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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산이 좋아 산에 사네] 무주 ‘붉은치마산’ 아래 흙집 지은 김창수 송공순 부부

by 눌산 201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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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붉은치마산아래 흙집 지은 김창수 송공순 부부

무주의 하늘은 붉다. 유독 붉다. 그 이유는 적상산 때문이다. 붉을 ()’ 치마 ()’ ()’. ‘붉은 치마를 두룬 산이란 뜻의 적상산은 거대한 절벽이 사방을 두르고 있는 무주의 진산으로 무주 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산이 바로 이 적상산이다. 특히 해질 무렵이면 산 전체가 붉게 물드는 장관을 연출한다. 가을 단풍을 빗대 붙여진 산 이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해질 무렵 붉게 물든 절벽이 마치 여인의 치마를 연상케 한 다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산 아래 꼬박 1년이 걸려 흙집을 지은 부부가 있다. 김창수(54) 송공순(54) 부부가 그들이다. 가을빛이 가장 아름다웠던 지난 10월에 입주하고 한창 겨울준비에 여념이 없는 부부를 만나고 왔다.



내 손으로 지은 집이 더 애착이 간다.

필자는 이 코너를 연재하면서 도시를 떠나 산으로 들어 간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김창수 송공순 부부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도 있었고, 십 수 년 생활한 이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왜 산에 사는가!”이다. 물론 좋아서 살겠지만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오랜 꿈이었다는 것이다. 하고 많은 꿈 중에 왜 하필 산골생활을 꿈꾸는 것일까. 이 부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부부는 돈 버는 재주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도시보다는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게 더 중요했죠.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산골생활은 우리 부부의 오랜 꿈이었기에 미련 없이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들어오게 된 거죠.”

김창수 씨의 말에서 오랜 시간 간절히 원했던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산골에 돈 벌기 위해 들어오진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쓰기위해 들어오는 사람도 없다. 단지, 산 생활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의미에서 자연은, 어머니의 품 안 같은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도시의 번잡함과는 다른,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자연의 힘이 아닐까.

김창수 씨와 그의 아내 송공순 씨는 동갑네기다. 그래서 그런지 부부라기보다는 친구사이 같다. 일을 할 때도 늘 함께 한다. 김창수 씨가 작업을 하면 송공순 씨는 옆에서 도구를 들어 준다. 둘은 부부이전에 가장 좋은 파트너다. 부부의 꿈 또한 언제나 한결 같았다. 아이들이 크고 나면 꼭 산골에 가서 살겠다는 꿈이었다. 예정보다 빨리 11녀의 자녀들이 취업을 하고, 집을 떠나게 되어 계획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무주에 정착하기 전에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초등학생 대상의 학원을 운영했었다. 그때도 부부는 늘 함께였다. 그래서 그런지 부부는 닮았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자연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틈나는 대로 여행을 했다. 남들처럼 리조트에서 자고,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들을 찾아 다녔다. 언젠가는 살게 될 산골마을이 부부의 주 여행지였다. 겨울이면 스키를 즐겨 탔던 부부는 자주 지나다녔던 무주지역을 점찍어 뒀다. 오가는 길에 인근 진안과 장수 지역도 자주 찾았다. 그러다 눈에 띈 곳이 바로 무주 적상산 아래 서창마을이다. 수년을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언제인가 부터는 고향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정착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예상했던 것 보다 땅값이 비싸 망설이기도 했지만, 건축비를 절감할 수 있는 계획을 갖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무주군에서 분양하는 땅을 계약하고, 설계단계부터 거의 모든 일을 부부가 직접 했다. 보통은 건축업자를 선정하고 건축을 일괄 맡기는 게 상식이지만, 부부는 손수 집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그렇다고 건축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살 집은 내 손으로 짓는다는 생각 하나 뿐.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 만류도 있었지만, 좋은 집 보다는 편안한 집을 지을 생각이었기에 가능했다.

