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더웠냐는 듯 “바람이 좋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제 가을이다. 높은 기온 차와 따가운 햇살은 곡식을 살찌우고 빨갛고 때깔 좋은 사과를 영글게 한다. “고추 따다 허리 한번 펴고 나면 땀이 다 말라요.” 영양 일월산 자락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농부 얘기다. 그는 손바닥을 펴고 바람을 만져 보라고 했다. 순간 땀으로 눅눅해진 손바닥이 바람이 훑고 지나가자 거짓말처럼 보송보송해진다. 섬진강변 화개장터에서 만난 상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길고 무더웠던 여름을 무사히 보낸 안도의 미소리라.
▲ ‘제14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도곡리 마을숲. 마을숲 창고 벽에는 도곡리 주민 이산뜻한씨가 과거와 현재의 마을 사람들을 그려 놓은 벽화가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무공해 청정지역, 영양
“깨물어 먹으면 캬~ 영양고추를 몰라여 영양고추~”라며 한동안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던 영양고추 CF에 등장했던 당시 고기환 어르신을 기억하는지. 이 CF 하나로 경북 영양은 고추의 고장으로 각인되었다. 실제로 영양에 가면 고추밭 천지다. 과거 담배농사를 많이 짓기도 했지만 지금은 담배보다 고추밭이 훨씬 더 많다.
일월산 자락 도곡리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불빛이라고는 반딧불이만이 유일한 이 산골의 주인은 이산뜻한(47)씨. 서울에서는 화가였고 지금은 이곳에서 혼자 흙집을 짓고 있다. “도시 사람들은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군요. 그건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가로등 전구 하나만 나가도 답답하게 느껴지잖아요. 저에게 어둠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입니다”라며 밤에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인지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낸다.
아침 산책을 했다. 촉촉한 흙 내음이 올라온다. 구절초, 벌개미취, 코스모스가 제멋대로 흐트러져 피어 있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줄 세워 심어 놓은 인공꽃밭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스러운 흐트러짐은 보는 이의 마음도 편안하게 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모양이 제각각이다. 불과 서너 발자국 뗐는데도 네댓 개의 가을꽃이 피어 있다. 걷다 보니 도곡리 마을숲에 들어와 있다.
수령 300여년 된 느티나무와 느릅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도곡리 마을숲은 ‘제14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매년 8월 초에는 이곳에서 마을잔치도 열린다. 600여명의 마을 주민과 객지에 나간 출향민이 모여 논에 김매기를 마칠 무렵인 백중날 즈음에 하던 풋굿놀이를 재현한다. 마을숲 바로 옆 창고 벽에는 이산뜻한씨가 그린 벽화가 있는데 과거와 현재의 마을 사람들 얼굴과 모습들을 그려 넣었다. 흔한 벽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우리나라 대표적 오지로는 강원도의 영평정(영월·평창·정선), 호남의 무진장(무주·진안·장수), 경북의 BYC(봉화·영양·청송)를 꼽는다. 영양은 전체면적 중 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85.6%에 달하고 농경지의 73%가 밭이다. 전형적인 산악지형으로 영양에서 가장 높은 해발 1219m의 일월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약초는 그 맛과 약성을 인정받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일월산의 수많은 크고 작은 골짜기를 하나씩 차지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평생 땅에 의지한 채 살아온 이들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산으로 들어간 산꾼들도 있다. 그중 영양 최고의 오지마을로 꼽힌다는 일월면 오리리 노루목을 찾았다.
▲ 영양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영양 최고의 오지마을 오리리 노루목 가는 길. 1km 남짓한 비포장길이다.
일월산 바로 밑, 노루목 끝자락에 사는 김병철(48)·김윤아(43) 부부는 11년 전 서울에서 귀농했다. 콩농사를 짓고 메주를 만든다. 농가민박이란 이름을 걸고 딱 방 하나만 내준다. 일월산에서 나고 자란 나물로 밥상을 차려낸다. 농한기에 남편은 목공예 작품을 만들고, 아내는 도자기를 굽는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덕에 ‘도시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꿈이죠. 저희 부부 역시 꿈을 꾸고 이곳에 들어왔으니까요. 대신 도시생활의 편리함, 안락함은 다 버려야 합니다”라며 많은 것을 버리고 얻은 산골 생활의 자유로움에 대해 얘기했다.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들어온 게 아니다 보니 그 흔한 취나물도 모르던 첫해는 하루 종일 산에 올라 뜯어온 나물이 대부분 먹을 수 없는 풀이었어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서 하나둘 배우게 되었죠.”
