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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홀로 된 즐거움 <육송정-석포-승부 마을>

by 눌산 2008.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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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일(2005/10/2-11/22)간의 낙동강 도보여행 기록입니다.



오지여행 회원들과의 만남은 늘 행복합니다.
더구나 비동골에서의 시간들은,
긴 여운으로 남지요.
자연이 좋아 찾아 든 사람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인연이 어디 있을까요.
자연이 좋고,
사실, 자연보다 더 좋은 것은 현동 막걸리였습니다....^^


비동골을 나와 현동에서 버스를 타고 육송정으로 가고 있습니다.
걸었던 곳까지 되돌아 가는 길이지요.
"산에 가니껴?"
버스 기사분이 봉화 사투리로 물어옵니다.
"아. 예에...."
산이든 강이든, 다 서로 통하는 법이니 "네"라고 대답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산에 가면 멧돼지 조심 하이소."
며칠 전 밤에 갑자기 뛰어 들어 온 멧돼지와 정면 충돌을 했던 모양입니다.
버스 범퍼가 다 일그러지고, 자칫 잘못했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고 합니다.
"저는 산에가면 멧돼지보다 여자가 더 무섭던데요."
"ㅎㅎㅎ..."
"ㅋㅋㅋ..."
현동에서 육송정은 20분 거립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가 가까워 옵니다.
운전 기사분과의 대화에 잠시 끼었던 여자분도 함께 내리시네요.


배낭을 재정비하고 출정 준비를 합니다.
"석포가시면 함께 가세요."
"전 그냥 걷는 여행 중이라....."
석포까지는 버스가 없어 가족인 듯한 분이 마중을 나온 모양입니다.
버스 안에서 말 몇마디 나눴다고 금방 아는 사이가 되버렸습니다.





다시 걷습니다.
강물 따라 걷는 길, 도로를 따라 걸을 수 밖에 없지만,
한창 흐드러지게 핀 가을 꽃이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덕분에 쉬어가라고요.....















석포 면소재지입니다.


멀리서도 보이는 연기나는 굴뚝은 아연제련소고요.
공장이 문을 연 것은 40년 전이라고 합니다.
주변에서 원료 공급을 해왔지만
인건비도 안나오는 상황이라 아연을 수입해 가공해서
국내는 물론 수출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장 근처에서 어슬렁 거렸더니 말 상대하실 분이 나오시더라구요.
지금의 석포역은 썰렁합니다.
아연 공장을 들고 나는 물건을 실어 나를 뿐,
촌로들의 나들이 길 외에는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석포를 지나면 식사 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두리번 거리다 자장면 집을 찾았습니다.
마땅히 먹을거리도 그렇고, 오랜만에 간자장 맛이 보고 싶어서요.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 자장면 집은 겉보기에도 맛이 있어 보입니다.
간자장이 맛잇는 집은, 그 이름도 거창한, <장풍반점>입니다.


아련제련소를 지나면 승부 마을 가는 길입니다.
더 이상의 길이 없는 막다른 길이지요.
제련소 입구 다리 밑에서 세월을 낚는 노인이 계십니다.
연기나는 굴뚝과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라
몰래 사진 한장 박았습니다.







공장을 지나는 강물은, 그냥 제 생각입니다 만, 물이 탁할 것 같았습니다.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단지 공장을 지나면서 더 빠르게 흘러갑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그렇고,
콘크리트 바닥에 익숙치 못한 발바닥,
힘들지만 찬찬히 살필 수 있는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힘들어 하면서 힘들지 않은 척 할 필요도 없고,
이따금 골짜기가 울릴 만큼 큰소리를 내 지르기도 합니다.
누고 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는,
완벽한 홀로 된 즐거움에 빠져듭니다.


영동선 철로를 떠 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더미 속에 가을색이 물들어 있습니다.
돌단풍도 보이네요.
세상에...!!
저들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낙동강은 흘러 부산 앞바다로 갑니다.
천삼백리, 남한 땅 구석구석을 적시고,
온갖 잡것들 싸그리 몰아 데리고 갑니다.
남겨진 구정물은 이리 튀고 저리 튀며 맑은 세상에 흙탕물을 만들겠지요.
골짜기 외진 구석에서 흘러드는 저 물도 낙동강과 한몸이 됩니다.
탁한 세상 정화시키는데 한 몪 거들겠다고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저 물색이 보이나요.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랍니다.
누군가가 그리워서 목이 매인게 아니랍니다.
좋아서 웁니다.
물색이 너무 이뻐 눈물이 납니다.





















맘껏 해찰을 부리며 걷고 있습니다.
일정이 없으니, 기다려주는 이 없으니 해찰 좀 부린다고 문제될 게 없으니까요.
삼각대가 없으니 큰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사진도 홀로 찍습니다.
거대한 암반 위에 피어 난 산마늘 꽃도 강물 한가운데 홀로 누운 작은 섬도,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송이꾼을 만났습니다.
구경 좀 하자고 했더니 자랑스럽게 비닐 봉지를 내밉니다.
괜찮은 수확인 듯 합니다.
새벽에 올라가 해질무렵에 내려오신 모양입니다.
요즘 시세로 1kg에 2-30만원,
봉화 송이 축제가 끝나면서 가격이 좀 내렸다고 합니다.
함께 차 한잔을 마셨습니다.
회원 분이 건네주신 핫쵸코,
별로 즐기는 차는 아니지만 해질무렵의 스산함을 녹이는데는 그만입니다.
요기도 되고요.

 

영동선은 하루 3-40회 열차가 운행됩니다.
대부분 화물 열차지만 이따금 울리는 기적소리가 듣기에 나쁘진 않습니다.
산자락에 달라붙은 철로와 낙동강,
좁은 콘크리트 길이 이어집니다.
몇해전 태풍 매미와 루사의 영향으로 승부 가는 길은 대부분 파손되었습니다.
길이 끊겨 40일 이상 고립되었던 것이지요.
지금의 길은 그 후 새로 닦은 도로입니다.

 

 

 

 

 


하승부, 마무이.
독특한 마을 이름입니다.
승부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얘기도 됩니다.
고갯마루에 올라 숨을 고르는 중입니다.

 

 

 

 

 









협착(狹窄)한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물줄기가 빠르게 흘러 갑니다.
양 골짝을 울리는 물소리 또한 요란하구요.
세상 모든 움직임이 멈춘 듯합니다.
소리는 멈추고, 물은 그대로 흘러갑니다.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싫어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간입니다.
해질무렵의 고요가 싫습니다.
토담집의 연기나는 굴뚝이라도 만난다면 더 힘이 듭니다.
어서 빨리 잠자리를 찾아야 겠습니다.
바로 코 앞이 승부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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