처음 계획은 100% 우리 부부의 손으로 집을 짓는 것이었죠. 하지만 건축에는 전혀 문외한이다 보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흙벽돌을 쌓는 골조와 전기나 수도 같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전문가의 힘을 빌렸죠. 나머지는 거의 제가 다 했어요. 아내는 옆에서 거들어 주는 정도였지만, 아마 저 혼자였다면 꿈도 못 꿨을 겁니다.”

김창수 씨는 아내에게 공을 돌렸다. 보조 역할이었지만, 최고의 팀웍을 자랑하는 동지였다. 함께한다는 자체로 힘이 되었고, 아직 완성 된 것은 아니지만 계획대로 새 집에서 첫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우리 부부가 살 집인데, 내 손으로 한번 지어보고 싶었어요.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내 손으로 지으면 더 애착이 가잖아요. 다행이었던 것은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평생 처음 접해보는 일이었다. 손수 흙을 바르고, 나무를 잘라 붙여 다락방을 만들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만 했던 부부의 손은 이미 투박해졌다. 지칠 법도 한데, 처음 계획을 세웠던 그 설렘이 여전하다.

모든 게 새로운 세상이잖아요. 평생 꿈만 꾸고 살다가 이제 그 꿈을 이루었으니까요. 지난 1년 간 너무 힘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원했던 일이기에 여전히 신나고 즐거운 거죠.”

산골에서 첫 겨울을 맞는 소감을 얘기하는 송공순 씨는 신이 난 아이 같다.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라 어수선하기도 하지만, 봄이 오면 또 할 일이 있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산나물을 뜯고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집

사실 산골생활은 김창수 씨 보다 아내 송공순 씨가 더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중년에 들어서면 누구나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대부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가 부부의 이견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김창수 송공순 부부의 시작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손수 집을 짓겠다는 이가 있다면 부부는 어떤 생각을 할까. 너무 힘들기 때문에 만류라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적극 권해주고 싶어요. 물론 힘들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만족감이 훨씬 크니까요. 무엇보다 용기라고 생각하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어요. 건축업자에게 일괄 맡겨서 짓는 것에 비해 3~40% 이상은 절약했으니까요.”

부부에게 이 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구들방이다. 아담한 크기의 방 안에는 다락방도 하나 만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고 한다. 창문을 열면 벚나무 숲이 보이고, 수령이 520년이나 된 마을 당산나무가 보인다. 창문의 위치 또한 벚나무 숲과 당산나무를 볼 수 있게 낮게 달았다. 자연스럽게 숲과 당산나무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굳이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를 활용한 지혜라 할 수 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집을 지으면서 뒤란의 숲은 시원한 나뭇그늘을 만들어줬다. 입주 할 무렵에는 눈부신 가을빛을 선사했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지금은, 새 봄의 희망을 주고 있다. 벌써부터 부부는 시원한 여름을 이 다락방에서 보낼 상상을 하고 있다.



부부는 자연에 어울리는 집을 짓고 싶었다. 근사한 테라스를 갖춘 우아한 집이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쓰기 편안 집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TV도 없애 버렸다. 대신 라디오를 듣는다. 한가한 시간에는 책을 본다. 굳이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고 했다. 도시에서는 습관처럼 TV를 켜게 되지만, 산골에서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넓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과 숲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인 것이다.

지인이 집들이 선물로 TV를 사 준다기에 냉장고를 사 달라고 했어요. 필수품처럼 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TV가 없다보니 뭔가 허전하긴 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지 오히려 좋아요. 대신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고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죠.”

부부는 아랫마을에 300평의 농지를 임대해 놨다. 농사 경험은 전혀 없지만, 봄이 오면 이 곳 지형에 맞는 오미자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그 실패를 통한 경험이 더 크다는 생각에서다.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소망이 있다. 도시 아이들을 위한 산촌유학이다. 도시를 떠나는 것에 대한 미련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던 부부는 도시 아이들이 자연과 벗하며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일단 집짓기가 마무리되고 안정이 되면 시작 해 볼 생각이다.

뒤란 당산나무가 연둣빛으로 물들 쯤이면 아마도 김창수 송공순 부부는 오미자 밭을 가꾸고 있지 않을까. 더불어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 사진>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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