▲ 젊은 세대들은 오래전에 썼던 선배들의 책가방을 기억할까. 가방 가게 주인 김칠동 씨가 버리지 못해 간직하고 있다는 책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노루목을 나와 읍내로 향한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이산뜻한씨가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장터. 으레 장터 국밥을 떠올리겠지만 일행은 산채비빔밥을 택했다. “도시 사람들 입맛에는 맞을지 모르겠어요” 하는 이산뜻한씨의 걱정은 기우였다. 비빔밥 재료야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장맛이 달라서인지 “공깃밥 추가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장터를 둘러보고 있는데, 가방가게 주인이 불러 세운다. 간판은 포목점이지만 상점에 진열된 것은 대부분 가방이다. 시골 상점은 이렇듯 두세 품목을 겸하는 곳이 많다. 대성포목 김칠동(61)씨가 “이런 가방 봤어요?” 하며 보여준 가방은 40~50대 나이 정도는 돼야 알아볼 수 있는 책가방이다. 그러고 보니 가게 안팎에는 온통 30여년 전에나 쓰던 책가방들이 걸려 있다. 그 연유를 물어봤다.
“선친이 60년 전부터 운영하던 장의사와 포목점입니다. 장례식장이 생기니 장의사가 안 됐고, 포목은 교통이 좋아지면서 다들 안동으로 나가죠. 더욱이 한복을 많이 안 입기도 하고요. 그러다 가방 판매를 겸하게 됐는데, 책가방이 필요 없어지니까 팔던 가방이 그대로 남게 된 겁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추억 삼아 꺼내 보여줍니다.”
한옥을 내달아 낸 점포 실내 공간은 대청마루다. 이건 국민학생용, 이건 중학생용 하면서 꺼내 놓는 가방 종류만 해도 10여 가지는 된다. “필요하면 가져가소! 어디 누가 필요하다고 하면 기증할까 합니다.”하는 김칠동 씨 얼굴에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 현존하는 막걸리 양조장 중 가장 오래됐다는 영양 양조장. 100년 전 지어진 건물로 본채는 압록강 적송을 가져다 지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전통적인 방식의 발효실은 왕겨를 채워 넣은 벽채 두께가 1m에 달한다고 한다.
영양읍에도 현대화 물결이 흘러들었다. 중심도로인 중앙로에는 프랜차이즈점도 여럿 보인다. 소읍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는 뒷골목으로 가야 한다. 영양읍사무소(행정복지센터) 앞에는 100년 된 건물이 있다. ‘영양양조장’으로 건물 본채의 등기연도가 1920년이다. 확인된 것만 그렇고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존하는 막걸리 양조장 중 가장 오래됐다. 영양양조장 권시목(71) 대표는 “압록강 적송을 가져다 지었다고 들었어요. 할아버지와 부친이, 그리고 제가 운영했고, 이제는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막걸리 제조법을 알려주고 있답니다”라며 사양길에 접어든 막걸리의 명맥이 끊길까봐 안타깝다고 했다. 영양양조장에는 전통적 방식의 발효실이 현재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벽과 천장이 두 겹에다 폭이 1m쯤 된다. 벽 사이에는 왕겨를 채워 넣어 건물 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다행인 것은 한창 수련 중인 이영재(34)씨가 이어받아 계속 운영할 예정이라고.
▲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의 지훈문확관.
▲ 단아한 선비의 자태를 닮은 소박한 정원과 연못이 아름다운 서석지의 정자 경정(敬亭)엣 여행자들이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영양을 대표하는 단어로는 오지, 고추, 반딧불이 외에도 문향(文鄕)이 있다. 이는 시인 조지훈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주실마을, 소설가 이문열의 광산문학연구소가 자리한 두들마을 때문으로 영양을 찾는 여행자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이밖에 입암면 연당리에 자리한 서석지(瑞石池)는 조선 광해군과 인조 때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石門) 정영방(1577~1650)이 조성했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단아한 선비의 자태를 닮은 소박한 정원과 연못이 아름답다. 서석지 연못의 연꽃이 아름다워 마을 지명도 연당(蓮塘)이 되었을 정도다. 이 서석지를 관리하고 있는 후손 정수용씨가 하룻밤 묵어가길 청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 전남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
여행 Tip
영양은 국내 유일의 고속도로·4차선도로·철도가 없는 지역으로 지형지세 때문만 아니라 교통의 오지이기도 하다. 상주~영덕고속도로 개통으로 동청송·영양IC가 열리긴 했지만 IC에서 영양읍까지 30여분 더 들어가야 한다.
