 밤 쓰라림으로 고생깨나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 묻은 바위에도 착 달라 붙는 트레킹 샌들이 있지만 고무신을 고집했던 것은 걷다 만나는 사람들과 좀 더 친숙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였습니다. 만나는 어르신들 마다 웃고 힘이 되는 한마디를 해주시더군요.
좀 전에 그때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출가를 결심했다고요. 마흔이 가까운 처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미용사로 일을 하던 평범한 노처녀였지요. 아, 평범은 아니군요. 일하는 날보다 싸돌아 다니는 날이 더 많으니...^^ 아무튼. 출가때문에 몇번 대화해 본적은 있지만, 사실 실행에 옮기리라고는 확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말겠지...하는 마음이었지요.
"저... 머리 깎을려고요..."
"왜?"
"긴머리가 안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그래, 날도 더운데 밀어버리면 시원하겠다."
잊을 만하면 서로 안부나 묻는 정도였지만, 10년지기 친구인데 막상 소식을 접하고 나니 섭섭합니다.
출가 소식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고등학교 1학년때 단짝 친구에 이어 두번쨉니다. 그 친구와 인생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토론을 하느라 밤을 지샌 날도 많았습니다. 그후. 저 역시 자퇴를 했고, 각기 다른 길을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맹랑한 녀석들이었지요. 마곡사에서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 후 마주친 적은 없습니다.중노릇 제대로 하고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부디 편안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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