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시작 된 산골생활, “잘했다”
경상북도 영양 노루목 김병철 김윤아 부부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예년에 비해 일찍 시작된 더위가 한여름 못지않다. 이런 날에는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 한 사 나흘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오고 싶은 마음이다. 때 마침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경상북도 영양의 어느 오지마을을 향해 달렸다. 산세가 강원도 못지않은 영양은 우리나라에서 교통이 가장 열악한 곳이다. 덕분에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월산 자락 심산유곡에서 흘러 온 청정옥수가 사철 넘쳐흐르는 골짜기에 7년 전 서울에서 귀촌한 젊은 부부가 산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산골생활을 시작 한 김병철(44) 김윤아(39) 부부를 만났다. 그들이 사는 곳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오리리의 ‘노루목’이라 불리는 오지마을이다. 영양읍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태백 방향으로 달리다 일월산 아래 긴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 노루목이다. 시작은 포장된 도로지만 곧바로 비포장도로로 바뀐다. 말이 도로지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길은 좌로 우로 너 댓번은 더 굽어지다 갑자기 너른 땅이 나온다. 그래서 붙여진 지명이 바로 ‘노루목’. 노루의 목처럼 좁은 협곡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당랑 집 한 채가 전부다.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은 보통 3~40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더구나 빈집이 더 많다. 김병철 김윤아 씨 부부의 집 역시 외딴집이다. 도시적인 외모가 이런 산골에 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동안의 산골생활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런 산골에 살 사람이 따로 있나요.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이 자리에 있었어요. 남들처럼 오랜 시간 준비하고 들어온 게 아닙니다. 2006년 가을에 처음 이곳에 온 후 그 다음해 4월 지인이 살고 있는 집에 무작정 들어와 살게 되었으니까요.”
선뜻 이해가 안 되는 말이지만, 부부의 산골생활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셈이다. 가을빛이 물든 10월에 처음 노루목에 왔을 때 부부는 꿈을 꾸는 듯 했다고 했다.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6개월 뒤 이 골짜기의 주인이 된 것이다.
부부의 산골생활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더구나 마을에서 가장 젊은 부부는 평생 산 농사를 지으며 살아 온 원주민 못지않은 산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뒷산이 산나물의 고장 영양에서 가장 질 좋은 산나물의 보고로 알려진 일월산(1,218m)이다 보니 가장 흔한 것이 산나물이라 할 수 있다. 봄이면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을 뜯고, 콩농사와 고추, 들깨 농사를 짓다보니 7년 차 산 생활은 어느 정도 이력이 붙었다 할 수 있겠다.
“주업은 콩농사에요.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인근 태백이나 안동장에 내다 팔아요. 산골은 철마다 나오는 게 달라서 봄에는 산나물을 주로 채취 하는데,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분조나물이고 두릅과 엄나무순, 박쥐나무잎, 오갈피잎 등을 뜯어 장아찌를 담죠. 틈틈이 고추농사를 조금하고 있고요.”
귀농이나 귀촌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 판매인데 부부의 방식은 다르다. 장날 좌판을 펼쳐 놓고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것이다. 젊은 부부가 판매하는 메주를 혹시나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 보았지만,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한다. 이심전심이랄까, 정성껏 농사지은 그 마음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자유와 여유를 즐기며 산다.
“그 흔한 취나물도 모르던 첫해는 마을 주민을 따라 다니면서 배우긴 했지만, 이른 아침 산에 올라 하루 종일 뜯어 온 나물이 대부분 먹을 수 없는 풀이었어요. 그렇게 몇 번 반복 되다보니 하나 둘 배우게 되었죠.”
절박함도, 간절함도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산골생활이 오히려 낯선 환경을 쉽게 적응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 마음먹은 데로 안 되는 일 없다지만, 도시의 삶과는 다른, 나름 여유가 있는 산 생활이니 말이다.
김병철 씨 부부는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결혼도 서울에서 했다. 갈비집을 하면서 장사가 잘 되 분점까지 낼 정도였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마음공부를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한 3년 수행하면서 이런저런 산농사도 배우고 살 생각이었는데, 살다보니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나름 자신이 붙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나물에 대해 배우고, 농사도 배웠다. 메주와 장 담그는 법도 배웠고, 소문 난 사찰음식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장아찌 만드는 법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간 지난 7년을 되돌아보면 “어디에 사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더란 얘기다. 처음부터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착과 경쟁 속에서 살았던 도시생활에서 벗어 난 해방감도 느꼈으리라.
처음에는 농사에 대한 경험이 없어 고생도 많았다. 콩농사만 해도 그렇다. 똑 같은 땅에서 남들은 보통 열다섯 가마씩 수확하는데, 부부의 수확량은 고작 한 가마인 적도 있었다.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생활의 변화가 왔다. 도시나들이도 줄이고, 농사일에 매달리면서 차츰 수확량이 늘었다. 콩농사를 주로 하면서 고추는 반으로 줄였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처음 3년은 농사를 지어 버는 돈은 없고, 바깥나들이를 자주하다보니 가져 온 돈만 쓰게 되더라고요. 나름 생활고도 겪었죠. 지금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가지 않아요. 가끔은 수다 떨 친구가 없어 심심하긴 하지만…….하하”
부부의 소박한 삶은 밥상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이 산에서 나는 것들이다. 김윤아 씨는 7년간의 노루목 생활에서 지난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한 너무 많은 것들을 겪었다. 하지만 특별히 부족하거나 아쉬움 점은 없다고 했다. 그때그때 채워지더라는 것이다.
부부의 가장 큰 수입원인 메주는 구정 이후 한 달 간이 가장 바쁘다. 콩을 삶고, 메주를 띄우는 일은 말 그대로 정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메주를 띄우기 위해 황토방도 하나 만들었다. 흙냄새 폴폴 나는 황토방은 이따금 찾아오는 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이 순간, 부부는 편안하다. 틀에 박힌 도시생활과는 정반대인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며 산다. 이제는 서울톨게이트에 줄지어 선 자동차 행렬을 보면 숨이 막힌다. “잘했다”. 부부는 노루묵에 오길 잘했다고 서로를 위로하며 산다. 그들의 마음은 스스로 농부이기를 원하며 만든 블러그 ‘농부김씨’ 프로필에서 느낄 수 있다. “산은 곧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속이다.”라는 법정스님의 글이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농부김씨' 블러그 http://moro0792.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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