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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오지

오지 중의 오지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골, 눈길 13시간을 걷다.

by 눌산 201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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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의 속살, 무인지경 아침가리골 20km 눈길 트레킹

구룡덕봉에서 새해 첫 해를 만나고 아침가리골로 향한다.
 
오지 중의 오지요, 삼둔사가리의 중심인 아침가리골은 오지여행 매니아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눌산 또한 이곳을 드나든지 20년이 넘었다. 아침가리골을 처음 만나고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오지여행가가 되었다.

아침가리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전히 전기도 전화도 없다. 사철 마르지 않는 청정옥수가 흘러 넘친다. 안타까운 것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수준이 변했다. 즉, 예의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말이다.


구룡덕봉 삼거리에서 구룡덕봉에 올라 새해 첫 해를 만나고, 다시 구룡덕봉 삼거리에서 아침가리골을 지나 방동약수가 있는 방동리까지 20여km 를 걸었다. 아침 5시 20분에 출발해서 저녁 6시가 넘어 끝이 났다. 예상 시간보다 두 배가 더 걸렸다. 눈길에 난생 처음 등산화를 신어 본다는 중학생 두 명, 그리고 EBS 취재팀까지 총 7명이 함께 한 길이었다.



시작은 내리막 길이다. 그리고 하염없이 이어지는 곧게 뻗은 숲길과 수 십 번 구비길을 돌아 나가면 마지막 고갯길이 기다린다. 봄가을 좋은 날씨라면 느긋한 길이 되겠지만, 한겨울에는 눈길이라, 사실 쉬운 코스는 아니다.



이 표지판은 곳곳에 서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인 방동리까지의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기온도 높다. 걷기에는 그만이다.



새벽 3시에 숙소를 나섰으니 배가 고플만도 하다. 다들 배고프다고 난리다.



라면과 즉석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떼우고 다시 출발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배도 부르고, 날씨 또한 최고니까.



발걸음도 가볍다. 설마 13시간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쓰레기는 모아서 배낭에 걸었다.



오르막이 무섭다던 녀석들, 내리막은 더 무섭단다. 그도 그럴것이 끝이 안 보이는 길은 언제 끝날 지 모를 두려움에 점점 지쳐간다.



아침가리골에 들어서면 쉴 곳이 따로 없다. 대충 주저 앉으면 그곳이 쉼터가 된다.





 


곧게 뻗은 이 길은 녹음이 우거지면 근사한 숲길이 된다.



갑자기 눈이 내린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가 눈 내리는 것도 즐겁지가 않다.






폭설이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이런 눈이 1시간 정도 내렸다. 덕분에 길은 더 미끄러워졌다.






결국 물에 빠졌다. 양말만 갈아 신고 다시 걷는다.





곧 끝이 나겠지... 했던 기대감은 점점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거의 체념에 가깝다.
주성이는 거의 10분 단위로 "얼마 남았어요?"라고 묻는다. 하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혼잣말처럼 들린다.



그래도 눌산 눈에는 꽃이 보인다. 마른 꽃.



캠핑하는 오프로드 팀에게 커피 한잔을 얻어 마셨다. 금새 표정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곧 지쳤다.






조경분교 근처 자작나무 숲.


 
폐교 된 조경분교.

아침가리의 또 다른 이름은 조경동(朝耕洞)이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지명의 한자화를 하면서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침가리라 부른다.
학교는 아침가리에 연필 재료를 만드는 목재소가 들어 선 이후 문을 열였다. 많을 때는 40여 명, 목재소가 묻을 닫을 무렵에는 9명 일 때도 있었다.



텅 빈 교실에는 쓰레기가 가득하다. 한 때는 오지여행 매니아들의 숙소로도 사용되던 이곳은 지금 모두가 떠나고 없다.









언제봐도 정겹다. 우리집 마당보다 더 좁은 이 공간에서 수십명의 아이들이 뛰어 놀았으리라.



학교에서부터 곰순이가 자꾸 따라 온다. 아마도 맛있는 냄새를 맡았나보다.




