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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귀농·귀촌 이야기] 굴암리 언덕에서 ‘벼룻길야생화‘ 홈카페를 운영하는 / 이선영 씨











 

전라북도 무주 귀농·귀촌 이야기


굴암리 언덕에서 벼룻길야생화홈카페를 운영하는

/ 이선영 씨

 

어느 해 봄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굴암리 강변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마침, 어린 손녀딸의손을 잡고 장에 가는 어르신을 만나 굴암리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강변으로 난 희미한 옛길을 따라 대유리까지 걸어갔다. 지금은 금강마실길이란 이름의 걷기 길이 생겼지만, 사실 옛길은 그때 걸었던 희미한 길의 흔적이 진짜 옛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굴암리에 가면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이왕 을 만들거면 진짜 옛길을 찾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말이다.




 

강이 보이는 언덕 위에 하얀집 짓고

 

필자처럼 굴암리의 추억을 안고 이주한 부부가 있다. 아직은 반쪽짜리 살림을 하고 있는 이선영(48) 씨가 그 주인공이다. 어릴 적부터 물가에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살았다는 이선영 씨는 굴암리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짓고 벼룻길 야생화란 이름의 홈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시골에 사는 일가친척이 한 명도 없이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늘 물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틈만 나면 금강 줄기를 따라 금산과 무주를 오가곤 했죠. 그러다 우연히 굴암리 다리 위에서 바라보이는 이 집터가 눈에 띄었죠. 강 건너로 보이는 언덕 위에 이 땅이 후광처럼 빛나더라고요. 인연이었던 거죠. 그게 10년 전 일이에요

 

시골에 한번 살아보겠다는 욕심에서 30대에 땅부터 구입했지만, 당장 집을 짓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했던 이선영 씨는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 오덕균(56) 씨와 어린 자녀들이 때문에 10년이 지난 2년 전 봄이 되어서야 지금의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저 혼자 내려와 있지만, 올해 둘째가 대학에 들어가면 대전 집은 정리하고 가족 모두 무주생활을 할 계획이에요. 사람들은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니냐고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지금도 늦은 감이 있더라고요.”

 

시골생활이 처음이라는 이선영 씨는 이미 무주생활에 푹 빠져 있었다. 집 주변의 네모 반듯한 800평의 땅에는 사과, 단감, 오미자, 복분자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10년을 벼른 무주행이기에 지금의 생활은 즐겁기만 하다. 또한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하며 했던 야생화를 이용한 분경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야생화 동호회를 만들어 하루가 짧을 만큼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하면서 야생화 교육을 다니기도 했어요, 전시회용 대형 분경작품을 만들고, 판매를 하기도 했죠. 상업적 능력이 부족해서 잘 안 되긴 했지만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판매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작품 활동을 해요. 동호회 회원이 현재는 8명 밖에 안 되지만 낯선 땅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돌과 나무에 야생화를 키우는 분경에는 조화가 가장 중요하듯이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어울림이 중요하잖아요.”




 

10년을 벼룬 시골살이, 답은 저절로 생기더라.

 

도시보다 시골생활에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그 말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새 집을 짓고 들어오자마자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대전에 살면서 도시농업을 통해 꾸준히 농사일은 어느정도 준비해왔기에 지금 짓고 있는 농사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된장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삶은 콩을 들고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어보고 배웠다. 그렇게 먼저 다가가 여쭙고 도움을 청했던 것이 어여삐 여기셨는지 지금은 오히려 찾아와서 알려주신다고 한다. 지난 겨울은 김장 배추를 뽑아다 주시고, 남은 양념까지 갖다 주셨다. 그것은 아마도 마을 어르신들을 대하는 이선영 씨의 고운 마음을 마을 분들이 읽으셨다는 얘기리라.

 

상굴암에는 모두 25가구 정도가 사는데, 제가 막내에 속해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더 잘 알려주시는 것 같아요. 무조건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을에 일이 있을 때면 앞장서서 일하다보니 예쁘게 봐주신 거겠죠.(웃음)“

 

이선영 씨의 집은 본채와 카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홈카페란 이름의 간판을 걸고 이따금 찾아오는 이들에게 손수 만든 귤차와 커피를 낸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만들어 먹던 하프피자도 메뉴에 추가했다. 그리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야생화 가꾸는 일이 그의 주요 일과이다.

 

야생화와 함께 하는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어요. 한겨울이면 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작은 새순들을 보면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죠. 도시에 남은 친구들은 낯선 시골 땅에서 살고 있는 저를 걱정하지만, 저는 오히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만큼 하루가 금방 가더라고요. 이사 오고 나서 6개월 만에 대전의 지하주차장에 간 적이 있는데 얼마나 낯설던지…….”

 

이선영 씨의 야생화들은 온실에서만 키우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강한 생명력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은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 오덕균 씨는 산사진 작가다. 수없이 올라다녔던 덕유산이 이제는 집앞에 있으니, 어찌 보면 이선영 씨 보다 지금의 생활에 더 적극적이다. 도시에 살 때는 생각도 못했던 드럼도 배웠다. 지금은 비록 일주일에 한번 내려와 일만 하고 가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얘기다. 이따금 내려오는 아이들 또한 엄마의 무주생활을 좋아한다. 이선영씨에게 대전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여기서 못 키운 게 한스럽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환경을 두고 삭막한 도시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인터뷰하는 동안 인근에 사는 주부들이 몰려왔다. 일주일에 한번 이선영 씨 집에서 모여 바느질을 하는 모임의 회원들이다. 모임명은 부남 분홍퀼트동호회, 이들은 한땀 한땀 손바느질을 통해 가방이나 작은 소품을 만든다. 그 중 연세가 가장 많아 보이는 동호회 회장님은 이선영 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도 몇 년 사이 귀농 귀촌한 분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람이 너무 착하잖아요. 매사에 적극적이고, 그래서 서로 친해졌어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시골이라고 문닫고 가만이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다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까지도 있으니 말이다. 시골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즐겨야 된다는 얘기다. 시골도 요즘은 얼마든지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에는 이선영 씨 집에서 동호회 전시회도 열었다. 그동안 갈고 닦은 회원들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기회로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찾아와 격려하며 축하하는 자리였다.


<글, 사진> 눌산 (여행작가 http://www.nulsan.net)

 

 

홈카페 벼룻길 야생화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 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