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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무인지경 20리 길, 아침가리 가을

by 눌산 2008.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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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여행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에 있는 '아침가리'라는 곳입니다.


한자로는 조경동(朝耕洞). 풀어 쓰면 아침가리가 되는데,
높은 산봉우리들에 가려 아침 한나절에만 잠깐 나오는 햇살에 밭을 간다 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산세가 험하고 좁아 한나절이면 밭을 다 갈 수 있다는 뜻도 되겠지요.

아무튼 골짜기 길이는 겁나게 길고, 변변한 농토 하나 없는 좁아 터진 골짜기란 얘깁니다.

오죽하면 앞산 뒷산에 빨래줄을 걸고,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진다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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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문닫은 지 오래된 코딱지만한 분교가 하나 있고, 민가가 두어 채 있습니다.

모두 한 남자 씩, 두 남자가 삽니다.
마을 주민이래야 이 두 남자가 전부지요.
두 남자 모두 원주민은 아닙니다.
사연이야 모르지만, 제가 아침가리를 처음 찾은 20여 년 전 부터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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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습니다.
핸드폰은 있으나 마나하고요.
난방은 군불을 지피고, 밤이 되면 촛불을 켜거나 이따금 여행자들이 들고 오는 가스랜턴으로 불을 밝힙니다.
두 남자에게는 굳이 가스랜턴이 필요없습니다.
어둠에 익숙한 탓에 밝은 빛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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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나면 위 아래 모두 20리 무인지경 골짜기가 펼쳐집니다.
상류는 방태산 구룡덕봉이고, 하류는 내린천 상류 진동계곡과 만납니다.
아침가리 다음의 또 다른 마을을 만나기까지 20리라는 얘기지요.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십번 물을 건너고,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하는 고행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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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산을 넘어 다닙니다.
지금의 주민들 역시 이 산길을 넘어 외부 나들이를 합니다.

하지만 오래전 부터 아침가리 마을 사람들이 걸어다는 던 길은 이 골짜기라고 합니다.
그것은 산을 넘는 것보다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죠.
옛길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습니다.
희미한 흔적 뿐인 이 길의 주인 또한 바뀌었지요.
고행의 길이라지만, 오지를 찾아다니는 마니아들이 이 길의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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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둡고 침침하던 골짜기에 가을이 찾아오면 환한 꽃불이 켜집니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물빛과 총천연색 단풍빛이 어우러진 골짜기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누구나 경악하고 말 것입니다.
너무 아름다우니까요.

경악할 만큼 아름다운, 그 가을이 왔군요.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까 오매불망 간절히 원하던 '아침가리의 가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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