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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산이 좋아 산에 사네] 지리산을 사랑한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한 여자

by 눌산 201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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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사랑한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한 여자

양민호 조승희 부부

 

산 깨나 타는 사람이라면 지리산에 열광한다. 주말이면 구례구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새벽 동이 트기 전 노고단에 오른다. 12, 혹은 23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고, 능선을 오르내린다. 똑같은 코스지만 매번 다른 느낌을 주는 산이 바로 지리산이라고들 말한다. 이런 지리산 마니아들이라면 으레 꿈을 꾼다. 지리산 자락에 터 잡고 사는 꿈을. 그렇게 꿈을 이룬 가족이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의 드넓은 악양 평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상신흥 마을의 양민호(47) 조승희(39) 부부가 그들이다.




 

산골생활의 꿈을 현실로 만든 부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 땅을 밟아 본 사람이라면 한결같은 소리를 한다. “이런데서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네.” 라고. 그 만큼 편안한 지형이 사람을 불러 모은다. 그 이유는 섬진강과 지리산에 있다.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형제봉(1,115m)을 중심으로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악양은 거지가 1년간 한 집에서 한 끼씩만 얻어먹어도 여섯 집이 남는다말이 전해져 오는, 예로부터 풍요로운 땅으로 알려져 있다. 근동에서는 가장 넓은 악양 평야가 있고, 산자락에는 대봉감과 매실나무가 가득하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형 덕분에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봉감은 최상품 대접을 받는다.

 

양민호 조승희 부부 역시 대봉감과 매실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농사가 목적은 아니었다. 산을 좀 안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라 산에서 나는 산나물이나 약초 캐는 일로 생계수단을 삼을 생각이었다. 지리산만 300회 이상 올랐고, 약초동호회 활동도 3~4년 하면서 미리 공부를 했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2005년에 내려와 악양의 빈집을 빌려 살면서 계획대로 약초 캐는 일을 시작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대신 악양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대봉감과 매실 농사에 관심을 가졌다. 내 땅 한 평 없던 터라 일당을 받으면서 일했다. 일당 대신 농산물을 받기도 했고, 도시의 지인들을 통해 판매를 했다. 일 한 만큼의 대가를 받았기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농사일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대봉감과 매실농사만 3천 평 정도 짓는다. 이론보다는 실전을 통해 경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지리산 생활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땅을 사고 집을 짓지만, 양민호 조승희 부부는 빈집을 빌려 3년을 살았다. 경험을 통해 배우겠다는 일념이었다. 경험을 위한 과정이었지만 문풍지 하나로 겨울을 나야했던 남의 집 생활이 가장 힘들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는 틈나는 대로 집 짓는 일을 배웠다. 막노동이었지만, 이왕이면 언젠가 짓게 될 한옥에 관심이 많았기에 나무 다루는 일을 주로 했다. 지금 민박채로 쓰고 있는 8평짜리 한옥이 바로 양민호 씨의 작품이다. 처음 이 집을 지어 이사를 한 후 주변의 빈 땅을 임대해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내 손으로 처음 집을 지었다는 뿌듯함과 불안한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있었으니까요. 처음 지리산으로 내려올 때에 비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기에 아이들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농사철이 끝난 후 본채 옆에 또 하나의 한옥을 지었고, 지금의 살림집을 지었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봉감과 매실농사는 자리를 잡았고, 인터넷을 통해 판매도 한다. 대봉감은 주로 곶감으로 팔려 나간다. 매실은 자연 숙성을 시켜 매실 엑기스를 만들고, 틈나는 대로 산과 들에서 채취한 산야초를 발효시켜 효소로 만들어 판다. 처음 살던 한옥은 민박을 치면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리산을 사랑한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한 여자

 

지리산을 사랑하고 남은 사랑을 당신에게 주겠소라고 할 만큼 양민호 씨는 지리산에 미친 남자다. 그의 아내 조승희 역시 남편 못지않은 산사람이다. 두 사람이 만난 것 역시 산에서 였다.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고 함께 산행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서울에서 태권도 도장을 하던 양민호 씨와 직장인이었던 조승희 씨의 꿈을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산골생활이 쉽지는 않겠지만 교육적인 측면에서 도시보다는 더 낫겠다 싶었죠.”

 

조승희 씨의 말처럼 산골생활은 남편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덕분에 똑같은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은 쉽게 지리산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결혼 5년 만의 일이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이게 되고, 또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부부는 너무도 쉽게 결정했다. 부딪쳐서 해결하겠다는 자신감과 가진 것이라고는 부지런한 천성 뿐. 서울생활을 할 때도 5일은 서울에서 나머지 주말 이틀은 지리산에서 생활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 8년간을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역시 똑같은 결정을 한다고 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지리산 산골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윤규
(12)와 석규(8) 두 아들의 악양 생활은 대만족이다. 다른 부모들이 걱정하는 교육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원도 안다닌다. 조승희 씨는 다닐 필요가 없다고 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교육이 아니냐고 했다. 악양지역 귀농인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작은도서관 책보따리가 학원을 대신한다. 부모들은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여행이나 다양한 체험활동도 한다. 도시에는 없는 산골마을의 특성을 살린 교육이라 할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성공적인 정착이라 할 수 있지만, 수없이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얻은 경험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양민호 씨와 조승희 씨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믿음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양민호 씨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예비 귀농 부부들에게도 늘 똑같은 얘기를 한다.

 

무조건 부딪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죠. 그것은 너무 많은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과 완벽한 결과를 추구하는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문제는 욕심이다. 도시를 떠나고 싶어도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에 떠날 수 없는 것이다. 혹여 쉽게 버릴 수 없다면, 도시를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악양 땅 상신흥마을의 양민호 조승희 부부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리산 농원 http://www.jirisanfarm.com

 

<, 사진>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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