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산사랑(한국산지보전협회) 2014 여름호 기고 자료입니다.
이번 취재의 목적지는 강원도 영월이다. ‘사륜구동 아니면 자동차도 갈 수 없고,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 외딴집에서 생태농업을 하는 부부’가 사전에 들은 정보의 전부이다.
때 이른 더위와 가뭄에 그 넓은 동강이 반쪽이 되어 흐른다. 영월읍에서 합류하는 서강이라고 다를바 없다. 상류에서의 공사 여파인지 탁한 물빛이 가슴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하지만 골짜기 깊숙이 들어서자 사정은 좀 덜하다. 나무가 몸속에 저장했던 수분을 이런 갈수기에 토해내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자연의 소중함과 이치를 배운다.
귀틀집 짓고 생태적 시골살이를 꿈꾼다.
이번 취재의 목적지는 강원도 영월이다. ‘사륜구동 아니면 자동차도 갈 수 없고,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 외딴집에서 생태농업을 하는 부부’가 사전에 들은 정보의 전부이다.
전북 무주에서 강원도 영월까지는 장장 300km가 넘는 먼 거리다. 더구나 느즈막히 출발해야하기 때문에 얼추 10시는 되야 도착할 것 같다. 산골 외딴집이라 밤 늦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어 미리 연락을 했더니 농사철이라 일이 늦게 끝나니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내비게이션은 북면사무소까지만 찍고 그 다음은 잔말말고 알려주는데로만 찾아오라는 것이다.
“내비에 친정부모님 댁 주소를 찍고 오시다보면 북면사무소가 보여요. 그곳에 잠시 정차를 하셔서 일단 미터기에 빵으로 맞춰 놓으시기 바랍니다. (잔말말고 ^^) 벽화마을을 지나 계속 직진하면 우리마을 경로당이 보이고 개울속에서 자라는 노거수가 보인답니다. 노거수 뒤편에 이장님댁 축사 앞으로 200m 쯤 더 직진, 친정부모님댁 앞을 지나고, 묘소 삼거리를 지나면서는 사륜 기어를 넣고 비포장 산길을 올라오면 월이와 쫑쫑이가 마구 짖을거에요. 개의치마시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세요.”
하~ 이런. 정확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길이었지만 거짓말처럼 그곳에는 외딴 집 한 채가 있었고, 월이와 쫑쫑이 두 마리의 개가 손님을 맞는다.
이제 막 일이 끝났다는 부부는 늦은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는 막걸 리가 제격이라며 밥상 앞으로 이끈다. 오랜만에 맛보는 동강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고 예정에 없던 심야 인터뷰가 시작된다. 사실 인터뷰라기 보다는 술상을 앞에 두고 그동안의 산골생활 얘기를 들었다.
97년부터 인제 진동계곡과 제천 백운산에서 산골생활로 이력이 붙은 남편 임소현(48) 씨와 경남 고령에서 10여 년 간 농민운동을 했던 김영미(48) 씨는 생태적 시골살이를 꿈꾸며 이곳에 귀틀집을 지었다. 집 지은지는 3년 되었지만, 임소현 씨가 이 골짜기에 처음 들어 온 것은 10년이 넘었다. 당시에는 친구 두 명과 공동체 농업을 하기 위해서 였는데, 경매로 나온 땅 2만평을 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두 친구는 떠나고 임소현 씨만 남게 되었는데, 농업기술센터에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김영미 씨를 만나 의기투합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산골에서 생태농업을 원한다는 것. 이미 농민운동 경력이 있어 농업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많았던 김영미 씨였기에 이 깊은 산골로 망서림없이 들어 올 수 있었다. 더구나 고령에서 정보화마을 프로그램 관리자로 일했던 이력을 살려 부부가 생산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연과 교감하며 닮아가기를 소망하는 귀농부부
그 중 하나가 외국인 여행자들의 유기농장 체험 프로그램인 ‘우프’이다. 우프(WWOOF)는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로 유기 농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란 뜻이다. 1971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NGO 단체로 외국인 여행자들이 해당 국가의 우프에 가서 농장 일을 거들어 주면서 숙박과 식사를 제공받는 방식으로 일종의 자원봉사 제도인 셈이다. 특히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우퍼의 입장에서는 여행경비를 줄일 수 있고, 해당 국가의 문화를 배우고 전통음식을 맛보면서 여행의 의미를 배가 시킬 수 있다는데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프의 주인(호스트)은 화학 비료, 농약을 사용하는 일을 시키면 안된다는 규정도 있다고 한다.
일손 도움을 받을 수 있다지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성격좋은 김영미 씨는 얻는 게 더 많다고 했다.
