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일곱 번째 / 전라북도 무주·충청남도 해미
4월의 꽃길을 따라…
▲ 금강변 마실길 20㎞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잠두마을 37번 국도 옛길에는 벚꽃과 복사꽃이 어우러진 환상의 꽃길이 열린다.
‘봄볕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을 내보낸다’는 말이 있다. 가을볕에 비해 봄볕 자외선 지수가 더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긴 겨울 끝에 만난 봄볕은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옹기종기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따사로운 봄볕을 쬐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하다. 볕 좋은 한낮 낮은 토담 아래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누렁이는 또 얼마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가. 바야흐로 꽃 피는 봄이다. 계절의 흐름이 빠르니 느리니들 하지만 이 꽃 저 꽃 피고 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연의 이치는 한 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봄날’이어라, 무주
딱 이즈음이었다. 마을 어귀, 수령 500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의 이파리가 연둣빛으로 막 물들고 있었다. 해질 무렵이라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을과 등을 맞대고 있는 적상산의 서쪽 산사면 절벽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루었다. 한동안 넋을 잃고 산촌 풍경에 취했다. 이처럼 평화로운 풍경을 다시 만난 기억이 없다. 10년 전 어느 봄날 필자는 결국 찰나의 풍경에 반해 적상산 중턱 해발 500m에 자리한 서창마을에 터를 잡고 말았다.
서창마을의 봄은 이제 시작이다. 땅에는 이미 개별꽃·민들레·봄맞이꽃·광대나물 같은 키 작은 풀꽃이 얼굴을 내밀었고, 마을 숲에는 아기 손톱만 한 이파리가 막 돋아나고 있다. 낮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물든 연둣빛은 산정(山頂)을 향하고 있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산벚꽃과 개복숭아나무꽃이, 그 사이사이에는 하얀 줄기를 길게 늘어뜨린 조팝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을 입구 서창갤러리 카페에서 만난 이정숙씨는 이른 봄 서창마을의 봄 풍경을 자랑했다. “붉을 ‘적(赤)’, 치마 ‘상(裳)’ 자를 쓰는 적상산은 가을 단풍이 산사면 절벽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마치 여인의 치마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지명인데요, 수채화 같은 이른 봄날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요.”
서창갤러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 고(故) 정기용 건축가의 작품이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이 깊은 산촌마을에 들어선 연유는 이렇다. 정기용 건축가는 1996년부터 10여년 동안 무주에서 사람과 자연, 농촌마을 공동체를 고민하며 30여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주군청 리노베이션과 무주시장 현대화 프로젝트, 청소년수련관, 곤충박물관, 면사무소, 버스정류장 등 무주의 공공건축물 대부분이 포함되었다. 목욕을 하기 위해 읍내까지 나다니는 마을 어르신들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들고, 높은 사람들은 본부석 그늘에 앉아 있고, 주민들은 땡볕에서 벌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공설운동장에 등나무를 심어 그늘을 드리우게 했다. 이처럼 건축가의 작품 세계는 사람과 자연의 교감이 주제가 되었다. 자신의 저서인 ‘감응의 건축’(2008)에서 ‘등나무운동장은 무주에서 10여년 동안 한 일 중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며 필자를 많이 가르치게 한 프로젝트다’라며 ‘서울에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있고 무주에는 등나무운동장이 있다’라고 소개하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4월 말에서 5월 중순 사이에 무주 등나무운동장에는 꽃불이 켜진다. 바로 등꽃이 그 주인공. 운동장 스탠드를 빙 둘러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보랏빛 등꽃이 만발한 풍경을 상상해 보라. 정기용 건축가는 스탠드 맨 뒷줄 끝에서 끝까지 걸어 보기를 추천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등나무운동장 옆에는 호남 최고의 누각이라 불리는 한풍루(寒風樓)가 있다. 넓은 잔디밭과 함께 벚꽃이 꽃잎을 막 터트릴 기세로 도열해 있다. 남쪽에서는 이미 꽃이 지고 있다지만 무주의 봄은 서울보다도 더 늦다. 한풍루 벚꽃은 이번 주말 정도가 적기로 우람한 고목에서 무성한 꽃잎이 풍성하게 피어난다. 무주 읍내를 벗어나 금강변으로 달리면 한갓진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진다. 서면마을 가는 길로 약 4㎞에 달하는 벚꽃길이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대천을 따라가는 이 길은 서면마을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강마을인 서면마을에서는 매년 무주 반딧불축제 때 섶다리 재연행사를 한다. 금강과 남대천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다리가 없던 시절 나룻배나 섶다리는 외부로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특히 무주 사람들이 금산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면마을에서 강을 건너야 했다. 보통 다섯 군데까지 놓였던 섶다리를 계승 보전하는 의미에서 주민들은 섶다리 재연행사를 하고 있다.
