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땅, 십승지의 고장 무풍에서 신 유토피아를 꿈꾼다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승지마을권역 위원장 김원수·이영순 부부
십승지(十勝地)란 물(水)과 불(火)과 난(亂)을 피할 수 있는 열 군데의 마을을 일컫는 말로 재난과 재앙을 피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그 십승지 중 한 곳이 바로 무풍이다. 해발 4~500m의 분지인 무풍은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이들이 봐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지형과 산세를 품고 있다.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을 활용해 신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무풍면 철목리의 승지마을권역 김원수 위원장(59) 부부을 만나고 왔다.
김원수 위원장이 꿈꾸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승지마을 권역사업은 무풍면 철목리와 현내리, 증산리 일대를 묶어 지역 특산물을 개발하고 지속적인 판매와 도농교류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예로부터 재앙이 없는 살기 좋은 고장 무풍을 신 유토피아, 즉 무릉도원으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작은 체구지만 강인한 인상을 지닌 김원수 위원장이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소위 말하는 이상향이 아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철목리에 위치한 승지마을권역 방문자센터는 그의 근무처이자 작업장이다. 방문자센터는 휴양관과 세미나실, 체험실을 갖추고 있고, 현재 숙박시설 세 동을 신축 중에 있다.
김원수 위원장은 마을 뒤로 이어지는 사선암 옛길도 복원했다. 이 길은 산 너머 벌한마을 사람들이 장보러 다니던 길로 무풍을 찾는 여행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세우고 말끔히 정비를 마쳤다. 승지권역마을을 찾는 도시인들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옛길을 걷거나 산책을 하면서 진정한 힐링을 하고 가는 셈이다. 이미 이곳을 통해 방문객들이 농촌체험을 하고 산지 농산물을 직접 구매해가고 있다. 또한 예비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교육시설도 갖추고 있고, 고랭지 매실재배로 전국에 소문이 난 터라 한 수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미 명물로 자리 잡았다.
“도시와 농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어요. 도시민도, 지역주민도 모두가 도움이 되는 일이죠. 외지인들에게 비교적 폐쇄적이었던 기존 정서가 방문자들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문을 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김원수 위원장은 한마디로 지역에 대한 열정이 넘쳐 보인다. 자신이 농사꾼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농업인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을 활짝 열어야 해요. 모두가 함께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빈집을 채울 수 있도록 도시민들에게 개방을 해야죠.”
무주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무풍은 과수재배가 주 소득 작물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맛과 품질 면에서는 이미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지속적인 판매와 점점 늘어나는 빈집은 결코 미래를 보장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김원수 위원장은 귀농이든 귀촌이든 무풍 땅이 좋아 찾아오는 이라면 정착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재도 함께 유입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유능한 인재는 곧 지역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무주의 매실 왕, 지금은 대한민국의 매실 왕이 되다
김원수 위원장은 전국에서 최초로 고랭지 매실을 재배한 장본인이다. 연평균 기온이 11도 이상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는 매실은 주로 남쪽지방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무풍은 준 고랭지에 속하기 때문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작물이다. 김원수 위원장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재배에 성공해 지금은 5천여 평에 매실을 재배하고 있다.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당시 주 작물이었던 고랭지배추의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하던 차에 마을 청년들을 모아 작목의 전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렇게 만든 모임이 ‘마을종합발전협의회‘다. 이 모임에서 각자 애정이 가는 작목을 선택하기로 했는데, 대부분 사과를 선택했지만 김원수 위원장은 매실을 선택했다. 고랭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묵묵히 집중했던 결과 성공적인 재배를 할 수 있었다.
“저는 고랭지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랭지에서는 친환경 농업이 가능하거든요. 농약을 덜 쳐도 되고, 기온차가 클수록 맛이 더 좋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유기농을 해요. 대신 고사하는 나무도 있지만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매다. 이 부분에서도 그는 남들보다 앞서 나갔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수확한 매실을 트럭에 싣고 무작정 가락동농수산물시장으로 올라갔죠. 하지만 이미 경매가 끝난 상태라는 거예요. 기온차로 인해 무풍 매실의 수확이 타 지역에 비해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할 수 없이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긴 왔는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매실을 그냥 버릴 수 없잖아요. 버리는 게 아까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지금의 매실발효원액이에요. 일종의 2차 가공사업의 시작인 셈이죠. 문제가 또 생겼어요. 그 많은 원액을 팔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해에는 길거리 판매를 시작했죠. 남의 집 가게 앞에서 좌판을 펼쳤다 쫓겨나기도 하고, 아파트 앞에서 팔기도 했는데, 그러다 우연히 어떤 가게 주인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다 팔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만났던 고객과는 지금도 거래를 하고 있죠.”
김원수 씨의 주 작목은 여전히 매실이다. 2차 가공으로 탄생한 매실원액은 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에 비해 월등하다고 자부한다. 그 이유는 일교차로 인한 성분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교급식과 백화점에도 납품을 하고,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된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운영하는 ‘아침마을’에 입점하게 되면서 전국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시장에도 진출했고, 이후에는 중국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품종의 차별화를 했어요. 그리고 수확시기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하고요. 17종을 잘 배합해 가장 이상적인 맛을 찾아냈죠. 그게 성공 요인 중 하나에요. 다른 작목도 마찬가지겠지만 앞으로는 우리 농산물도 1차 생산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어요. 2차 가공을 통해 차별화를 해야 해요.“
김원수 위원장은 언제나 앞서 갔다. 선구자로서 길을 열었고, 여전히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농사꾼 김원수’가 아닌 ‘농업경영인 김원수’가 되고자 하는 이유이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www.nulsan.net
전라북도 무주 귀농·귀촌 소식지 겨울호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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