“호주·미국·캐나다·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찾아와요. 매 끼니 식사를 챙기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앉아서 세계여행을 하잖아요. 혹시 알아요? 다음에 우리가 외국에 나가게 되면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우프 뿐만이 아리라 귀틀집을 지으면서 여유 방 두 개를 더 만들어 내국인 농가민박도 친다. 생활에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도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손수 지은 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의 먹을거리를 위해 농사를 지어요. 그리고 남는 것을 팔죠. 모두 6천 평의 농사를 짓는데, 오미자, 다래, 오디, 콩, 고추 등 쌀만 빼고는 다 있다고 보시면 되요. 중요한 것은 팔기 위해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죠. 남편만 빼고는 다 파는 셈이죠. (웃음)”
부부는 유기농을 한다. 임소현 씨가 97년부터 해오던 효소는 유기농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유기농영양제로 효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밖에 일부러 지었다는 재래식 화장실 또한 유기농을 위한 목적이다. 그냥 봐서는 화장실이라기 보다는 곱게 꾸민 소녀의 방처럼 꾸며 놓았다. 산야초와 오디 효소 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그 범위가 넓어져 다래 와인까지 만들고 있다. 모두가 독학을 통해 배웠다고 한다.
막걸리 세 병을 비우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알싸한 밤공기가 상쾌하다. 한낮의 후텁지근한 날씨는 딴 세상 얘기같다. 필자 역시 산골생활 십 수년 째지만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기분 때문에 산골로 들어가나보다. 그때 취재에 동행한 아내가 “반딧불이다.”라고 소리친다.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쪽을 봤더니 반딧불이 한 마리가 꽁지에서 불빛을 반짝이며 날고 있다. 산골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다음날 아침, 부부의 부산한 움직임에 잠을 깼다. 불빛 하나 없는 외딴집이라 지난 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온다. 나지막한 산자락이 발 아래로 깔리고 그 위로는 산안개가 너풀거린다. 마당에는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풀꽃들이 피어 있다. 스스로를 김꺽정이라 부르는 아내 김영미 씨를 봐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모두가 손수 가꾼 꽃밭이란다. 매일아침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애지중지 관리하고 있다. 요즘은 꽃양귀비가 한창이다. 주변이 온통 초록빛이어서 그런지 더 화려해 보인다.
집 주변으로는 부부가 짓는 6천 평의 농장이 둘러 싸고 있다. 아직 어린 묘목도 보이고, 오디가 검붉게 익은 수확을 앞둔 뽕나무 밭도 보인다. 이 모두를 부부 두 사람이 관리하기에는 너무 넓어 보인다.
“일손이 부족할때는 귀농연수생이 와서 도와줘요. 일종의 귀농 인턴제도인데, 멘토와 멘티 사이라 할 수 있죠.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농사일을 배울 수 있고, 우리는 일손을 덜 수 있으니 서로가 좋은 제도죠.”
부부는 힘들어도 유기농을 고집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먹을거니까요.”
이른아침 야외 테이블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해거름이면 부부가 손잡고 산책을 하는. 귀농치든 귀촌이든 이런 삶을 꿈꾸는 이들이 종종 부부의 집을 찾아온다. 그럴때면 부부는 그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사람들은 원하는 게 너무 많아요. 오직 나와 내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데 말이죠. 무턱대고 땅을 사고, 집부터 짓지 말고 빈집을 얻어 일단 살아보라고 해요. 소위 말하는 우아한 전원생활이 아니라면 말이죠.”
풍성한 채소로 가득한 아침상을 받고 부부의 집을 나선다. 하룻밤이지만 오랜 친구와의 만남으로 기억될 만큼 편안한 밤을 보냈다. 임소현 씨가 이른봄 산과 들에서 채취한 산야초로 만들어다는 효소와 식초를 선물로 받았다. 그 속에는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게,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게, 자연과 교감하며 닮아가기를 소망하는 귀농부부’라고 쓰인 메모가 들어 있다. 부디 때이른 가뭄으로 맘 고생하는 부부의 고민을 시원한 빗줄기가 내려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www.nulsan.net
임소현, 김영미 부부의 블러그 “내마음의 외갓집” 검색
'여행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눔과 소통의 공간, 무주 반딧불장터(무주시장) '반딧불 북카페' (3) | 2015.01.08 |
---|---|
[산이 좋아 산에 사네] 산골 매력에 풍~덩 빠진 사람들, 공정여행 풍덩 (4) | 2014.10.24 |
트레커 최상석의 트레킹 이야기 [전원생활 6월호] (2) | 2014.05.28 |
[귀농·귀촌 이야기] 미래의 땅, 십승지의 고장 무풍에서 신 유토피아를 꿈꾼다 (0) | 2014.02.03 |
[귀농·귀촌 이야기] 오미자와 블루베리로 꽃 피운 제2의 인생 (0) | 2014.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