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자락에서 들꽃처럼 살아가는 김명진 곽은숙 부부
뜬금없는 여행을 즐기는 필자는 고속도로 보다 국도를 즐겨 탄다. 더구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도여행의 매력이라면 속도에 연연하지 않고 느긋하게 달릴 수가 있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리고 달리다 보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낄 수가 있어 좋다. 여유로워야 할 여행길을 굳이 빠른 속도로 달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도가 좋은 이유는 또 있다.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 한가로운 시골 정취와 소소한 풍경들을 만날 수가 있다. 이 시대의 화두 중 하나가 ‘느린 삶’이라면 국도는 그런 느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여행길이다. 치악산 자락에서 들꽃과 함께 살아가는 김명진(48) 곽은숙(41) 부부를 만나고 왔다. 자연과 함께 느린 삶을 선택한 부부의 삶은 앞만 보고 달리는 고속도로 같은 도시의 삶과는 정반대인 국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남보다 앞서 선택한 산골생활
만화를 그리고 만화영화를 제작하던 김명진 씨와 국어선생님이었던 그의 부인 곽은숙 씨가 치악산으로 내려 온 것은 14년 전이다. 20대와 30대의 젊은 나이에 안정된 직장과 보장 된 직업을 버린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더구나 두 살 배기 어린 딸과 함께 낯선 산골 생활은 또 다른 도전인 셈이었다.
김명진 곽은숙 부부는 치악산 남쪽자락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성황림 마을에서 ‘들꽃이야기’라는 카페를 운영한다. 중앙고속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통의 편리성 때문인지 성남 골은 원주민보다 외지인의 비율이 더 높다. 펜션과 전원주택들이 드문드문 들어선 성남골은 성황림 마을로도 불린다. 성황림 마을은 구렁이와 꿩의 전설이 담긴 상원사 입구에 위치한 마을로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가 양길에게 군사 5천 명을 지원받아 석남사에서 나라를 세우기 위해 기틀을 마련했는데 바로 그 석남사가 있었던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울창한 성황림이 역사가 오래된 마을임을 말해준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93호로 지정된 총면적 31만2993㎡의 숲으로 중부지방 자연림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숲에는 소나무를 비롯해 야광나무, 가래나무, 피나무, 층층나무, 귀룽나무, 옻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고목들이 살고 있다. 성황림 안에는 서낭신을 모신 성황당이 있다. 주민들은 100년 넘게 제사를 드리며 숲을 보호해 왔다. 요즘도 봄가을 두 번에 걸쳐 제사를 올린다.
부부가 운영하는 ‘들꽃이야기’는 성황림 마을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카페 간판이 걸려 있긴 하지만 낡은 토담집 형태 그대로다. 화전민의 오두막을 손수 수리해서 카페로 활용한 것이다. 나지막한 지붕과 손때 묻은 기둥, 마루마닥까지 그대로다. 집수리에 쓰인 재목은 충남 당진이 고향인 김명진 씨가 어릴 적 살던 고향집에서 뜯어 왔다. 대문을 뜯어다 탁자를 만들고, 폐교에서 교실 바닥재를 뜯어다 마루를 깔았다. 그래서일까. 실내에 들어서면 여느 시골집 안방 분위기가 난다.
“몇 백 년 살집은 아니지만 나와 내 가족이 살집이라는 생각으로 지었죠. 국적불명의 현대식 주택에 비하면 많이 불편하지만 우리 아이들이나 찾아오는 손님들이 좋아해요. 아마도 저처럼 어릴 적 향수에 대한 그리움이겠지요.”
항아리를 세면대로 쓰고, 돌을 깎아 비누 곽으로 만든 김명진 씨의 손재주는 집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흙을 밟을 수 있도록 마당에는 잔디도 깔지 않았다. 징검다리처럼 넓은 돌을 깔아 자연미가 돋보인다. ‘들꽃이야기’는 아직 미완성이다. 김명진 씨는 14년 동안 여전히 돌담을 쌓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완성이란 말에 의아해 하겠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돌담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하기 때문인데, 이유는 또 있다. 이따금 찾아오는 음악가들을 위해 작은 무대를 만들 예정이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주인장의 성품이 느껴진다.
