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비봉마을 첩첩산중에서 찻사발 빗는 도예가
장갑용, 김춘화 부부
섬진강과 보성강, 두 강이 만나는 전라남도 곡성 압록마을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보성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길은 사철 여행자들로 봄비는 섬진강 쪽 17번 국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강 한가운데 수초가 자라고, 군데군데 모래톱이 자리 잡았다. 참 촌스러운 풍경이다. 생각해 보니 옛날에는 강의 모습이 다 이랬다. 보성강뿐만이 아니라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강마을 풍경 또한 오래전 모습 그대로다. 강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산골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협착한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강이, 그나마 숨통 역할을 할 뿐이다.
이색적인 집 짓고 삶의 터전 옮겨 온 부부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유봉리 비봉마을은 ‘골짝나라‘ 곡성에서도 오지로 소문 난 곳이다. 보성강 변에서 마을까지는 2km, 다시 비포장도로를 따라 골짜기 깊숙이 2km를 더 들어가야 오늘의 목적지다. 강원도 첩첩산중도 아니고 산길 4km가 넘는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도예가 장갑용(44), 김춘화(43) 부부는 3년 전 비봉마을 뒷산 중터라 불리는 이곳에 새 집을 짓고 생활의 터전을 옮겨 왔다.
궁금했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깊은 골짜기로 들어 온 사연이며,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었는지.
“7년 전에 이 땅을 구입하고, 3년 전에 새 집을 지었어요. 땅을 구입할 당시에는 변변한 길도, 전기도 없는 외딴 섬과도 같은 곳이었죠. 집을 지으면서 전기는 발전기를 돌려썼어요. 이런 터를 찾아 1년 반을 돌아다니다 만났기 때문에 힘은 들었지만, 열악한 환경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작품 활동을 위한 고요한 공간이 필요했다. 장작가마에서 나는 연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외딴 골짜기를 찾았다. 환경은 열악하더라도 오롯이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했다. 바로 그런 장소가 지금의 중터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마음에 끌렸다. 환경은 극복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일단 일부터 저질렀다. 애초에 좋은 터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명당이라는 것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 둘 빈 공간을 채워나가면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면 되는 것이죠. 즉, 좋은 터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처음 저희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터가 좋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야 자리를 잡아 이렇지 처음에는 엉망이었거든요.”
집을 짓기 전에는 수 십 년 묵은 전답에 아름드리 잡목이 우거진, 그야말로 ‘사람 살 데’가 아니었다. 손수 터를 닦아 모두 세 채의 집을 지었다. 처음 작업실과 살림집을 지었고, 마지막으로 황토방을 지었다. 황토방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것으로 구들방에 흙을 쌓아 올렸다. 작업실 옆에는 산벚나무도 한 그루 옮겨다 심었다. 꽃비가 내리는 봄날 나무아래 앉아 차를 마시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세 건물 모두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작업실은 우주선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도자기를 형상화 한 것 같기도 하다. 서쪽으로는 동그란 창문도 냈다. 이유는 달빛이 방안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다. 화장실 또한 도자기를 형상화해서 재래식으로 만들었다. 거름으로 만들어 밭에 뿌리기 위해서다. 큰 농사는 아니지만, 유기농법을 이용한 농사도 짓고 있다. 부부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장갑용 씨는 나름대로 멋을 좀 부려보았다고 했다. 대신 흙을 소재로 해서 그런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흙으로 이야기를 빗는다
장갑용 씨는 가까운 구례가 고향이다. 대학에서 산업자기를 공부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차를 좋아하는 선배를 만나면서 찻사발, 즉 다기에 관심을 같게 되었다고 한다. 차와 어우러지면서 빛을 발하는 찻사발의 매력에 푹 빠져 문경까지 찾아 갔다. 그곳에서 찻사발을 공부하고 고향 근처에 터를 잡기 위해 찾아 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지금의 중터 골짜기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중터라 불리는 골짜기입니다.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곳이래요. 제가 하는 작업과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이곳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흙입니다.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는 흙이 가장 중요한데, 곡성 일대에서 나는 흙이 참 독특해요. 매끈하고 반듯한 도자기보다는 투박하면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에 제 작품의 소재로는 그만이죠.”
장갑용 씨의 작품 주제는 찻사발이다. 사발만큼 다양한 모양과 색을 갖고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다. 도자기의 시작과 끝 또한 사발이라고 했다.
“도자기를 빗는 일은 흙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입니다. 다양한 흙과 유약, 불의 온도 등을 이용해 여러 모양을 만들어 내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죠. 저는 그 이야기를 표현하고, 사람들은 다기를 사용해 차를 마시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도예가의 손으로 빗은 찻사발이지만 결국은 차를 마시는 사람의 손길을 거치며 작품이 완성 된다는 얘기다.
땅은 결혼 전 구입했다. 그리고 그 무렵 결혼했지만, 그 전에 지금의 부인 김춘화 씨에게 이 땅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런 산골에서 함께 살 수 있는지……. 김춘화 씨는 두려웠지만, 남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서웠죠. 말이 집이지 산이나 다름없었거든요. 지난 3년 동안 나무도 심고, 텃밭도 가꾸면서 자리가 잡힌거에요. 봄이면 온갖 꽃이 피고, 연둣빛 새 잎이 돋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잘 왔구나 생각해요.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도 느껴 봤지만,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김춘화 씨도 최근 도예와 다도 공부를 마쳤다. 무엇보다 남편의 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요즘은 찾아오는 손님들과 차를 나누며 산골생활 재미에 푹 빠져 산다. 가끔 찾아오는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이런 산골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오히려 걱정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김춘화 씨는 한마디 한다.
“한번 살아 봐. 살만 해"라고.
누구나 꿈꾸는 자연 속에서의 삶이지만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단 몇 프로도 되지 않는다. 장갑용, 김춘화 부부처럼 과감히 도전하고 실천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이다. 사실 도시 생활이 그렇다. 갖고 있는데 또 갖게 만드는, 일종의 비현실 세계라 할 수 있다. 문득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떠나는 것이 아닐까.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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