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곰도 길을 잃는 곳, 강원도 인제·홍천 ‘삼둔사가리’
대한민국 오지를 논하면서 ‘삼(三)둔 사(四)가리’를 빼놓을 수 없다. 삼둔사가리는 세 군데의 ‘둔’ 자가 들어가는 살둔·월둔·달둔마을과 네 군데의 ‘가리’ 자가 들어가는 아침가리·연가리·적가리·명지가리를 일컫는 말이다. 따로 얘기하겠지만 이들 일곱 군데의 마을은 전쟁도 피해가고, 설악산에 살던 곰도 이곳에 들어와 길을 잃었다고 전해질 만큼 가장 외지고, 험하고, 열악한 땅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 일대에 걸쳐 있다.
은자들의 고향, 삼둔사가리
혹자는 한 곳을 더해 ‘삼둔오가리’라고도 하는데, 큰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둔과 가리다. ‘둔’은 둔덕의 의미로 골짜기의 펑퍼짐한 땅을, ‘가리’는 협착하지만 사람이 일구고 살 만한 농토가 있는 골짜기를 일컫는다. 이들은 모두 방태산을 가운데 두고 골짜기 하나씩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다.
먼저 4가리를 찾아간다. 점봉산에서 발원한 진동계곡이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내린천과 합류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골짜기의 물이 합쳐진다. 그중 가장 큰 골이 바로 아침가리와 연가리, 적가리골이다. 적가리는 일찍이 방태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사라졌고, 좀 더 상류의 연가리골은 원주민이 모두 떠나고 두 가구의 객이 들어와 살고 있다. 명지가리는 아침가리골 상류로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지경이다. 이 중 아침가리골이 가장 길고 웅장하다.
해발 1000m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요새, 아침가리
본래는 아침가리다. 한데 공무원들이 조경동(朝耕洞)이라 했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아침 한나절이면 밭을 다 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골짜기’란 뜻이 된다.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와 조경교(橋)가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골짜기의 길이만 약 21㎞에 해발 1000m가 넘는 구룡덕봉, 응복산, 가칠봉, 갈전곡봉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와도 같은 지형으로 세속의 세계와 담을 쌓고자 했던 은자들에게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 이유로 아침가리는 오지의 대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오지여행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아침가리를 얘기하는 수많은 수식어들은 차라리 찬사에 가깝다. 삼둔사가리의 중심, 전기 없는 오지마을, 최고의 오지, 마지막 오지, 이상향, 은둔처 등등.
들목은 방동약수다. 탄산 성분이 많아서 설탕만 넣으면 영락없는 사이다 맛이다. 300여년 전 한 심마니가 산삼을 캐낸 자리에서 약수가 치솟았다. 약수의 맛도 맛이지만, 신비스러운 주변 풍경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약수터 뒤로 난 오솔길을 따르면 곧바로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올라선다. 아침가리로 향하는 유일한 도로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 고갯마루에 닿는다. 관리초소인 방동안내센터와 함께 자동차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차단막이 있다. 아침가리길은 산림청에서 조성한 양구에서 홍천을 잇는 151㎞의 백두대간 트레일의 6구간이 지나는 코스로 사전에 예약한 하루 100명만 출입이 허용된다. 대신 아침가리 입구 조경교에서 시작하여 진동리 갈터마을에 이르는 계곡 트레킹 코스는 허가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아침가리골 관리초소에서부터는 비포장도로다. 스마트폰 전원도 미리 꺼두는 게 좋다. 이후부터는 통신 불가다. 속세에 찌든 때는 훌훌 털어버리고 가자. 길은 내리막이다. 가볍게 마을 입구 조경교까지 이어진다.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만한 폭의 도로는 ‘걷기 좋은 숲길’이다. 이미 원시림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다. 고개를 막 내려서면 계곡의 우람한 물소리가 들린다. 아침가리 계곡이다. 무인상점인 컨테이너와 두 번째 관리초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계곡 트레킹을 위해 발을 물에 담근다. 약 6㎞에 이르는 하류 끝 진동계곡과 만나는 갈터까지 17번 이상 물을 건너다니며 걸어간다. 비가 오거나, 비가 예상되는 날에는 출입을 제한한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고, 탈출로가 따로 없다 보니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 국내 최고의 계곡 트레킹 코스다.
“얼마 전에 갑자기 물이 불어 야영하던 10명이 고립됐어. 내가 위험하다고 말렸는데도 고집을 피우더니 그런 사고가 난 거야. 자연을 우습게 본 거지.”
