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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영동 오지마을 자계리에 터 잡은 연극쟁이 박창호 박연숙 부부

by 눌산 201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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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에 사네] 영동 오지마을 자계리에 터 잡은 연극쟁이 박창호 박연숙 부부

유난히 긴 여름이었다. 유래 없는 가뭄과 35도를 웃돌았던 폭염은 온 산천을 메마르게 만들었다. 때 늦은 장마로 허기진 골짜기를 채우긴 했으나, 이런 이상기온으로 인한 피해는 커 보인다. 사과는 찬바람이 불기도 전에 발갛게 익어버렸고, 호두알은 채 영글기도 전에 후두둑 떨어져 버린다. 하늘의 뜻이라고는 하지만 한여름 땡볕 아래 힘들게 일한 농부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오지마을에서 문화예술의 중심공간이 된 자계리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 예나 지금이나 첩첩산중이다. 오지로 소문 난 덕에 여전히 개발의 손길은 미치지 않았고, 찾아오는 외지인도 없는 곳이다. 논밭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호두나 감, 사과농사가 주업. 이 마을에 사람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옛 용화초등학교 자계분교 터에 예술촌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대전에서 극단 터를 운영하던 박창호 대표는 지난 2002년 폐교되어 방치 된 자계분교를 임대해 자계예술촌이라는 이름의 문화예술 공간을 열었다. 오지마을과 연극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대도시 문화로 인식 된 연극 공간이 이 첩첩산중 오지마을까지 찾아 든 이유가 뭘까.

 

우리 같은 연극쟁이들은 가난하잖아요. 대부분 그렇지만, 우리 극단도 지하에 있었는데, 여름이면 빗물이 스며들어 눅눅하고 더우니까 잠시 쉬는 시간이면 단원들이 삼삼오오 밖에 나와 햇볕을 쬐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이 참 안타깝더라고요. 더구나 극단 1층에 정육점이 있었는데, 매일 고기 삶는 냄새가 지하로 스며들어 고역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슬픈 일이죠. 그래서 안 되겠구나. 다른 건 몰라도 햇빛이라도 실컷 볼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자 했죠. 가난한 연극쟁이다보니 당시에는 저렴하게 임대 할 수 있는 이런 오지마을의 폐교 된 학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처음부터 산골이 좋아서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햇볕 마음껏 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 하나였다. 농사를 지어 본 경험도 없었고,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연극뿐이었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지만, 주민들과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도 연극이었다. 지금은 텃밭 수준의 농사만 짓고 있지만 3년 정도는 1천 평의 땅을 임대해 콩농사도 지었다. 물론 완전 실패를 보았지만, 산골에 살면서 농사는 기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던 것이나 해~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녀~”

 

연극쟁이를 보는 동네 분들은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다. 농사는 우리가 지을 테니 너희들은 연극이나 하라는 얘기다. 처음 7년 간 했던 상설공연과 9년 째 하고 있는 산골공연 예술잔치또한 주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다.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주민들은 발 벗고 나선다. 첫날은 관객들에게 국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행사기간 내내 부침개 등 먹거리 장터도 운영한다.

 

, 좋지. 사람구경하기 힘든 이 산골에 이렇게 북적거리니 얼마나 좋아. 우리 같은 촌사람들이 언제 연극 구경하것어. 우리가 고맙지

 

국수를 말던 어르신은 마냥 좋으신 모양이다. 3일 동안이지만, 고요하던 산골마을에서 열리는 잔치를 즐기신다고 했다.



띠 동갑 부부의 연극인생

 

자계예술촌 대표는 박창호(50) 대표의 부인 박연숙(38) 씨가 맞고 있다. 생뚱맞게도 두 사람은 연극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지질학과와 심리학과 출신이다. 박창호 대표는 동아리에서 탈춤을 추다 이 길로 들어섰다. 심리학과 출신의 박연숙 대표 역시 사이코드라마학회 활동을 하면서 연극을 접하게 됐는데, 연극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극단 터를 찾아가 먼저 활동하던 동문들을 만나게 되면서 연극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것. 타고 난 연극쟁이 기질 덕분에 그는 대학원 공부도 중단하고 이 길을 계속 걷고 있다.

