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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전남 곡성] 하심(下心)으로 안내하는 숲길 끝에, 태안사

by 눌산 2016.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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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보성강 건너, 숲길이 끝나는 곳에,  동리산 태안사, 동백꽃


산사의 숲길은 마음을 씻어 주는 길입니다. 절집은 숲길이 끝나는 곳이 있습니다. 태안사는 2km에 이르는 울창한 숲길이 제대로 남아 있는 절집 중 하나입니다. 기생오라비 같은 포장도로가 아닌, 먼저 폴폴 나는 흙길입니다.

 

매표소를 지나 조태일 시문학관, 능파각, 일주문에 이르는 이 길에는 모두 네 개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먼저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면 돌아오라는 귀래교(歸來橋), 마음부터 씻고 들어오라는 정심교(淨心橋), 세속의 모든 번뇌를 씻고 지혜를 얻어 가라는 반야교(般若橋), 도를 이루기 전엔 속세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해탈교(解脫橋)까지.

 

모퉁이 한 굽이 돌때 마다 몸과 마음은 정화가 됩니다. 걸어서 가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동차로 순식간에 절 마당까지 들어가 버립니다.


태안사에 가시거든 꼭 이 숲길을 걸어서 가보시길 권합니다!




보성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태안사 가는 길입니다.


17번 국도가 지나는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압록에서 우회전하면 보성강 줄기를 따라가는 18번 국도입니다. 다시 보성강을 건너면 태안사 가는 길이지요. 우리나라에 몇 안남은 아름다운 강 두 개를 건너야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보성강은 어릴 적 추억이 절로 떠오를 만큼 촌스러운(?) 강입니다. 강 한가운데 수초가 자라고 모래톱이 있는, 전형적인 강 풍경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찾는 여행자는 거의 찾기 힘든 곳이라 한갓지고 여유로운 풍경에 취할 수 있습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여덟 살까지 이 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태안사는 제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그럼. 2냐고요?^^ 아뇨, 워낙 귀한(?) 아들이라 부처님 곁에서 태어난 것뿐입니다. 외갓집이 절보다 더 높은, 절 뒤 골짜기에 있었으니까요. 외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도 했고, 스님 곡차 심부름도 했습니다. 이 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절집으로 향다다 늙은 얼레지 무리를 만났습니다. 진작부터 알고 있던 장소라 혹시나 하고 봤더니, 꽃은 이미 지고 있더군요. 비오는 날, 제 제 몫 다 하고 스러져가는 얼레지 모습을 보는 것도 좋더군요. 화려하다고 다 꽃은 아니니까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삼층석탑





일주문 곁으로는 부도밭입니다. 비신(碑身)이 깨진 채로 귀부(龜趺)와 이수(머릿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이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 윤다(864945)의 부도비(보물 제275)입니다. 태안사를 132칸 규모의 대찰로 중창하고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 등을 말사로 거느렸던 것도 바로 이 때였다고 합니다. 태안사는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사찰이었습니다. 쇠락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태안사 능파각외할머니는 이 다리를 수박다리라고 했습니다이유는 모릅니다.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갈 수 없게 되었거나,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복한 사람이지요. 아름다운 고향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 때고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말입니다.














어릴 적부터 절은 절하는 곳이다. 라고 배웠습니다. 걷기 시작하면서 부터 108배를 했으니, 절 하나는 똑소리나게 잘 합니다.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는 동안 대웅전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절 마당은 전용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요즘처럼 절집을 찾는 여행자들이 거의 없던 때였으니까요.














지금의 태안사 매표소 앞집이 제 생가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태안사까지 걸어 다녔던 기억이 많습니다. 그 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집니다. 먼지 폴폴 나는 비포장 길에 사철 마르지 않는 계곡이 옆으로 흐릅니다. 봄이면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아주 아름다운 길이지요. 대부분의 절집 가는 길이 포장이 됐다지만 태안사 길은 그대로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동백(冬柏)은 겨울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나무 꽃이지요. 세상 모든 만물이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 저 홀로 붉은 꽃을 피우다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집니다. 꽃이라 함은 나무에 달려있을 때가 아름답다지만 이 동백꽃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 더 아름답습니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이란 긴 이름의동리산 자락에 구산선문을 일으킨 혜철스님의 부도탑은 대웅전 뒤편 절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누구라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낮은 문배알문(拜謁門)을 지나야 합니다










이곳에서 다시 처연한 동백꽃의 마지막 모습을 만났습니다. 그저, 할 말을 잃게 하는 동백의 마지막 선물입니다.





태안사에서는 독도사진박물관 관장인 김종권 사진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섬진강과 보성강, 곡성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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