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오지마을 북동리에 푹 빠진 김형구 채희정 부부
강원도 정선. 참 골 깊은 골짜기가 많은 곳이다. 이런 정선 땅에 일찌감치 터 잡고 들어앉은 지인들이 더러 있다. 들어오기도 힘들고 나가기도 힘든 골짜기 하나 씩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해서, 자칭 ‘똬리파’라 부르는 그들은 대부분 정선에서도 소문 난 골짜기 하나 씩 차지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이도 있고, 목수도 있다. 하릴없이 산을 오르내리는 이도 있고, 철마다 산에서 나는 산나물이나 버섯류를 채취해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별 욕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골짜기 하나씩 차지했으니, 더 이상 뭐 바랄게 있냐는 듯.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여유가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70년 된 목조건물을 갤러리로 꾸민 김형구 작가
정선에는 유독 도시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많다. 산세가 깊은 탓도 있겠지만, 옛날 정선군수가 두 번 울었다는 얘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부임하는 길이 너무 험해 서러워서 한번 울고, 다음 임지로 떠날 때는 정선 사람들의 인심에 반해 또 한번 울었다는 얘기다. 산 좋고 물 좋은, 더구나 인심 좋은 정선 땅에 두 해 전 정착한 또 다른 부부가 있다. 화가 김형구(53) 채희정(49) 부부가 그들이다.
부부가 살고 있는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북동리는 정선에서도 알아주는 오지마을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살았다. 일제강점기 무렵, 금광이 있어 노다지의 꿈을 안고 찾아 들어 온 이들로 북적거렸던 호시절이 있었다. 상주인구가 많아 매일같이 상설 시장이 열렸고, 근동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 넓은 신작로도 가장 먼저 닦였고, 이 깊은 골짜기에 기생집이 있어 정선의 내로라하는 한량들도 북동리로 몰려들었으니 감히 상상조차하기 힘든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오지마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형구 작가와 그의 부인 채희정 씨는 지난 2010년에 폐교 된 북동 분교를 꾸며 갤러리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떠나면서 텅 비었던 학교는 다시 활력이 넘친다. 건축한 지 70년이 넘은 북동 분교는 요즘 보기 드문 목조건물이다. 이 낡은 건물 안에 김형구 작가의 갤러리와 작업실이 있다. 우연히 들른 외지인들은 이 갤러리를 보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첩첩산중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은 누구도 생각 못했을 게다. 도시인들은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마을 주민들이 손수 가꾸고 기른 농산물을 사간다. 부부는 마을 주민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게 뭘까 생각하다 도시와 북동리를 연결하는 회원을 모집했다. 년 20만원의 회비를 받는 회원이 30명을 넘었다. 회원들에게는 철마다 나는 북동리의 농산물을 보낸다. 도농교류인 셈이다.
북동리에 정착하기 전까지 김형구 작가의 작업공간은 주로 인천이었다. 그 때는 인물을 그렸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들, 슬픔과 기쁨 등을 표출해 내는 작업이었다면 지금은 자연을 화폭에 담는다. 눈만 뜨면 보이는 앞산과 사철 제각각의 모습을 뽐내는 나무가 요즘 그의 작업 모티브다.
“제 작업 모티브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아요. 도시와 산골의 차이라 할 수 있죠. 바로 보이는 저 앞산을 마을 주민들은 ‘매미똥구멍산’이라고 하는데요. 아마 그렇게 보여서 붙여진 산 이름 같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거대한 알프스의 설산으로 보이기도 해요. 저 산이 요즘 제가 그리는 작품의 주제입니다.”
부부는 틈틈이 농사도 짓는다. 전혀 경험은 없지만 함께 들어 온 김형구 씨의 어머니와 함께 하나 둘 배우고 있다. 또 마을 주민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도와드리고 산골생활을 배우고 있다. 직접 해보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르다는 생각에서다. 처음에는 주민들도 의아해 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특히 마을 이장님은 수시로 찾아와 작은 것 하나부터 가르쳐주신다고. 지난 가을에는 송이도 난생 처음으로 따봤다. 부모 자식 간에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송이 밭을 이장님은 부부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아마도 믿음이 아닐까. 주민으로 인정하는 의미일 게다.