 

박창호 박연숙 씨가 부부의 연을 맺은 건 6년 전이다. 극단 터와 자계예술촌 대표를 함께 맞으면서 둘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무려 12년의 나이차를 극복한 것 역시 연극었다.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 온 덕분에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안다.

 

산골에 살고는 있지만, 산을 몰랐어요. 산에 가면 먹을거리가 널렸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죠. 그만큼 연극 하나에 매달렸었는데, 이제는 산과 좀 친해지고 싶어요. 그건 산에 대한 예의잖아요.”

 

주민들이 산에서 나물과 버섯을 채취하는 모습을 보고 박연숙 씨는 좀 더 자연과 친숙해지고 싶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자연 속에서 연극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사람과 자연은 하나라는 것을 산을 통해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다.

 

창작활동은 도시보다는 이런 산골이 훨씬 좋아요. 풍물은 소음이 커서 도시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민원이 많거든요. 하지만 이 넓은 자연 속에서는 소음이라기보다는 하나가 되는 느낌이에요.”

 

박연숙 씨는 무엇보다 관객 수준이 다르다고 했다.

 

대학로보다 오히려 관객 수준이 높을 걸요. 공연을 시작하면 관객들의 호흡이 느껴지거든요.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아는데, 호응도와 태도가 달라요. 훨씬 더 진지하죠. 이유는 아마도 먼 길을 일부러 달려 온 것도 있지만, 오직 산과 하늘과 바람뿐인 이 공간이 주는 의미가 큰 거 같아요.”

 

올해 아홉 번째 열린 산골공연 예술잔치의 타이틀은 다시 촌스러움으로이다. 그 이유에 대해 박창호 대표는 회귀라는 표현을 했다.

뒤돌아보면 좋은 것이 많잖아요. 앞만 보고 간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죠. 잊혀진, 기억 속의 것들을 끄집어내는 의미에요. ,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반대적인 의미로 근원적, 본질적 의미에 대한 충실함이죠.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지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붙여 봤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9년 째 행사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매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관객들 때문이었다. 매년 적자를 보고 있지만, 공연비도 없이 교통비만 받고도 흔쾌히 달려와 주는 초청극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연비는 후불 자율관람제다. 관객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보고 느낀 만큼 내고 가시라는 의미에서다. 3일 동안 1천 명 정도가 찾아오지만 관객들이 내고 가는 공연비는 개인 후원금 포함해서 2백만 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금액이지만, 앞으로도 이 후불 관람제를 유지할 생각이다.




공연장에서 만난 관객 김혜정 씨는 소문 듣고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왔어요. 산골에서 열리는 예술잔치의 지향점이 촌스러움이라니? 처음에는 사실 의아해 했는데, 공연을 보면서 왜 이 잔치의 타이틀이 다시 촌스러움으로인지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별빛만으로도 조명이 될 것 같은 자연 그대로의 무대와 문화 공연을 접하기 힘든 산골 오지마을 분들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밤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공연 내내 열띤 호응을 해 주었던 자계리 주민들을 보면서 다시 촌스러움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주최 측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답니다.”

 

김혜정 씨처럼 여름밤을 자계리에서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팬들이 많다. 가까운 무주와 영동, 대전뿐만이 아니라 멀리 서울에서도 온다. 부부는 그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보여주는 연극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며 느낄 수 있는 연극을 추구하는 것도 그 이유다.

 

앞으로의 계획 또한 매년 여름 열리는 산골공연잔치외에 3년 째 중단 된 상설공연도 재가동할 예정이다. 물론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지만, 멀리서 찾아오는 관객을 외면 할 수 없다. 박창호 박연숙 부부에게 연극은 인생의 전부였다.

 

 <, 사진>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자계예술촌 홈페이지 www.jagyeart.net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에 기고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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