또한 서면마을은 금강 옛길인 ‘금강변 마실길’의 시점이자 종점으로 무주군 부남면 대소마을까지 약 20㎞에 이르는 금강을 따라가며 걷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라진 옛길을 복원하고 묵은 길을 다져 도보여행 코스로 만들었다. 이 길은 봄이 제격이다. 잠두마을 건너를 지나는 옛 37번 국도 길에는 4월 중순이면 벚꽃과 복사꽃, 조팝꽃이 어우러진 환상의 꽃길이 열린다. 약 2㎞ 남짓 되는 짧은 길이지만 전체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벼룻길이라는 아슬아슬한 절벽 구간도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율소마을 논에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로였던 이 길은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져 오는 각시바위의 하단부를 정으로 쪼아 물길을 만들었다. 그 후 이 동굴은 ‘사람의 길’이 되어 아이들은 학교에, 어른들은 장보러 가는 길이 되었고, 벼룻길이란 이름의 옛길로 남아 도보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5시간 이상 소요되는 전체 구간이 부담스럽다면 잠두마을 옛길과 벼룻길 구간만 걷는 것을 추천한다.
반딧불이의 고장답게 반딧불장터란 이름으로 불리는 무주 오일장(1·6일)으로 향한다. 입구에서부터 고수 향이 진동을 한다. ‘무주 사람’이 되려면 향채(香菜)인 이 고수를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터에는 고수골목이 따로 있다. 장터에 왔으면 먹거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장터국수와 순댓국밥집이 몰려 있는 먹자골목이 따로 있다. 구수한 피순대도 좋지만 오늘은 보리밥과 덤으로 나오는 장터국수를 먹는다. 3대 52년째 문을 열고 있는 ‘할매국수’집은 장터국수가 대표메뉴지만 보리밥을 시키면 국수까지 내온다.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장터 한편에서 만난 대장간이 반갑고 고맙다. 한 몸 움직이기도 힘든 한 평(3.3㎡) 남짓한 대장간에는 쇠를 달구는 화덕을 비롯해 쇠를 두드리고 다루는 모루와 풀무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 준다. 50여년째 ‘우리대장간’을 지키고 있는 대장장이 박재용 할아버지는 “3000원짜리 중국산 낫보다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려서 만든 조선 낫이 더 좋아” 하시며 중요한 것은 AS도 된다고 한다.
대장간 맞은편에는 48년째 장날만 좌판을 펼치는 찐빵집이 있다. 부끄럽다며 한사코 사진 찍는 걸 마다하신 할머니는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무주읍과 설천면 두 군데 장날만 나오신다. 찐빵뿐만이 아니라 기름기가 없는 호떡과 감자떡도 있다.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입맛에 맞지 않겠지만 50년 가까이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어 옛날 맛이 그리운 사람에게는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쫀득하고 담백한 맛이다.
전라북도 최북단에 위치한 무주는 충남 금산, 충북 영동, 경북 김천, 경남 거창 4개도가 접하고 있는, 동서남북 모두 200㎞ 내외 거리로 남한의 정중앙이다. 그러다 보니 접경지대 마을마다 사투리가 제각각이다. 장터에서는 경상도와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뒤섞여 있어 어르신들의 대화를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터를 벗어나 군청 방향으로 걷는다. 인구 9500명의 소읍인 무주의 중심도로다. 주로 오래된 건재상과 신발, 옷가게가 몰려 있다. 정기용 건축가의 리노베이션 작품인 무주군청을 지나 무주 향교까지 이어진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 채 안 걸리는 짧은 거리지만, 대도시와는 다른 작고 낡은 점포들이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향교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전통놀이와 가훈쓰기 등 무료 체험이 가능하다.