부부의 손길이 닿은 덕분에 마을까지 환해졌다. 여전히 진행중이라고는 하지만 부부가 마을에 정착 한 이후 무채색의 마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손수 그린 그림으로 치장을 하고, 설치미술 작품들로 마을 곳곳을 채웠다. 잊혀져가는 오지마을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는 작업을 하고 있는 부부는 마을의 역사나 다름없는 금광을 활용한 체험마을 사업도 하고 있다. 사금채취체험이 그것. 마을 어르신들의 자문을 얻어 오래전 쓰던 사금채취 도구를 만들고 체험 장을 꾸몄다.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한 도시인들에게 당시 모습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먼저 주민이 되고 싶었어요, 마을의 역사를 알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구석구석 다니면서 남은 흔적들을 찾았죠. 그게 이제 막 시작하는 사금체취 체험입니다. 더구나 사금채취는 마을의 문화잖아요. 금 때문에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세대가 떠나고 나면 누구도 재현 할 수 없기에 시작한 겁니다.”
북동리의 사금체취체험 사업은 정선군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교 시설을 지원해주고, 사금체취 시설을 지어 방문객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옛 문화를 지키는 일이기에 민관이 하나가 된 것이다.
산에서 찾은 행복, 하루하루가 새롭다
김형구 작가와 그의 부인 채희정 씨는 인천과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이런 산골 생활이 처음이다. 하지만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미 산골 생활에 푹 빠졌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의 산야를 누볐던 김형구 씨와 매주 산을 오르내렸던 채희정 씨는 굳이 산골생활을 꿈꾸진 않았어도 이미 산에 익숙해져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 꿈을 꾸고 전국의 폐교를 뒤지기 시작해서 찾아 낸 이 북동 분교를 처음 본 순간, 부부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잡초만 무성한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에 우리가 살 곳이다라는 것을 느꼈어요. 1년 이상 비어 있던 학교지만, 왠지 푸근하게 느껴졌거든요. 곧바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들어와 버렸죠.”
이런걸 인연이라고 하나 보다. 많은 곳을 찾아다녔지만 맘에 드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북동리는 그들의 눈에 쏙 들어왔다. 첩첩이 둘러싸인 산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북동천이 편안해 보였다. 시골생활 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김형구 씨의 어머니가 계셨기에 학교 주변 빈 땅에 농사도 짓고 있다. 배추, 상추 같은 푸성귀를 비롯해서 고추농사도 짓는다. 올 가을부터는 도시의 지인들에게 작은 정성이지만 손수 기른 농산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도시와 산골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서로 나누는 거지요. 도시에 살 때는 몰랐는데, 힘들게 기른 농산물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농사일은 봄부터 가을까지 쉴 틈이 없거든요. 그렇게 가꾼 것을 나누는 게 아깝잖아요.ㅎㅎ 하지만 지금은 보람을 느껴요. 정성이 담긴 선물이잖아요.”
채희정 씨는 요즘 효소와 장아찌 담그는 일에 관심이 많다. 뭐랄까, 자신감에 탄력이 붙은 것이다. 처음에는 잡초 뽑는 일이 너무 힘들었지만, 올 가을 수확한 고추를 보면서 스스로 대견함과 함께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즐겁다.
“도시 친구들이 가끔 전화를 하면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해 해요. 이런 산골에서 심심하지 않냐 는 것이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루하루가 새롭고, 바쁘기도 하고, 즐거운걸요. 도시 친구들은 절대 느낄 수 없는 행복이죠.”
도시를 떠나 산으로 들어간 이들에게 “산이 왜 좋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냥” 좋다고 대답한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 사는 이유가 뭐 필요하냐는 것이다. 민망할 정도로 간단한 이 대답은 필자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얘기다. 짧은 산골생활이지만 부부는 이미 자연이 주는 삶의 행복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블러그 http://blog.naver.com/artistkim60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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