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자연 속에서 살겠다.
/ 자연 건축 연구가 박희진 씨의 삶
자연(自然)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현상’이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을 초월한 섭리를 상징한다. 인간 이전에 스스로(自) 그렇게 존재한(然)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처럼 보인다. 하물며 초월적 자연을 예측하고 이용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좀 더 자연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면 자연은 기꺼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해주지 않을까…….
볏짚으로 지은 전라북도 무주 내도리 빨간 지붕 집
여기, 인간의 영역 밖을 향해 도시를 박차고 나온 한 남자가 있다. 초자연적인 삶을 사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 남자는 50년을 몸 담아온 도시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훌훌 털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라북도 무주 내도리의 빨간 지붕 집에 사는 박희진(53) 씨가 그 주인공이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그의 집을 찾았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집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데, 긴 생머리를 묶은 꽁지머리에 순백색 광목으로 만든 개량한복을 입은 범상치 않은 외모의 남자가 나타난다. 단박에 그가 이 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읍내 볼 일이 있어 좀 늦었습니다. 집 구경은 나중에 하고 일단 들어가 차나 한 잔 합시다.”
스스로 ‘빨간 지붕 집(적상재)’이라고 이름 붙인 박희진 씨의 집은 양철 지붕에 흙과 나무로 외벽을 쌓아 놓은 집이었다. 지붕을 넓게 덮어 빨간 지붕이 유독 돋보이는 집 구조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타다 남은 장작과 구수한 흙냄새가 은은한 향초의 향처럼 어우러져 퍼진다.
“그냥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집입니다. 볏짚과 흙, 나무로만 지은 집이죠. 남들은 뭐, 독특하다고 하는데..... 제가 나름대로 구상하고 손수 지은 집이라 그런지 남달라 보이긴 하죠.”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 앉자 무차를 내 온다. 무를 덖고 말린 것으로 구수한 숭늉 맛이 난다.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도 다 이렇게 차로 마실 수 있어요.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제일 좋다잖아요.”
그렇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물질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물 건너오고, 비싼 것들은 다 좋다’라는 생각이 우리들 마음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리라.
자연 건축 연구가 박희진, 건축공학 대학교 졸, 대기업 건설회사 25년 재직, 요가 트레이너 자격증 취득, 자연치유 관리사 자격증 취득.
그가 건넨 명함에 적힌 이력들이다. 하지만 궁금했다. 범상치 않은 외모와 빨간 지붕 집, 무차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을 보면, 뭔가 독특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다.
그의 고향은 무주 내도리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과 수원에서 50년을 살았다. 그리고 잘 다니던 건설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5년 전 고향에 내려와 지금의 빨간 지붕 집을 지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별 탈 없이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는 것. 그가 말한 이유는 이렇다.
“나이 50이 돼가니까 초조해지더라고요. 뭔가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지 않으니 늘 허한 마음이랄까요. 그래서 결심했죠. 내 생각대로 살아보자.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고요.”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만든 자연주의 삶
그가 말한 ‘나 하고 싶은 대로’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자.”였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사는 게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진지한 그의 표정을 통해 얼마나 간절히 원하던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뭐 거창한 것 같지만, 간단해요. 의식주를 자연에서 해결하는 것이죠. 그래서 가장 먼저 집부터 지었어요. 자연적인 재료만으로. 그리고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도 광목을 사다 직접 만들어 입고, 음식의 기본인 장도 직접 담가 먹죠. 한마디로 친자연,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할까요.”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을 오로지 자연 속에서 해결하자는 것이 그의 목표라는 것이다. 헌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답은 간단했다. 그의 말처럼 손수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건설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지만, 재봉질을 배워 옷을 지어 입었고 난생처음 흙을 만지며 볏짚을 쌓아 집을 지었다. 그리고 1500평의 땅에 콩 농사를 짓었다. 수확한 콩으로는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갔다. 그에게는 자신이 농사지은 콩으로 만든 장이 식재료가 되는 것이다.
“이 집을 둘러 보면 겉에는 흙과 나무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볏짚이 들어가 있어요. 즉 볏짚으로 만든 집이죠. 두께가 약 45cm 정도라 단열에 강하고 여름이면 당연히 시원하죠. 솔직히 저는 콘크리트 집만 지어본 사람이라 처음에는 고민도 많이 했고, 우여곡절도 많았죠.”
“이 벽난로는 제가 ‘아랫목 아궁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난로의 역할과 함께 방 안까지 덥혀 주는 두 가지의 효과를 냅니다. 난로 안쪽의 배관을 달궈 방 안으로 열기를 전달하니까요. 거실과 방을 동시에 난방이 가능한 설계죠.”
그러고 보니 취재를 간 날도 추위가 만만치 않았는데, 집 안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하나하나 그의 설명을 듣자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열이라는 것이 벽채 두께 하나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희진 씨는 잊혀지고 사라져버린 ‘우리 것’에 대한 예찬론자였다. 특히 한옥의 내부 구조가 대단히 과학적이라는 것. 여름과 겨울 공간을 나눈 것이라든가, 장작 몇 개로 난방을 하는 구들의 구조 등 단순하지만 현대 과학으로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건축물이 한옥이라는 것이다.
“거실 밖의 공간은 햇볕을 모아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여름이라면 당연히 바람이 통하는, 한옥으로 치자면 일종의 대청마루인 셈이죠. 제가 짓는 집에는 반드시 아궁이와 대청마루가 들어갑니다. 집 주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들 저한테 고맙다고 해요. 살아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박희진 씨의 현재 직업은 볏짚을 이용해 집을 짓는 ‘자연 건축 연구가’이다. 볏짚을 이용해 집을 짓는 경우는 종종 보지만, 박희진 씨의 볏짚 집은 다르다. 블록을 미리 제작해 볏짚을 채워 넣은 다음, 조립하는 형태다. 구조적으로 더 튼튼하고 공기도 단축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 전체적인 건축비용도 일반적인 건축에 비해 85% 수준으로 좀 더 저렴하다.
“옛것은 다 안 좋고 못 쓰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좋은 것은 취해야 되는데 말이죠. 그런 것을 찾아가는 것이 제 일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그래야 제가 행복할 것 같아요. 행복? 별건가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그게 가장 행복한 일이죠.”
범상치 않은 외모, 그리고 콘크리트 집은 의뢰가 들어와도 절대 짓지 않는다는 고집! 이처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과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바로 그가 행복한 이유였다.
<글, 사진> 눌산(여행작가 http://www.nul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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