여행 Tip
무주 오일장은 1일과 6일 열린다. 장터국수와 보리밥을 내는 ‘할매국수’(063-324-8070)는 쉬는 날이 따로 없이 매일 문을 연다. 보리밥과 장터국수 4000원.
이른 봄 풍경을 즐기기에는 무주나들목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적상산 등산로 입구 서창마을 숲이 제격이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수십 그루가 이제 막 연둣빛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정기용 건축가의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대표작인 서창갤러리(010-5359-2518)는 꼭 찾아봐야 한다. 지역 주민공동체인 협동조합 공간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도자기, 목공, 캘리그라피, 바느질 등 전시·체험 공간이 있다.
무주 마을로 가는 봄 축제(마을을 잇는 사람들 010-2683-3988)가 3월 말부터 5월 7일까지 무주군 일원 19개 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마을별 특성에 맞는 체험과 숙박이 가능하다.
6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해미읍성
충남 서산시 해미면. 한눈에 소재지가 다 드러나는 작은 소읍(小邑)이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유적과 천주교 성지(聖地)이다. 서산 9경(景) 중 제1경으로 꼽을 만큼 서산의 대표적 명소인 해미읍성과 해미순교성지가 그것. 수백 년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수도권에서 1시간대 거리로 생각보다 가깝다.
왜구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1417년(조선 태종 18년)부터 1491년(성종 22년)까지 축성된 해미읍성은 높이 5m, 성곽 둘레 1.8㎞로 우리나라 읍성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읍성’이라 불린다.
수문장이 지키고 있는 정문 격인 진남문을 들어선다.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읍성이지만, 여유 있는 공간 배치 덕분에 산책하기 좋은 분위기다. 탁 트인 시야와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이다. 유적지가 아니라 공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노는 아이도 있고, 투호나 제기차기와 같은 전통놀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마냥 정겹다.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평화롭다. 연을 날리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해미읍성은 바람골이라고 불렸을 만큼 바람 잘 불기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매년 설연휴를 전후해 전국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평일은 주로 어린이 방문객들이,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다. 운이 좋다면 전통혼례식을 볼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가 야외 식장으로 손색이 없다 보니 읍성관리사무소를 통해 예약하면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해미읍성은 ‘탱자성’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적군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해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성 주변에 둘러 심었기 때문으로 복원된 탱자나무를 볼 수 있다.
해미읍성에서는 전통공연과 각종 상설프로그램이 연중 진행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읍성 내 잔디광장에서는 외줄타기, 전통무예, 풍물 등의 공연과 함께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판매되는 농특산물 직거래장터도 열린다. 읍성 끝에 있는 소나무숲 산책과 암문이라는 비밀의 문 등 소소한 볼거리도 많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읍성을 돌아보자. 성(城)이라고 해서 거창한 규모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건물은 낮고 소박하다. 여염집 마당마냥 정갈하고, 고요하고, 깔끔하다. 읍성 안에는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건물 동헌과,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인 객사,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지은 청허정, 관리나 그의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내아, 조선시대 양반이나 관리, 상인의 집을 재현한 민속 가옥촌, 무수히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투옥했던 옥사 등이 있다. 민속가옥에서는 정겨운 다듬이질 소리와 함께 지역 어르신들이 재현하는 죽공예와 짚풀공예 등 선조들의 옛 생활상을 만날 수 있다. 무시무시하고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든 옥사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서산과 당진, 보령, 홍성, 예산 등 서해 내륙지방을 내포(內浦)지방이라 일컫는데, 서해 물길을 따라 들어온 한국 천주교가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뿌리내리던 조선 후기, 이 지역 주민 80%가 천주교 신자였다. 천주교도들의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1866년 천주교 박해 때 1000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이곳으로 잡혀와 고문과 처형을 당했는데, 옥사 앞 회화나무 가지 끝에 철사를 매달고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고문과 처형을 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이 나무에는 사람을 매단 철사 자국이 남아 있다. 웅장한 크기에 비해 아픔의 흔적이 너무 커서일까. 수령 300년이 넘었다는 회화나무는 당당함보다 슬픔이 더 커 보인다. 2014년 8월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이 해미읍성을 찾아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해미읍성의 남문 진남문에서 1.3㎞ 거리에 있는 읍내리에는 수천 명이 넘는 무명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해미 순교성지가 있다. 높이 16m의 철근 콘크리트 원형 조형물인 해미순교탑과 기념성전이 건립돼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셔놓고 있다.
