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신라의 삼국통일 무렵
가잠성을 지키다 순사한 찬덕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김춘추가 하사한 괴산의 옛이름인 괴주(槐州)가
이후 지금의 괴산(槐山)으로 불리게 된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접경지대로서
백제와 신라 고구려 사이에 충돌이 잦았던 곳이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28년(606)에
신라장수 찬덕(讚德)이 가잠성을 지키고 있을 때
백제의 대군이 침입 백여 일을 포위 공격하여
성은 완전히 고립되는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신라에서 여러 번 원군을 보냈으나
그 때마다 번번이 패하게 되고
성안은 식량과 물이 떨어지고 군사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성주인 찬덕이 의롭게 싸우다 죽을 것을 역설하였으나
군사들은 항복하여 목숨을 보존하길 원하였다.
찬덕은 운명이 가까워 온 것을 깨닫고
"너희들은 내가 죽은 후에 항복하라.
나는 죽어 귀신이 되어 백제 놈들을 잡아갈 것이다."라고 외친 뒤
앞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장렬하게 죽었다.
후에 이 소문을 들은 김춘추(金春秋)는
찬덕장군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서
가잠성을 '괴주(槐州)'라 부르게 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괴산(槐山)이라 부른 유래라고 전해진다.
괴산(槐山).
언뜻 듣기에는 괴이한 산이 많은 곳이라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회화나무 괴(槐), 즉 느티나무를 지칭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를 지칭하는 괴부(槐府),
왕궁을 뜻하는 괴신(槐晨),
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승정원을 괴원(槐阮)이라 부른 것 등을 보면
'槐'자는 아무렇게나 쓰여지는 글자가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어느 분야 혹은 인물이나 지명 등
으뜸이 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괴산에는 유독 오래된 느티나무가 많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당산나무가 대부분 느티나무로
괴산의 상징이자 자존심이 되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Film scan
728x90
'마을-오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사리에서 보낸 반나절 (2) | 2008.07.01 |
---|---|
어진 마음 일깨우는 개인산 자락 오지마을 개인동(開仁洞) (0) | 2008.06.02 |
아랫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동강의 오지. 고마루마을 (4) | 2008.05.22 |
동강 주민들의 비상구 정선 뱅뱅이재 (0) | 2008.05.21 |
하늘 아래 꽃밭 '천상의 화원' 곰배령 (10) | 2008.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