영양읍에 깔끔한 시설의 현대식 건물인 쇼호텔(054-683-3533)과 수비면 수하리의 수하산촌생태마을펜션(054-683-0312), 영양군 자연생태공원(http://np.yyg.go.kr)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첩첩산중 오지마을의 하룻밤을 원한다면, 일월산 자락 오리리의 농가민박 ‘농부김씨’(010-6420-7812)를 추천한다. 승용차로도 무리가 없는 비포장도로를 1㎞ 정도 타야 하지만 고즈넉한 저녁시간과 현지에서 생산된 농산물 위주로 식단을 차린 밥상이 특별하다.
▲ 전라남도 광양과 경상남도 화개 땅을 이어주는 남도대교.
사람과 물자, 물줄기가 모여드는 곳, 화개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으로 시작하는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 화개는 몰라도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화개장터보다 노래가 더 유명한 셈이다. 실감 나게 묘사된 노랫말 덕분에 화개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처음 온 사람도 익숙한 느낌이 든다. 섬진강이 흐르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남도대교가 놓여 있다. 장터에는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경상도 사투리에 전라도 사투리가 오순도순 왁자지껄하다. 가사 그대로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닷새마다 장이 서던 화개 5일장이 사라진 것은 오래전이다. 대신 지금의 ‘화개장터’란 이름의 장옥이 세워지고 매일 문을 여는 관광시장이다. 봄꽃 나들이 1번지인 강 건너 광양 매화마을과 화개 십리벚꽃길, 쌍계사, 평사리 최참판댁, 구례 화엄사, 그리고 지리산의 크고 작은 골짜기들이 들고나는 길목으로 사철 여행자가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 화개장터에 가면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가 묘하고 뒤섞인 ‘화개사투리’도 들을 수있다.
▲ 화개는 몰라도 조영남의 ‘화개장터’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 화개장터. 실감나게 묘사된 노랫말 덕분에 화개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처음 온 사람도 익숙한 느낌이 든다.
과거 화개장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면소재지가 있는 탑리 일대를 훑었지만, 어디에도 그 흔적은 없었다. 대신 오일장과 우시장이 섰던 장소만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해안에서 해산물이나 소금을 싣고 올라오는 행상선(行商船) 돛단배의 뱃길 종점이 바로 여기였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큰 장이 섰답니다.” 화개장터 관광안내소 이강문(77) 해설사의 얘기다. 은퇴 후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어릴 적 화개 풍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탑리는 화개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화개장터는 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감자 등을 이고지고 나오고, 전라도 구례나 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 보리를 가져왔겠지요. 그리고 팔도 보부상들은 생활용품을, 여수·광양·남해·삼천포 사람들은 뱃길로 미역이나 생선 같은 수산물을 가득 싣고 올라왔습니다. 근동(近洞)에서는 제일 큰 장이었지요.”
▲ 사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화개장터의 상인연합회 강명숙 회장이 지리산에서 난 고사리를 자랑하고 있다.
화개장터 상인연합회 강명숙 회장은 “전라도, 경상도 상인이 어딨어요. 화개 살면 다 화개 사람인 거죠. 여기서는 출신 지역에 대한 의미가 없답니다”라며 전라도 쪽에서 시집 온 상인들도 많다고 전했다. 장터에서는 주로 산나물과 약초 종류가 많이 팔린다. 평일인데도 장터는 북적거린다. 하루 종일 들려오는 ‘화개장터’ 노랫소리에 맞춰 어깨춤을 추는 이도 있다. 이제 화개장터는 전라도와 경상도뿐만이 아니라 팔도 사람이 다 모이는 ‘팔도장터’가 되었다.
과거 화개 오일장이 섰다는 화개교 다리 아래 화개천으로 내려섰다. 섬진강에서 화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를 잡는 낚시꾼이 여럿 보인다. 은어 낚시는 다른 낚시와 달리 살아 있는 은어를 미끼로 쓰는데, 공격 본능을 자극해 잡는 낚시로 일명 ‘놀림낚시’라고 불린다. 은어 낚시 전문가로 화개에서 은어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이명재(54)씨는 “은어는 바다로 나갔다가 벚꽃잎이 떨어질 무렵이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오는 회귀성 어류예요. 그래서 화개에 은어가 많답니다”라고 했다. 그는 놀림낚시보다 ‘걸갱이 낚시’ 전문가다. 1m가량 되는 대나무 끝에 낚싯바늘을 매달아 물속에서 지나가는 은어의 등을 긁어 훌치기로 잡는 전통 낚시법이다. 성질 급한 은어를 지치게 만든 다음 순식간에 낚아채는 기술이 필요해 지금은 화개에도 걸갱이 낚시꾼은 몇 안 된다고 했다.