아침가리의 유일한 주민이자 터줏대감인 컨테이너 주인 사재봉(71)씨 얘기다. 39년 전 암에 걸린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한 약초를 구하기 위해 아침가리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아내의 병은 완치가 되었지만 그는 그대로 눌러앉아 산꾼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아침가리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집을 비우니까 39년 전에 들어와서 심은 자두나무가 저절로 죽어가”라며 그동안 살았던 옛집으로 이끈다. 땅 주인이 바뀌면서 4년 전 그동안 살던 집을 비워주고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사람이 살지 않는 아침가리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었다. “사람도 자연이야. 집에 온기가 사라지면 무너지듯이, 자연도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사는 법인데….”
아침가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의 푸념 같은 하소연을 듣다 계곡으로 내려섰다. 매년 되풀이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여전히 물밀듯이 밀려오는 사람들은 이내 골짜기로 빨려 들어간다. 과연 이들은 알까. 이 땅의 역사를.
아침가리에는 요즘은 보기 힘든 목조건물의 조경분교가 그대로 남아 있다. 폐교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운동장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나저나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 만큼 좁은 이 골짜기까지 누가, 왜, 들어와 살았을까. 기록에 의한 시초는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 기인한다. 이상향을 좇아 주로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들이 일대로 몰려들었다. 근대에 들어서는 대규모 벌목작업을 위한 인부들이 모여들었다. 그로인해 학교도 생겼고, 변변한 터가 없던 곳에 화전을 하고 농토를 일구었다. 낙엽송이나 자작나무가 심어진 산자락이 바로 화전의 흔적들이다. 화전 금지정책 이후 숲이 되었다.
백두대간 트레킹 6구간 아침가리길은 방동약수에서 산 너머 월둔까지 장장 21㎞에 이른다. 산판 트럭이 오가던 길로 최소 7시간은 잡아야 하는 먼 거리다. 조경분교 앞 자작나무숲을 지나면서 계곡을 건넌다. 다리는 끊겼다. 때론 바짓단을 걷고 물에 몸을 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숲길이다. 하늘을 가린 원시림 속으로 스며든다. 대부분 평지 수준의 길로 명지가리와 구룡덕봉 삼거리 일대만 오르막이 있어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월둔은 3둔 중 하나로 홍천 땅이다.
계곡이 휘감고 흐르는 마을, 살둔
3둔은 홍천군 내면에 있다. 먼저 살둔. 한자 지명인 생둔(生屯)이 있지만, 살둔으로 통한다. 한때 오지여행 매니아들의 아지트였던 귀틀집인 살둔산장이 있는 곳으로 지금도 여전히 민박을 치며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여행자들과 여름 피서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30여가구가 살고 있는 살둔마을은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육지 속 섬이었다. 내린천 상류 살둔계곡이 마을을 가운데 두고 휘감고 흐른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 고갯마루에 서면 외딴섬의 지형을 바라볼 수 있다. 현재는 두 개의 다리가 놓이고, 홍천 내면과 인제 상남면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뚫려 배를 타고 다녔던 옛 모습은 사라졌다.
“강을 건너는 배가 있었지만 비가 와서 물이 불면 오도 가도 못했어요. 학교도 못 가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죠.”
살둔체험마을 이태호 사무장 얘기다. 산과 절벽, 강과 고개로 가로막힌, 섬보다 더한 열악한 환경은 생명력을 키웠다. “저기 보이는 낙엽송 숲이 다 밭이에요. 밭에서 지게 한 짐 지고 오면 한나절이죠. 눈에 보이는 게 다 산이다 보니 산나물 같은 먹을거리가 많았어요. 그렇게 살아남은 거죠.” 최근 뚫린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 인제IC에서 불과 20여분 거리가 되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이태호 사무장은 이런 급격한 변화들이 여전히 낯설다고 했다.
살둔산장 맞은편 문암천을 따라 오르면 근동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인 문암동이다. 산 모양이 마치 바다의 석화를 닮았다 하여 석화산(石花山)이란 별칭을 가진 문암산(門岩山·1146m) 아래 문암동에는 100년이 넘은 교회가 있다. 여전히 비포장도로에 들고나기도 힘든 이 험한 골짜기에 100년 역사의 교회라니!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살았었다는 얘기로 현재는 대규모 고랭지 배추와 오이 재배단지가 있다. 살둔에서 문암동 가는 길은 소문나지 않은 트레킹 코스다. 도로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빼곡히 들어찬 원시림이 자연스럽게 숲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걷기에는 그만이다.
