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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오지

'설'에 들어와 '보름'에 나간다는 오지마을 이야기

by 눌산 2008.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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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재밋는 우리 땅이름 이야기


촌로 한 분이 차를 세웁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으레 만날 수 있는 장면이죠. 어디까지 가시냐니까 '설보름'가신 데요. 설보름....(행정상의 지명은 흥덕리) 마을 이름치곤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직업은 못 속인다고 제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지나쳐 한참을 더 가야하지만 집 앞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본전은 뽑아야지요...^^ 설보름의 유래와 마을 이야기, 그리고 보너스로 우두령과 국수봉의 전설까지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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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두나무 숲 한가운데 자리한 설보름마을


설보름마을의 행정상의 주소는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로 황악산(1,111m)과 화주봉 사이 우두령 아래 분지를 이룬 해발 5-600m에 자리한 오지마을입니다. 마을 뒤 우두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경상북도 김천 땅으로. 그러니까 충청북도 영동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이죠. 우두령 길은 워낙 험하다보니 요즘도 눈만 내리면 종종 교통이 통제되는 그런 곳이지만 옛날에는 더 힘들었을겁니다. 쇠러 들어 온 사람이 워낙 눈이 많이와서 발이 묶여 나가지 못하고 있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설보름'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얘깁니다.



워낙 지대가 높고 평균 기온 또한 아랫마을들에 비해 낮은 설보름마을은 일반적인 농사보다는 호두나무 재배나 고랭지 채소가 주업입니다. 영동의 특산물인 호두는 설보름마을이 있는 흥덕리와 그 아래 궁촌리 등 황악산과 삼도봉 아래 마을들이 집산지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도가 낮은 좀 더 아랫마을들은 영동 곶감의 산지이기도 하고요. 호두와 감이 익어가는 가을이면 장관입니다. 특히 호두는 추석을 전후해 따게 되는데 땅 농사가 아닌 나무 농사다 보니 수확하는 모습 또한 이색적입니다.


설보름마을을 포함한 흥덕리의 최초 정착민은 임진왜란 당시 피난민들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설보름마을 뒷산 골짜기 한가운데 ‘낙은터’라는 곳에는 집터 같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감히 상상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깊은 골짜기에도 2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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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집으로'에서 첫 장면에 등장하는 도마령



지명은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어 그런 얘기만 들으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첫사랑 여인이라도 눈앞에 나타난 듯 말입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설보름마을 한참 아래에 있는 궁촌리(弓村里)인데. 황악산 자락으로 깊숙히 들어간 곳이라 설보름마을에 비해 훨씬 더 높은 고지대로 그대로 풀어 쓰면 활골이됩니다. 관공서나 버스 노선 등 기타 표기할 때는 활곡이라고 유식하게 쓰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활골이라고 하지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이 활처럼 휘어서 그렇게 붙여진 지명이랍니다. 더 크게 보면 멀리 백두대간이 마을 뒷산과 앞산에 걸쳐 크게 활 모양을 하고 있으니 활골에 걸맞은 곳이지요. 이렇듯 우리 땅이름은 지형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까운 곳에 고자리라고 있습니다. 영동 땅으로 치면 전라북도 무주와 등을 맞댄 끄트머리지요. 지금은 도마령(영화 ‘집으로’에서 등장하는 첫 장면의 고갯길)이 포장되어 무주 땅과 단숨에 연결되지만 오랜 옛날에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첩첩 산중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골짝의 길이가 만만치 않으니 말이죠. 그래서 붙여진 지명이 '가도 가도 고자리드라.'하여 ‘고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하는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지명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농기구의 일종인 곰배로 긁어 놓은 듯 평평하다하여 '곰배령', 산꼭대기 두메산골이라 하여 '달하치'(달 아랫동네, 지도에는 주로 월하치로 표기), 'Y'자 모양으로 흐르는 강 한가운데 마을이라 하여 '섬안이(섬 안동네)' 등 소중한 우리 땅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1세대 원주민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떠나고 나면 다시 흥덕이 되고, 일제 강점기 제멋대로 붙여진 한자 지명으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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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경부고속도로 황간IC로 내려서자마자 우측 물한계곡 표지판을 따른다. 10분쯤 가면 상촌면소재지인 임산리, 김천방향 579번 지방도로 좌회전해서 가다 우두령 고갯길을 오르기 직전 우측에 있는 마을이 설보름마을이다.

우두령을 넘어서면 흑돼지구이로 유명한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이고. 상촌면 소재지엔 임산리에서 직진하면 민주지산 자락 물한계곡과 도마령으로 이어진다. 도마령 너머에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이 있고. 계속 가면 나제통문을 지나 무주구천동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땅이름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삶이자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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