읍성을 빠져나와 성벽을 끼고 서문 방향으로 돌아나간다. 1.5㎞ 거리의 오학리에 해미향교가 있다. 조선시대 관립교육기관이었던 해미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건립되었다. 홍살문을 지나면 수령 200~3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거수 10여그루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이르지만 4월 중순이면 연둣빛으로 물들고 가을이면 활엽수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서다 각양각색의 절구와 돌탑이 인상적인 집을 만났다. 특이해서 둘러보는데 집주인 김진화씨가 들어와서 구경하라며 집안으로 안내한다. 마당에는 절구뿐만이 아니라 기묘한 형상의 수석이 전시되어 있다. 알고 봤더니 이 집은 서산에서는 소문난 ‘절구집’으로 통한단다.
“10여년 동안 손수 모은 절구들입니다. 저 멀리 30리 골짜기에서 하나씩 져 날랐지요. 여기 이 호박절구는 경북 문경에서 어렵게 구해온 것이랍니다.”
호박절구는 호박 모양으로 둥근 자연석 절구를 가리킨다. 유독 절구를 이렇게 많이 모은 이유가 뭘까.
“처음에는 수석이 좋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절구를 보고 반하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집집마다 하나씩 다 있었잖아요. 가만 보니 우리네 인생 같더라고요. 단 하나도 똑같은 모양이 없어요. 집에서 쓰는 절구도 있지만, 금 빠는 절구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단 하나도 똑같은 게 없다. 크기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 다르다. 기계로 깎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다듬고 만들어져 사람의 손에 의해 닳고 닳아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따금 향교를 찾는 여행객들이 구경 삼아 들어오지만 개인 집이다 보니 항상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절구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으면 언제든 친절하게 절구마다 깃든 사연을 설명한다.
매화와 산수유꽃이 떠난 자리에 벚꽃이 자리 잡았다. 저 아래 섬진강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온 벚꽃 소식이 곧 중부지방에 당도한다. 꽃축제 중에 벚꽃축제만큼 많은 축제가 또 있을까. 어지간해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요즘은 작은 마을에서도 벚꽃축제를 하니 말이다. 벚꽃 다음은 배꽃, 사과꽃, 복사꽃이 남았다. 이 꽃 저 꽃 다 지고 나면 대충 봄꽃 잔치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서산에도 소문난 벚꽃 명소가 여러 군데 있다.
해미천변에서도 올해부터 제1회 해미천 벚꽃축제가 열린다. 20여년 전부터 지역주민들이 식재한 300여그루의 벚꽃나무가 늘어선 해미천변 2.7㎞ 구간의 벚꽃길은 생태하천과 어울려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해미읍 근처엔 왕벚꽃으로 유명한 문수사와 개심사가 있다. 이 두 곳은 4월 중순 이후에나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마음이 열리는 절’이라는 뜻을 담은 개심사(開心寺)는 왕벚꽃뿐만이 아니라 일주문에서 절집으로 향하는 솔숲이 운치 있다. 백제가 멸망하기 불과 6년 전인 654년(의자왕 14년)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여행 Tip
주말이면 주차 공간 찾기도 힘들 만큼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읍성 맞은편 상가 지역에는 다양한 메뉴의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있듯 역시 오래된 식당으로 손님들이 몰린다. 읍성 앞에서 3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성각(041-688-2047)은 화교가 운영하는 집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국물과 면발이 특징인 짬뽕으로 유명하다. 읍성뚝배기(041-688-2101) 역시 읍성 앞에서 진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옛집을 그대로 이용한 마당에 큰 무쇠솥을 걸고 사골설렁탕과 소머리곰탕을 끓여낸다. “조미료에 길들여진 분들은 순수한 국물 맛을 잘 모를 수 있지만 담백한 본래의 맛을 좋아하는 단골이 많다”는 주인 백영희씨는 자신이 만드는 곰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해미돌박사로 통하는 김진화씨의 절구집은 해미향교 바로 앞에 있다. 개인 집이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면 절구 하나하나를 구하며 겪은 일화와 절구의 쓰임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글·사진] 눌산 여행작가
주간조선 [2452호] 2017. 4. 10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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