집안뿐만이 아니라 마당 구석구석에는 부부가 심고 가꾸는 들꽃과 산나물로 가득하다. 모두가 우리 땅에서 자라는 토종들로 무려 600여 종에 달한다. 요즘은 으아리와 매발톱 꽃이 한창 피어있고 산나물의 일종인 곰취와 모싯대도 보인다. 부부는 우리 꽃 예찬론자다. 외래종에 비해 요란하지 않아 우리 땅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편안함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계절별로 피고 지는 풀꽃들은 언제가도 활짝 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마당에 있는 풀꽃들 모두가 요리의 재료가 되요. 곰취나 모싯대, 돌나물 같은 경우는 토속적인 음식 맛을 내는데 아주 좋은 재료들이거든요. 산과 들에 있는 것들을 옮겨다 놓은 셈이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는 두 배의 즐거움도 있고요.”
3년 동안 마을 이장 일보며 한글학교 운영
두 살 배기 어린 딸은 이제 중학생이 되어 매일 아침 원주까지 통학을 하고, 치악산 자락에 들어 온 후 태어 난 둘째도 버스를 타고 신림면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다닌다. 자신들의 삶을 택한 부부는 그렇다 치고 아이들이 느끼는 산골 생활은 어떨까. 답은 간단했다. 어려서부터 산과 들, 계곡을 놀이터 삼아 자란 아이들은 들꽃과 나무 박사가 되었다. 친구들에게는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모르는 풀이 없고 모르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보다 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더 좋아하고,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준 오미자차를 더 좋아한다. 그 흔한 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지만 큰 아이는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이번 여름에는 전교생 중에서 단 두 명만 간다는 러시아 숲 탐방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스스로 보고 느낀 결과인 것이다. 국어선생님 출신의 곽은숙 씨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종의 ‘자기주도학습법‘으로 결과를 중요시 하는 이 시대 교육과는 정반대로 아이들을 방치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산골로 내려 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귀촌 성공의 척도가 되는 주민과의 교류도 성공적이었다. 김명진 씨는 몇 해 전 3년 동안 마을 이장 일을 봤다. 주민들에게 이웃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주민과 동화된 삶은 김명진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먼저 주민으로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똑 부러진 성격의 김명진 씨는 3년 동안 이장 일을 보면서 몇 가지 성과도 거뒀다. 그 중 가장 보람으로 느껴지는 일은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학교’ 운영이 그것이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작은 도움이 어르신들의 평생 한을 풀어드린 것이다. 3개월 동안 모두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15명의 어르신들은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또 어르신들의 소원이었던 소풍도 다녀왔고 난생 처음 극장에 모시고 가서 영화도 보여드렸다. 7~80대 어르신들의 소원을 한꺼번에 이루어드린 셈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지난해 83세로 돌아가신 할머니로 교육을 마치는 마지막 날 먼저 가신 할아버지에게 편지 한통을 남겼다. “호호 영감아 당신하고 나하고 만날 적에 나는 가마를 타고 당신은 나귀를 타고 이별 없이 설자더니…….(중략)” 이런 할머니의 편지 내용을 김명진 씨는 지금도 줄줄 외우고 있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어르신들은 자신감을 가지게 됐고 표정도 달라졌다. 한글학교를 마치는 날에는 원주시장과 인근 주민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산골음악회도 열었다. 음악회에서는 한글학교 어르신 15명이 ‘나의 살던 고향’을 불러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김명진 씨는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짓고 가꾸는데 만 신경을 써요. 먼저 주변을 돌아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산에 나무와 풀과 먼저 친해지고 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먼저인데 말입니다.”
산골생활 십 수 년인 필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nulsan.net/
월간 산사랑 7, 8월 호 http://sansarang.kfcm.or.kr
<들꽃이야기>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632번지 T.033-762-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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