▲ 화개장터가 생기기 전, 화개 오일장이 열렸던 화개천은 주차장이 되었다.
▲ 바다로 나갔던 은어가 벚꽃잎이 떨어질 무렵 쯤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회귀성 어류인 은어낚시. 은어 낚시는 다른 낚시와 달리 살아있는 은어를 미끼로 쓰는데, 공격 본능을 자극해 잡는 낚시로 일명 ‘놀림낚시’로 불린다.
장터에서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면 면소재지 중심 상가지역이다. 입구에 버스터미널이 있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이발소와 모텔, 노래방 등 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큰 도로변은 식당가다. 19번 국도가 지나는 화개삼거리에서 십리벚꽃길로 들어서기 전까지 참게탕과 민물매운탕, 은어회 등을 내는 식당이 밀집되어 있다. 여전히 화개터미널은 경상도와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으로 여름 휴가철이면 배낭을 둘러멘 여행자들로 붐빈다. 터미널 길 건너 큰 도로변에 있는 화개 개인택시 사무실에서 만난 정복수(61)씨는 “봄 벚꽃철과 여름 휴가철에 가장 손님이 많아요. 근데 점점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추세라 걱정입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요즘은 나이 지긋한 노부부들이 주 고객이다. 하동군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을 위해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는 관광택시를 운영 중이다.
▲ 화개 ‘십리벚꽃길’의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 옆으로는 녹차밭이 펼쳐진다. 가을빛으로 물든 단풍이 내려 앉은 녹차밭 풍경도 아름답다.
화개까지 왔으면 ‘십리벚꽃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겠다. 면소재지를 벗어나면 곧바로 벚꽃 터널이 이어진다. 화개버스터미널에서 쌍계사 입구까지로 정확히는 약 5㎞ 정도에 이르는 벚나무 가로수길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주민들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지역 유지들이 갹출하여 홍도화 200그루와 벚나무 1200그루를 심었는데, 홍도화 나무는 거의 사라지고 없고 지금의 ‘십리벚꽃길’이 남았다. 이 길은 잠시 걸어도 좋겠다. 벚꽃철에는 인파로 붐비지만 가을에는 한산하다. 벚나무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나무라 십리벚꽃길은 가을에도 아름답다. 이즈음이면 차밭에도 연한 붉은 기가 돈다. 어느 날 불어닥친 커피 열풍으로 녹차의 인기가 시들해서인지 벚꽃길 주변 찻집은 한산했다. 일방통행로인 화개중학교 맞은편에서 ‘작은 미술관 도&효’란 간판이 걸린 아주 작은 상점을 발견하고 찻집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천연염색과 도예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공방이다. 우연히 들른 공방에서 향기로운 차 맛을 보고 나왔다.
▲ 전라남도 광양과 경상남도 화개 땅을 이어주는 남도대교.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던 배는 사라졌지만, 다리가 놓이면서 화개는 여전히 사람과 물자, 물길이 모이는 곳이다.
▲ 화개 십리벚꽃길. 화개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약 5km에 이르는 벚나무 가로수길은 가을이면 활엽수 이파리에 연한 가을물이 든다.
여행 Tip
‘십리벚꽃길’ 벚나무 단풍은 9월 말부터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화개버스터미널에서 쌍계사까지 5㎞ 구간에는 주차 공간이 없다. 화개에서 출발해 쌍계사까지 걸어갔다가 버스를 타고 되돌아 나오면 된다. 버스는 쌍계사 입구에서 화개까지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20회 운행한다.
화개는 민물매운탕과 은어회·튀김, 참게매운탕이 유명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낸다. 15년 된 설송식당(055-883-1866)은 ‘걸갱이’ 은어 낚시꾼인 이명재씨가 운영한다.
화개면소재지 탑리에 모텔이 몇 있고, 쌍계사 입구에 도미토리와 가족실을 갖춘 일리지게스트하우스(010-7503-2270)가 있다. 차와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글·사진] 눌산 여행작가
주간조선 [2474호] 2017. 9. 11 발행
--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74100018&ctcd=C09
'여행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15 / 전남 장흥, 충남 장항 (0) | 2017.11.11 |
---|---|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14 / 부산, 초재골목에서 자갈치까지 (2) | 2017.10.19 |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12 / 강원도 인제·홍천 '삼둔사가리' (2) | 2017.08.27 |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11 / 경남 산청 (0) | 2017.08.01 |
여행이 삶이 된 남자, '누룽지게스트하우스' 표언재 (0) | 2017.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