여름도 피해가는 곳, 달둔
길을 돌아나와 오대산 자락으로 들어간다. 56번 국도 원당삼거리에서 월둔을 지나 약 7㎞를 달리면 계방천 다리 건너 달둔(達屯) 가는 길이다. 입구에 성진베이커리 빵집을 이정표 삼으면 된다. 갈증 때문에 들어간 빵집에서 달달한 팥빵 맛에 반했다. 45년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전영만·전성진 부자가 운영한다. 이 깊은 산골에 빵집을 낸 이유. 당연히 지나가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고랭지 채소밭이 많은 지역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고. “먹고살 길을 찾아 간 서울이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살아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라며 얘기하는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달둔으로 들어간다. 들어간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숲이 깊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 김승문(81)·이월구(79) 부부의 산장은 달둔의 초입으로 100여명이 살았다는 마을까지는 4㎞ 이상 더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는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있어 출입 불가다. 김승문씨는 얼마 전 내린 폭우로 피해를 입은 계곡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320㎜가 내렸어. 매미·루사도 용케 피해갔는데, 이번에는 이 골짜기에 집중됐나봐”라며 계곡물이 넘쳐 도로까지 물이 흘러들었지만 그나마 더 큰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자연은 우리한테 많은 혜택을 주지만, 까딱 잘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주기도 하지. 아파트 짓는다고 산을 날리고, 없던 산도 떡하니 만들잖아. 난 그런 거 보면 무서워.”
김승문씨는 뼛속까지 산사람이다. 햇볕이 한나절도 안 드는 깊은 골짜기에서 평생을 살았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전쟁도 피해간 오지라고 하는데, 그거 다 모르는 소리야. 여기가 바로 38선이었잖아. 그러니까 숨고 말고가 어딨어. 인민군들이 바로 밀고 들어와 버렸지.” 충주까지 잠시 피란을 다녀오기도 했고, 전쟁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겪었다. 여전히 “이런 깊은 산속이면 전쟁이 나도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가장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야 했다. 그의 아내는 아침가리가 고향이다. 걸어서 70리 길로 눈이 가장 많이 내렸던 해에, 얼마나 눈이 많이 내렸던지 가마를 들 수도 없어 걸어서 시집을 왔다. 가장 깊은 산골에서 더 깊은 산골로.
“오대산 신배령을 넘으면 주문진이고, 구룡령을 넘으면 갈천을 지나 양양이거든. 여긴 변변한 땅이 없다 보니 소금이나 보리쌀 구하러 110리 길을 걸어 다녔어. 하루에 안 되니까 가서 하룻밤 묵고 이고지고 또 산을 넘어오는 거지. 옛날에는 다 그렇게 살았어.”
옛날 고리짝 얘기를 누가 들어줄 리 없다. 김승문씨는 귀담아 들어주는 이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달둔산장 앞은 여름이면 캠핑촌이 된다. 일자로 쭉 뻗은 소나무 숲 한가운데 있는 산장의 위치만 놓고 보면 여느 재벌 별장 못지않다. 더구나 산장 앞에는 그냥 떠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른다. 계곡과 깊은 숲, 도시인들에게는 피서지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시대의 피서지들은 과거 조상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난과 은둔지였다. 어쩌면 이 시대 사람들도 살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은 얘기는 다음을 위해 묻어 두고 산을 내려왔다. 훅하고 들어오는 아스팔트 열기에 숨 쉬기도 힘들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야겠다.
여행 Tip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오지의 대명사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인제나들목에서 아침가리와 살둔, 달둔이 30여분 거리에 있다.
아침가리골은 인제군에서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2020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어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백두대간트레일 6구간인 방동약수에서 조경분교를 거쳐 월둔까지의 아침가리길은 인터넷 사전예약(www.komount.kr)을 통해 1일 100명에 한해 입장이 가능하다. 예약이 필요 없는 계곡트레킹 역시 가능 여부를 백두대간트레일 안내센터(033-461-4453)에 문의하면 된다.
살둔마을에 살둔체험마을(070-7793-0366)에서 운영하는 옛 생둔분교 캠핑장과 흙과 나무로 지어진 5동의 귀틀집 숙박시설이 있다. 내린천 최상류 계방천을 끼고 있는 달둔산장(033-435-5285)에서도 민박과 캠핑이 가능하다.
[글·사진] 눌산 여행작가
주간조선 [2471호] 2017. 8. 21 발행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4711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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