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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이야기

옛 이야기 가득 품은 안성면 덕곡, 수락, 정천 마을을 찾아서

by 눌산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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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천과 관련된 마을의 역사와 지명 이야기

지명(地名)은 그 자체로 마을의 역사, 선조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 담아

산 깊은 고장답게 무주 곳곳에는 사철 청정옥수가 흘러넘친다. 마을을 이루고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 역시 골골마다 흐르는 하천 덕분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터. 안성면 덕산리의 덕곡, 수락, 정천 마을의 지명에는 물과 관련된 오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지명(地名)은 그 자체로 마을의 역사다. 마을 주변의 산·고개··골짜기 등과 같은 땅의 모양 또는 옛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 등 마을이 가진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낯선 고장을 방문했을 때 지명만으로도 그 마을의 유래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아름다운 우리 땅 이름이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조정 때 일방적인 한자화를 하면서 사라지고 잊히었다. 이 때 본래의 뜻과는 무관한 한자화로 인해 처음 의미와는 동떨어진 지명이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덕산리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라는 덕곡마을

덕산리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 덕곡마을

안성면 덕산리(德山里)는 덕곡(德谷), 수락(水落), 정천(井川), 상산(上山) 마을을 지나는 덕산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이다. 덕유산 향적봉 서쪽 기슭에서 발원한 덕산천은 칠연계곡과 만나 통안천을 이루고, 다시 구량천이라는 이름으로 진안군 동향면을 지나 금강과 합류 한다. 덕유산 자락 하천들은 예로부터 풍요로운 고장으로 알려진 안성 땅의 옥토를 일군 젖줄인 셈이다.

덕산리의 덕곡, 수락, 정천 마을 중에 가장 깊은 골짜기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곳이 바로 덕곡마을이다. 덕곡 마을의 옛 지명은 한걸음으로 마을 입구 표지석에는 지명 유래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덕곡은 덕산리에서 가장 깊은 계곡에 위치한 마을로 황골음(黃谷陰)이라 하였으며, 이 지명이 한걸음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덕산천 상류 덕산저수지의 가을풍경

주민들은 한걸음의 유래에 대해 덕곡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 수해 피해가 많았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걸음만 옮기면 수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런 이유로 한걸음마을로 불렸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황골은 현재 덕곡저수지 위쪽을 말하다. , 황골음(黃谷陰)은 황골의 음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있는 바위가 있어 매년 정초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암제(風岩祭)를 지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경우로 유독 바람으로 인한 피해가 심하여 풍해(風害)를 막아달라는 뜻의 기원제다.

수락마을의 수백 년 된 노거수 숲과 유봉정

수백 년 된 노거수 마을 숲이 아름다운, 수락마을

덕곡마을 앞을 지난 덕산천이 수락마을에 이르러 건천(乾川)으로 바뀐다. 평소에는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메마른 하천의 모습을 하고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이를 수락석출(水落石出) 현상이라 한다.

안성면에는 안성8을 비롯하여 칠연계곡 11등 빼어난 명소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가치에 비해 좀 덜 알려진 곳이 바로 수락마을 앞에 있는 마을 숲이다. 유봉정(裕峰亭)을 중심으로 수백 년 된 노거수 20여 그루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방풍림의 역할과 더불어 하천의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심어졌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른 봄 연둣빛을 시작으로 여름의 초록빛, 가을의 단풍은 가히 환상적이다.

수락마을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마을 주변에 쌓아 올린 돌탑이 그것. 돌탑은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무탈함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쌓은 민간신앙유적으로 수락마을에서는 이 돌탑을 도탐이라 부른다. 현재는 수락마을 입구 길 양편과 마을 정면으로 6기의 돌탑이 있다.

정천마을 입구 마을 표지석과 돌탑

 

마음씨 착한 앉은뱅이 처녀와 장님 총각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정천마을의 샘

정월 열 나흗날 밤 당산제 지내는, 정천 마을

수락마을 아래 정천 마을 입구 도로 양편에도 두 개의 돌탑이 있다. 본래는 마을을 빙 둘러 일곱 개가 있었는데, 새마을 운동 당시 길을 내면서 미신이라 하여 없애 버렸다고 한다. 돌탑은 주로 풍수적(風水的) 보완 의미가 크다. 일종의 토속신앙으로 터를 잡은 후 마을에 어떤 커다란 재앙이 닥쳤을 때를 대비한 방책으로 쌓았다.

돌탑을 주()당산으로 모셔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하위 당산으로 모셔진다. , 마을 당산제를 모신 이후에 탑제를 지내게 된다. 정천 마을 역시 그렇다. 정천 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 나흗날 밤에 모신다. 마을 개발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5~6명 정도가 참여한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공동 샘에 불을 밝혀 놓은 후 풍물패를 앞세우고 당산을 향한다. 당산은 마을 왼편 날망에 있는 소나무 숲과 참나무가 있는 곳으로 당산제가 끝나면 마을 입구 돌탑에서 탑제를 지낸다. 샘에서의 샘굿을 마지막으로 당산제를 마무리한다.

다음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마당 밟기를 한다. 마당 밟기는 새해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또한 당산제를 지내는 날은 마을 대동회를 열어 한 해 회계를 결산하고 새해의 계획을 세운다. 대동회가 끝나면 마을주민들은 당산과 탑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달집을 만든다.

정천이란 지명은 현재도 잘 보존된 우물 때문에 생겼났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로 마음씨 착한 앉은뱅이 처녀와 장님 총각의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수락마을에서 땅 속으로 스며들었던 덕산천이 정천 마을에 이르러 다시 솟아났다. 그런 이유로 새암내란 지명이 붙었고 한자화 되면서 정천(井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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