사진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카메라를 들 힘이 없어 배낭에 넣어 버렸다.
이때 시간이 오후 3시 38분.
이후로도 3시간이 지난 6시가 한참 넘어서 끝이 났다.
눌산도 지쳐 평소에 안 쓰던 스틱에 의지해 방동 고개를 넘었다.





원시림 한가운데서 만난 우리 땅의 속살.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는 <삼둔 사가리>라 하여 일곱 군데의 피난지소를 기록하고 있는데, 난을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는 곳이란 뜻으로, 전하는 말에는 피난굴이 있어 잠시 난을 피했다 정착했다는데서 유래된 곳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피난 굴은 찾을 수 없고 세 곳의 ()과 네 곳의 ()가리만이 남아 있다.

삼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이고,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곁가리로 예로부터 인정하는 오지 속의 오지들이다. 이러한 피난지소들이 홍천군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에 집중된 이유는 다름 아닌 지형지세에서 찾을 수가 있다.

방태산(1,435.6m) 구룡덕봉(1,388.4m) 응복산(1,155.6m) 가칠봉(1,240.4m) 등 대부분 1m가 넘는 고봉들이 첩첩이 둘러싸여 있어 과연 이런데서 사람이 살았을까 할 정도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험준한 곳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곳으로 찾아가는 길목이 그럴 뿐, 일단 마을로 들어가면 다르다. 신기하게도 그곳들은 대부분 안락의자를 연상케 하는 아늑함과 함께 널따란 공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입구는 좁고 안으로 들어 갈수록 터가 넓어 꼭 프라이팬을 닮았다. 마을 앞으로는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계곡을 끼고 있고 부족하지만 화전으로 일군 농토도 있어 세상을 등져야 할 사연을 가진 이들이 정착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 그 삼둔사가리의 중심이요 오지 속의 오지로 불리는 아침가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자로는 조경동(朝耕洞). 풀어 쓰면 아침가리가 되는데, 높은 산봉우리들에 가려 아침 한나절에만 잠깐 비춰지는 햇살에 밭을 간다 하여 붙여진 마을 지명 그대로 산세가 험하고 한나절이면 밭을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농토가 협소하다는 뜻이다. 앞산 뒷산에 빨래줄을 걸어도 될 만큼 협착한 골짜기는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 정도.

모두 두 가구가 사는 아침가리에는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원시의 세계나 다름없는데, 무성한 잡초와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은 그 옛날 20여 가구가 살았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지만 낙엽송 숲을 울타리 삼은 옛 분교만이 마을의 흔적을 얘기해 준다.

기린면 방동리에서 두 시간은 족히 걸어야 만나는 폐교된 조경분교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목조 건물로 학생은 없지만 분교에서 생활하는 송근주 씨 덕분에 보존상태가 양호해 금방이라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손바닥만 한 운동장과 교실 한 칸이 전부지만 아침가리에서 가장 넓은 공간으로 여름 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그려본다.

마을 앞을 휘돌아 흐르는 조경동 계곡에는 1급수에만 산다는 열목어와 수달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투명한 계곡 물은 그냥 떠서 마셔도 좋을 만큼 맑다. 피서 철이면 몰려드는 인파로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다지만 아침가리 계곡이 아직까지 청정옥수가 콸콸 쏟아지는 원시의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전기도 전화도 없고 걸어서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오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가리에서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홍천군 내면 월둔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명지가리. 주민들만이 간간이 찾는 명지가리 약수가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르면 국내 최대 야생화 군락지인 구룡덕봉으로, 봄이면 수만 평에 이르는 초원에 야생화가 만발해 주변의 빽빽한 원시림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아침가리를 찾아가는 길은 기린면 방동리와 홍천군 내면 방향 단 두 길이지만 어느 방향으로 길목을 잡든 청정계곡과 만날 수 있고 시간도 비슷하다. 열목어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천렵이나 낚시는 절대금지, 계곡에서의 취사도 안된다. 물론 민박도 없다. 분교의 털보아저씨 송근주 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실이나 운동장에서 야영하며 하룻밤 묵는다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아침가리에는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과 사철 마르지 않는 청정옥수가 흐르는 우리 땅의 속살과도 같은 곳이다.

<글> 눌산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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