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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산사랑] 이깔나무 숲으로 스며든 충북 영동 허동일 씨 가족

by 눌산 2017.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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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 산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 충북 영동 허동일 씨 가족

사계절 중에 봄이 가장 짧다.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다 들썩이며 한바탕 꽃잔치를 치루고 나면 이내 반팔 옷을 꺼내 입어야 할 만큼 기온이 급상승한다. 그렇다고 짧았던 봄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숲에는 꽃보다 더 향긋한 초록이 우거졌으니. 현대인들은 어느 순간 쉼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산을 찾는다.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산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꿈을 꾼다. 산에 살고 싶다고.

 

충북 영동의 오지마을 여의리에 펜션을 짓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와 백일도 안 된 갓난아이를 안고 첩첩산중 한가운데로 들어간 이가 있다. 충청북도 영동에서도 가장 오지로 손꼽히는 학산면 여의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허동일(47) 씨다. 그가 사는 곳은 여의리 본()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골짜기다. 이곳은 영동 사람들도 잘 모른다. 영동읍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아직도 비포장 길로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들목은 학산면 소재지다. 포도와 복숭아 산지인 아암리를 지나 어의산 저수지를 지나간다. 복사꽃이 한창 보기 좋게 피었다. 비가 내려 촉촉이 젖은 숲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고, 고개를 넘는다. 초행길이라면 긴장할 만하지만, 잘 다져진 도로라 승용차로도 곧잘 넘어 다닌다. 고개를 넘어서면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허동일 씨의 펜션이다. 펜션 앞 숲에는 초록빛으로 물기기 시작한 이깔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큰 키와 반듯한 모양새가 숲의 주인공인 듯 도열해 있어 누가 봐도 반할 만하다. 허동일 씨 역시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미 가득한 이 숲이 맘에 들었다고 했다.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가 고향입니다. 도시를 떠날 생각을 굳힌 후, 처음엔 고향에 집을 지을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집을 지으려고 준비했던 땅이 진입로 문제로 집을 지을 수가 없게 되었죠. 그리고 꼬박 1년 동안 전국을 여행하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답니다. 그러다 이 여의리 땅을 사게 됐죠.”

 

 

올해는 허동일 씨 가족이 도시를 떠난 지 딱 10년 째 되는 해다. 말 그대로 강산이 한번 바뀌었다. 아내 김은아(43) 씨와 큰 딸 민(11) 이렇게 셋이 내려왔지만, 지금은 둘째 윤(8)과 셋째 정(4) 두 딸이 더 태어났다.

경기도에서 살 때도 자영업을 해 바쁜 생활을 하긴 했지만, 펜션을 운영하게 되면서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어요. 집 지을 땅을 구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죠. 머릿속에 그림은 그려져 있었지만, 가격이나 환경 등을 꼼꼼히 따지다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집을 짓고 가꾸는 일도 만만치 않았고요.”

펜션 부지라 그런지 땅이 꽤 넓다. 800여 평이라고 했다. 외딴 집이다보니 여름이면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집 앞을 흐르는 계곡 청소도 해야 되고, 많지는 않지만 텃밭도 가꾸고 있다. 다행인 것은 주변이 다 숲이다 보니 굳이 정원은 가꿀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미 잘 조성된 숲 한가운데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중요했어요. 도시를 떠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보시다시피 여기는 숲이 너무 좋아요. 이깔나무는 말 그대로 잎을 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봄이면 연둣빛이지만, 곧 초록으로 물듭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또 한번 색이 변하죠. 다들 백만 불짜리 숲이라고들 합니다.”

 

 

 

미래의 희망 아이들을 위한 지역 사회활동에도 적극적

처음 이 골짜기를 찾았을 때의 느낌을 살려 펜션 이름 또한 이라고 지었다. 허동일 씨는 여행자들에게 산책을 꼭 권한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펜션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12일 여정의 보상으로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강이 있어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골짜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흐르는 산안개와 물안개가 서로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매일 아침 만나는 이런 장관을 여행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허동일 씨의 마음이다.

허동일 씨는 귀촌을 결심하고부터 펜션을 운영할 생각이었다. 농사는 경험도 없을 뿐더러 자신이 없었다. 대신 펜션은 평소에도 여행을 즐겨했던 터라 여행자의 입장에서 여행자와 소통하며 건전한 여행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먹고, 마시고, 잠만 자고 가는 펜션이 아니라, 귀촌생활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교류하는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했다.

아내 김은아 씨와 세 딸은 현재 잠시 읍내 아파트에 거주하며 여의리를 오간다. 여의리에는 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 11월부터는 허동일 씨가 시민단체 대표를 맡으면서 읍내를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김은아 씨는 이미 3년 전부터 읍내 주민들과 함께 월 1회 벼룩시장과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었고,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이름의 학부모 연구모임도 준비 중이다. 부부가 모두 지역사회활동에 적극적이다.

소읍(小邑)의 미래는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학교가 살아야 지역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추세가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시키고 있잖아요. 학교가 사라지면, 결국은 지역도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마음 맞는 몇몇 주민들과 작은 시민운동을 시작했답니다.”

 

여전히 도시를 선호하는 교육의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학교가 없어지면, 인구가 줄고,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게 마을교육공동체를 결성한 이유다. 더 나아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 계획도 추진 중이다.

끝으로 하동일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귀촌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가 땅입니다. 그리고 가격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역을 먼저 선택해야 하고요. 어느 지역에 가서, 어떤 일을 하고 살겠다는 계획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산이 좋다고 무작정 산골에 들어오면 적응하기 어려워요. 산골 생활은 겉과 속이 다르니까요. 실제로 벌레가 많아 살기 힘들다고 떠난 사람도 봤거든요.”

현실과 이상의 차이일 수 있겠다. 도시라면 전화 한 통이면 다 해결되지만, 산골에서는 그럴 수 없다. 심지어 집을 짓고 고치는 일까지도 손수 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허동일 씨의 조언처럼 겉만 보지 말고 실제 귀촌한 이들을 삶을 보고 듣는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사진 눌산 http://www.nulsan.net

 

허동일 씨 가족이 운영하는 '펜션 숲'  http://www.sooppension.co.kr/

한국산지보전협회 산사랑 웹진 145+6월호 (http://kfca.re.kr/sanFile/web14/02_0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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