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경 용소
충청북도 청원 박대천, 옥화구경
수초에 허리를 감고 모래톱을 지난 느린 강은 자갈밭에 이르러 몸을 한번 씻어 내린다. 희뿌연 흙탕물도 이쯤에 이르게 되면 맑디 맑은 청정옥수로 변하고, 해질 녘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토담집 굴뚝 연기에 휩싸여 뿌연 물안개를 만들어 낸다.
느리게 느리게 흐르던 강, 바로 고향의 강이 그랬다. 세상이 달라진들 어릴 적 그 고향의 강모습까지 달라질까 했지만 세상사가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해버린 강은 일자로 쭉 뻗은 콘크리트 제방 아래 줄을 서서 빠르게 흘러간다.
다슬기 잡는 사람들, 돌에 붙은 다슬기가 온통 새까맣다.
느리게 느리게 흐르는 강, 박대천
이젠 쉽게 만날 수 없는 느린 강을 찾아 나섰다. 그런 대로 강다운 모습이 살아 있는 충북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에서 어암리에 이르는 약 10km 구간의 박대천, 옥화구경이라는 걸출한 명승 절경을 품고 있다지만
사실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강이다.
보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화양동과 쌍곡구곡 등 크고 작은 지류를 받아들이며 괴산 읍내를 지나 충주에서 남한강 본류와 합류할 때까지 약 116킬로미터를 흐르는데, 조선시대 오대산 우통수, 속리산 삼파수 등과 함께 '조선 3 대 좋은 물'로 전해져 올만큼 지금도 맑은 물을 자랑한다. 그도그럴것이 물 좋고 경치 좋은 곳만을 두루 돌아 흐르기 때문 아닐까.
2천5백평 참나무 숲그늘이 장관인 금관숲
박대천을 살펴보기 이전에 그 위 달천을 빼놓을 수 없다. 남한강 수계의 최남부 지류인 달천. 물맛이 달아 달천, 달강, 달래강, 또는 감천이라고도 부르는데, 물에 젖어 몸매가 드러난 여동생을 보고 음심이 동했던 오빠가 자책 심에 자살했다는 '오누이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달천의 윗동네는 괴산의 괴강이다. 또 그 윗동네는 박대천으로 한마디로 참 이쁜 강이다. 걸어서 찾은 섬진강의 모습을 쏙 빼 닮았다. 느려터진 느림보 강, 곳곳에 널린 수초 섬을 휘감고 돌아 느리게 느리게 흐른다. 그 안에 사람들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바지를 반쯤 걸어 올린 아낙은 다슬기 잡이에 여념이 없다. 어린아이들은 젖은 옷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에 푹빠져 있다.
이른 더위를 피해 찾아든 사람들로 가득한 박대천 풍경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 아득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제 6경 옥화대
박대천, 그 안에는 옥화9경이 있더라.
박대천을 빛낸 얼굴마담은 역시 옥화9경(玉花九景)이 아닐까. 속리산에서 발원한 박대천을 따라 옥류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홉 비경. 청석굴, 용소, 천경대, 옥화대, 금봉, 금관숲, 가마소뿔, 신선봉, 박대소가 그것이다. 용소와 천경대, 옥화대, 금관숲 일대는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넘쳐난다. 아무래도 숲그늘이 함께 하고, 보기만 해도 시원한 강 경치가 좋아서 일게다.
수십 미터의 절벽 위 노송이 우거진 제2경인 용소, 제3경인 천경대(天鏡臺)는 수직절벽 아래를 흐르는 맑은 물에 비치는 달빛 그림자가 거울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추월정과 세심정이 있는 제4경인 옥화대, 이들 정자는 광해군 때 서계 이득윤이 버슬을 버리고 은거하며 자연과 벗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약 2천5백 평의 면적에 참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 제6경인 금관숲은 코앞에 흐르는 박대천과 함께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 숲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누운 사람들 모습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
강변으로 내려서면 다슬기가 지천이고, 절벽을 튕겨나온 물줄기가 여울을 지나며 몸서리치는 시원함도 맛볼 수 있다. 박대천은 물을 건너고, 때론 길을 따라 걷는 백패킹 코스로도 좋을 듯 싶다. 대부분의 강변에는 숲이 없어 다리밑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선다지만
이 곳 박대천은 곳곳이 숲그늘이다.
박대천의 초입이랄 수 있는 운암리에 들어 선 옥화자연휴양림 또한 쉼의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는 곳. 산기슭 계곡 물을 그대로 끌어들여 물과 숲이 어우러진 휴양림에는 가벼운 산책 코스뿐만이 아니라 등산로만 13km 이르고 자전거 도로와 체육시설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사용료도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라 박대천 강행 길에 찾아 볼만하다.
박대천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제 1경 청석굴
옥화 자연휴양림
산을 깎아 아파트를 세우더니. 이젠. 강에 운하를 만든단다. 다음은. 논밭 다 없애고 아파트형 논밭이 들어서지 않을까. 빼곡한 주차타워 처럼 말이다. 사라진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다. 사라져서는 안 될 것들이 사라질 것 같아 서럽다. 강은 이 땅의 핏줄이다. 핏줄이 막히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이 땅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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