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無窮無盡)! 무주 한 바퀴 / 붉은치마길
적상산 서쪽 자락 둘레길, 서창마을에서 길왕마을까지
적상산 둘레길이 열렸다. 적상산 서쪽 자락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이 길은 적상면 서창마을에서 길왕마을까지의 총 6km 거리로 ‘붉은치마길’이라 불린다. 길왕마을 주민들이 마을 자원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기존 임도를 활용한 걷기길을 조성했다. 이 ‘붉은치마길’을 시작으로 적상산에 걸쳐 있는 마을마다 둘레길을 조성해 연결한다면 훌륭한 적상산 둘레길이 완성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기자는 ‘붉은치마길‘을 종종 걷는다. 기존 임도를 활용한 길이라 특별한 등산 장비 없이 가볍게 걷기에 좋다. 조성 초기에는 찾는 이들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두 마을 주민들의 산책로로 인기가 높다.
‘붉은치마길’은 길 안내판이 설치된 서창마을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무주읍 서면마을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마실길’과 중복되는 구간이라 표지판이 두 개다. 무주에서 장수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마실길’은 무주 구간만 총 45km로 ‘붉은치마길’은 2코스에 속한다. 이 길이 좋은 이유는 서창마을에서 출발해 길왕마을을 거쳐 다시 서창마을까지 원점회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첫 걸음은 북쪽을 향한 오르막 구간이다. 출발하고 20분 정도가 고비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몸에 열이 오를 즈음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이곳에서는 적상산 병풍바위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숲이 우거져 하늘 밖에 안 보이지만 한겨울이면 서쪽 전망이 시원스럽게 열린다. 고속도로와 만남의 광장 방향까지 탁 트인 조망이 걷는 내내 무료함을 달래 준다. 또한, 길왕마을 주민들이 ‘붉은치마길’ 구간에 심어 놓은 어린 편백나무 가로수가 한겨울 추위에도 꼿꼿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주민들이 10년 뒤를 내다보고 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멋들어진 편백 숲길이 그려진다.
첫 걸음의 힘듦에 놀랐다면 이후는 안심해도 된다. 고갯마루를 내려서면서부터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적상산의 바위절벽을 오른편에 두고 평탄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야트막한 고갯길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좌로 우로 한 열댓 번쯤 굽잇길을 돌아나가면 길왕마을 뒷산 어디쯤에 이른다.
길왕마을에는 마을을 가운데에 두고 절골과 안골이라는 두 개의 계곡이 양쪽으로 흐른다. 마을 오른쪽의 절골 깊숙한 곳에는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왕바위가 있다. 왕바위에는 적상산 사고(史庫)를 지키던 장군이 마셨다는 샘물과 장군이 탄 말발굽 자국이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샘물을 ‘약물샘(탕)’이라 부르며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이 골짜기의 물을 식수로 마시고 있는데, 신성시하는 마을의 소중한 자원이라 보존차원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원치 않는다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이 지면에서는 정확한 위치를 밝히지 않기로 했다.
목이 마를 즈음,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전망 좋은 잿마루에 정자가 나타난다. 봄이면 나물꾼들의 쉼터가 되는 이곳은 요즘 길왕마을 주민들이 산책 나왔다가 쉬어가는 곳이다. 정자에 앉아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첫 고개에서 만났던 적상산 병풍바위가 이곳까지 펼쳐져 있다.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름 그대로 딱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쉼터 정자를 지나면 곧바로 내리막 구간이다. 본래는 정자 아래로 옛길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묵은 길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300m 쯤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면 농부바위 갈림길이다. 우측으로 가면 오동재 넘어 무주읍내로 가는 ‘백두대간마실길’이고, 직진하면 길왕마을이다. 농부바위는 바위 윗면이 평평해서 네댓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넉넉해 보인다. 농부바위란 이름은 농부들이 농사일을 하는 중간에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농부바위를 지나면 길왕마을이다. 길왕마을에는 유독 크고 우람한 소나무가 많다. 마을 안, 뒤 할 것 없이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마을 입구에는 ‘팽나무거리’, ‘숲거리’라 불리던 전형적인 수구막이 역할을 한 민간 신앙 유적인 마을숲이 있다. ‘마을숲’은 민속적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며, 바람과 홍수 등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종은 팽나무로,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많이 잘려 나갔지만, 지금도 여전히 마을의 든든한 보호막이가 되고 있다.
[알고가면 좋은 TIP]
서창마을 주차장에서 길왕마을까지 간 다음, 다시 도로를 따라 출발지점인 서창마을 주차장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었다. 거리는 약 6km. 길왕마을 입구에 ‘길왕마을 사랑방’이라 이름 붙은 작은 공간이 있다. 이곳은 “우리 동네서는 나이 칠십 아래는 다 청년”이라는 5~60대 마을 청년들의 사랑방이다. 커피 한잔 마시며 생생한 마을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이야기 가득 품은 안성면 덕곡, 수락, 정천 마을을 찾아서 (1) | 2022.02.12 |
---|---|
새해 첫날, 첫 장이 선 무주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0) | 2022.02.09 |
덕유산 자락 안성 땅과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0) | 2020.11.11 |
무주구천동 어사길의 만추(晩秋) (0) | 2020.11.05 |
적상산 단풍, 서창마을 천년 마을 숲 (3) | 2020.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