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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강원도 속살을 더듬고 왔다. 깊은 오지를 찾을 만큼 시간의 여유가 없어 대충 겉만 핥고 왔다. 그나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나에게 오지는 비타민이다. 먼 길을 운전한 피로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순간 만큼은 세상의 모든 흐름이 멈춘다.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 아래 발구덕 마을에 올랐다. 산 중턱에 있으니 올랐다는 표현이 맞다. 움푹 페인 구덩이가 8개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 주민들은 팔구뎅이라고도 부른다. 참 독특한 지형인데, 여기서 지리 공부 좀 하자.
위에서 보면 깔대기 모양의 분지가 여기저기 보인다. 학자들은 발구덕마을에 이렇듯 구덩이가 많은 이유를 '아래에 석회암 동굴이 있어 지표면과 통한 굴을 통해 흙이 자꾸 빠져 나가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지형을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한다. 곳곳에 나타나는 석회암의 용식작용으로 만들어진 구덩이인 돌리네(doline)와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크고 작은 씽크홀(sinkhole)이 발달해 있다.
민둥산 등산은 민둥산역(옛 증산역) 인근 증산초등학교 앞에서 시작 한다. 하지만 능전마을을 통하면 자동차로 발구덕 마을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이 능전마을이다. 저 아래 주황색 지붕집은 오래전부터 다니던 민박집이다. 한 겨울 가마솥에서 끓는 물을 퍼다 세수하던 생각이 난다. 철철 끓는 아랫목때문에 이따금 찾기도 했다.
증산초등학교 앞에서 421번 지방도로를 따르면 능전마을이다. 계속가면 정선도 가고, 임계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 갈 수 있다. 강원도의 전형적인 토담집과 골골이 널린 고랭지 채소밭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발구덕 마을의 대부분의 땅은 고랭지 채소밭이다. 배추와 양배추가 자란다.
내 기억에 저 집은 20년 전에도 저런 상태였다.
발구덕 마을에서 민둥산은 금방이다. 능전마을 민박집에서 자고 이른 새벽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이 길을 통해 올랐다.
등산로 입구에 간이 식당이 있다. 민박도 치고, 토종닭도 판다. 라면 하나 끓여 먹었다. 비구름이 오락가락하는 사이를 바람이 가른다. 시원하다. 참 좋다. 옛날 생각하면서 나무탁자에 앉아 먹는 라면 맛도 좋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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