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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경찰에 고발하느냐, 기다리느냐.

by 눌산 2008.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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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란에는 520년 된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이 나무는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합니다.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마을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는 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두달 전 일어난 작은 사고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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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마을에 있는 식당에 식사를 하러 온 읍내 아주머니의 승용차가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움직이면서 마을 간판을 받아버렸습니다. 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다행이 다치지 않았고, 승용차도 큰 손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서진 간판이 문제였습니다. 간판은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상태로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두달이 지난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판 제작업소에 제작비를 알아보니 6-70만원 정도랍니다. 마을 주민들은 수차례 독촉하였으나 시간이 흐를 수록 배째라는 식의 답변만 들었다고 합니다.

자, 오늘의 문제는 바로 이 상황에 대한 앞으로의 대처 방안에 대한 논의입니다. 경찰에 고발해서 보상을 받아야 된다는 강경파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읍내 주민이니 좀 더 기다려보자는 온건파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온건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이장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분위기였습니다. 이장님의 합리적인 성격은 21년째 이장직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결정을 하기 보다는 이렇 듯 토론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만약 이 문제가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수도권에 살때 주차문제로 한동네 주민들끼리 주먹다짐까지 벌이던 일을 여러번 목격한 경험도 있기에 오늘의 이 토론은 초보주민인 저에겐 아주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잠시 후면 마을의 사랑방인 당산나무 그늘 아래로 이장님을 비롯한 서너분의 마을 분들이 모이실 겁니다. 그러면 저는 커피를 타서 쟁반에 들고 나가야 합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저는 요즘 커피 심부름하면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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